With Jesus In the Monastery: A Pilgrimage of
A Korean American disciple
수도원에서 예수님과 함께: 한인 이민자의 순례
Alex Pak
박 알렉스
2010 @ copyrights.
순례한 수도원 Place Visited:
St Anthony Monastery, Florence, Arizona, U. S. A.
Website: www.stanthonysmonastery.org
4784 North St. Joseph’s Way, Florence, Arizona 85132-9399
520-868-3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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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Introduction
서론 Introduction
나의 나이는 오십 삼세이다. 아내와 어머니를 같은해에 주님의 품으로 보내고 난지는 햇수로 구년이나 흘렀다. 나는 사람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이 세상을 떠난다는 말을 나는 조금 이해할 것 만 같다. 홀로 (aloneness)라는 말은 영어로는 single 또는 alone이라고 말한다. 한 단어는 명사이고 다른 하나는 형용사이지만 뜻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수도원에서 또는 세상에 살면서도 도를 닦거나 깊은 영적의 체험을 느끼면서 사는 자들을 수도사 또는 수사라로 부른다. 수도사들을 영어로는 Monk라고 한다. 뜻의 어위는 라틴어에서의 Mono에서 나온것이다. 역시 모노(mono)는 홀로(one)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도사들은 혼자 또는 공동체에 모여서 살면서 오직 추구하는 바는 하나님과의 교재와 동행하는 것이다. 홀로서이든지 또는 공동체가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기도하거나 명상하는 것은 신앙을 가진 자들은 모두가 원하는 바일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지못하기 때문에 힘들어 할것뿐이다.
저자는 이 자그마한 책자를 통해서 혼자(물론 하나님과 동행하였지만) 아리조나 (Arizona)주 플로렌스(Florence)시에 위치한 성 안토니 그리스 동방정교회의 수도원(St. Anthony Greek Monastery)에서 이박 삼일간 순례의길과 수도원에서 지낸 체험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물론 이 책자를 읽고서 또는 수도원에 대한 관심을 가진 분들은 직접 방문을 하거나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더욱 원하는 바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동방 정교회(Eatern Orthodox Church)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간략하게 이 교회의 역사와 가르침, 예배, 신학을 간단하게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단어들을 부록에 설명을 해 놓았다. 그리고 수도원에 대해서도 기원과 발전을 간단하게 설명을 해 놓았다. 그래서 이 책은 동방정교회에 대한 신학, 수도원과 신학용어들을 해석에 도움을 주기위해서 언제든지 찾아 볼 수 있는 참고서의 역활을 하도록 해 놓았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1. 동방 정교회의 소개 A Brief Introduction of Eastern Orthodox Church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 18
“And I tell you that you are Peter,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NIV)
동방 정교회는 매우 역사와 전통(전승)이 깊은 기독교이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기독교는 세파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동방정교회 (Greek Orthodox Church)와 로마 캐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 와 개신교(Protestant)교회들로 나눈다. 그 왜에도 이 세교파안에 많은 교회들과 교단들이 존속하고 있다.
동방 정교회라고 말을 들을때 첫번째의 반응- 의심적스럽고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 어떤이들은 향 냄새와 미스테리하고 화려한 장식들, 예배 또는 이콘(icons) 또는 성상들, 특히 예수님의 그림 성모의 그림, 성자, 성녀들의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의 원인들을 보며는, 우선 우리들이 동방 정교회를 몰라서 그럴 수 있고, 서방에서 사는 우리들은 이들을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일 수 도있다.
교회사를 보며는 개신교의 역사(History of Protestant Reformation)는 16세기때 마틴루터(Martin Luther)선생의 종교개혁으로 부터 발생했지만 동방정교를 보며는 주후 1세기로 본다.
동방 정교회의 이름을 분석해 보면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a. 동방 (Eastern)
b. 정 (Orthodox)
c. 교회 (Church)
a. 첫째: 동방 Eastern
동방이라는 것은 지역 또는 문화를 말한다.
동방과 서방을 나눌때 사용된다. 교회사 적으로 서방은 라틴(Latin)또는 로마(Rome)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리고 동방은 새 로마 또는 콘스탄틴노플을 내포하고 있으며, 동방은 지역 또는 문화를 말해 준다.
b. 둘째: 정(통), (정설) Orthodox
-영어로 Orthodox는 그리스어에서 기원된 언어이다.
"오터" (Ortho) 와 독사 (Dox(e))로 두 단어가 합해져서 만든어진 단어이다.
"오토" (Ortho)의 의미는 “바르다” “정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
“독스” (Dox(e))의 의미는 “견해” 또는 “의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
이 두 단어들을 합해서 “바른 견해” 또는 “올바른 가르침”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오토독스” (Orthodox)의 의미는 “right opinion” 또는 “올바른 가르침”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c. 셋째: 교회 Church(es)
교회는 동방정교회안에 많은 교회들이 있으며, 이들은 정교회의 가르침과 전승을 인정하고 보전하고 있다.
오늘날 동방정교회는 온 세계에 퍼져 있으며 특히 동유럽과 아시아 특히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에 많은 교회들이 있다.
동방정교회의 원래 이름은 히랍(그리스)정교회 (Greek Orthodox Church)로 불리웠다. 나중에 동방정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난 후에 각 나라의 이름들을 달아서 부르고 있다. 현재 정교회는 13개의 독립적인 교회 혹은 자치교회(autocephalous) 들이 있으며, 각 자치교회 안에는 각각 수장들이 있으며 그는 총주교(partirach), 부주교(metropolitan), 대주교(archbishop), 주교(bishop, episcop)등으로 불리운다.
세계총대주교로서는 콘스탄틴노플이 있고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그리고 예루살렘이 있으며 1589년에 콘스탄틴노플의 총대교의 승인으로 러시아정교회가 총대주교로 인정되었다.
자치교회국가 별로는 루마니아(Rumania), 그리스(Greece), 세르비아 (Serbia), 불가리아(Bulgaria), 그루지야(Georgia ),키프로스(Cypress), 폴란드(Poland), 알바니아(Albania)정교회들이 있으며, 그리고 미자립교회들이 중동 (Middle East)과 아프리카 (Africa), 미국 (America), 카나다 (Canada), 오스트렐리아 Australia), 뉴질랜드 (New Zealand), 일본 (Japan), 한국에도 약간의 정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한국정교회 1900. 2. 17 크리산토스 신부로 한국의 선교시작, 현재 11개의 성당이 한국에 있음)
동방정교회의 교인숫자는 약 225-300백만(2억2천2백만에서 3억) 가량으로 보고 있다.
d. 정교회의 특징
첫째로, 정교회는 언어와 예배형식과 성례가 민족과 사회와 밀접하다.
옥스포드대학의 교수이자 동방정교회의 감독인 디모데 칼리스토스 와레감독은 동방정교회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슬라브 동방교회는 국가와 종교가 서로 묶여저 있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서 볼 수 없다”.
-둘째로, 그리스언어로 구성된 동방정교회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철학에 발전을 가져다 주었으며, 교회와 신학에도 많은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셋째로, 순교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
동방정교회는 순교자들을 존경하고 있으며, 이들의 신앙과 업적을 보전하고 있다.
그리고 순교자를 세 부분으로 나눔:
붉은 순교자, 초록 순교자, 그리고 백색 순교자로 나눈다.
백색 순교자는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것을 다 버린자를 말하며,
초록 순교자는 자신의 회개와 고백성사를 위해서 금식과 선을 행하는 자이며
붉은 순교자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거나 목슴을 바친 자를 말한다.
-넷째로 교부(Church Fathers)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보전하고 있다.
교부는 사도들의 제자들을 일컫는 말이며 교부시대는 카톨릭(라틴)교회와 동방정교회의 차이가 있지만 약 2세기에서 8세기로 보고있음. 동방정교회(카톨릭교회)에서는 다메섹의 요한 John of Damascus(676-749)을 마지막 그리스 교부로 인정하고 있다.
교부로 인정받으려며는 몇가지 자격을 갖추어야 함. 보니피스렘시(Bonifice Ramsey O.P.)는 말함. 우선 전례 교회 (antiquitas ecclesiae), 에 관하여 저술을 했으며 인용되는 자, 그리고 정통교리(doctrina orthodoxa)를 세운자 , 성스런 삶(sanctities vitae)을 산자, 교회로(approbatio ecclesiae)부터 인정을 받은자여야 만 한다.
-다섯번째로는 관상의 기도 (헤시카즘, hesychastic prayer)임. 14세기의 헤시키즘의 논쟁이 되었던 신학이기도 하다.
관상의 기도의 기원은 3세기 초대교부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Clement of Alexandria (d. 215))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 (Origen of Alexandria(d. 253))으로 부터 나왔으며 14세기에 팔라마스의그레고리 (Gregory Palamas(1296-1359))에 절정을 이룬다.
관상의 기도(Hesychasm)의 요소가되는 예수의 기도(Jesus Prayer)는 5세기 부터 오늘날 동방정교회 교인들이 매일 드리는 기도이다 예수의 기도의 내용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저 이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Lord Jesus Christ, Son of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
-관상의 기도(헤시카즘, Hesychism)의 핵심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로 나아가야 만 알 수 있다는 역설적인 방법의신학이다. 영은 침묵함으로 영성으로 성숙해질 수 있기때문이다.
관상의 기도는 신비주의(mysticism)에 가까운 경향이 있다.
정교회가 주장하는 성전(sacred tradition)또는 거룩한 전승(Holy tradition)의 의미는 믿음과 행함이 동일하기 때문. 이들의 믿음과 전승은 나눌 수 가 없다고 본다.
전승의 의미는 성경을 말하며 신조(Creeds)와 공회의 결정사항들(Decrees)과 교부들저서의 가르침(writings of the Fathers), 교회 규범(Canons), 예배예식(Service book), 이콘(성화)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20세기 러시아 신학자인 블라드미르 로스키 (Vladimir Lossky) 는 전승을 다음과 같이 말함. “전승은 교회안에서 성령님의 삶이다” “Tradition is the life of the Holy Spirit in the Church” 고 말하면서 전승을 강조하고 있다.
8세기 교부인 다메석 요한(John of Damascus)은 “우리는 아버지(교부)들이 세운 범위를 어길 수 없으며 받은 전승을 보전해야 한다.” 면서 교부신학의 중요성을 암시해주고 있다.
e. 동방 정교회의 전승 교리
성서와 일곱번 공회를 인정하고 있다. (니케아 I (325), II (787), 콘스탄틴노플 I (381), II (553), III (680-1), 에베소 (431), 칼게돈 (451) . 그리고 성전(Holy tradition)을 인정한다.
신앙의 신조로서는 니케아-콘스탄틴노플 신경(Nicea-Constantinople Creed)을 고백함. 교리는 이성과 명상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서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을 중요시 하게여기고 있다.
필리오케 (filioque) 논쟁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단절의 주 원인이 되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니케아신경을 고백할때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에서 부터 발출한다고” 고백하나 동방정교회는 “성령님은 성부로 부터 발출한다고 “고백함. 동방정교회는 카톨릭교회가 “성자에게서”라는 문구를 삽입했다고 해서 필리오케라는 논쟁을 하게 됨. “필리오케”라는 뜻은 “성자로부터””from the Son”이 라는 말이다.
“이콘”(icon) 또는 “성상”을 사용한다. 동방정교회에서는 2차원적 그림을 통해 신앙을 갇도록하게 한다. 그러나 이콘을 예배드리거나 숭상은 하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 veneration of Theotokos) 의 가르침은 이러하다.
성모 마리아는 “하나님을태어나게함”(Theotokos)으로써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다고 보고 있으며 아들을 통해 인류를 위해서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모마리아는 원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느다. 무염시태(Without Original Sin)의 교리를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성모마리아를 신격화 하지도 않는다. 오직 구릅(cherub)이나 스라빔 (seraphim) 보다 귀하디고 본다.
f. 영성체 신학과 성사 (Sacrament)
동방 정교회의 영성체 신학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사제가 성찬식을 거행할때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는 물리적으로 예수님의 피와 살로 변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빵은 누룩이 들어가있는 면병(leavened bread)을 사용한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거행 할때가 목요일이였으며, 유월절 전이였기 때문에 무교병을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봄. 다시 말해서 누룩을 넣은 빵을 먹었을 것이라고 한다.
정교회는 7가지의 성사를 가지고 있다.
세례 (Baptism), 견진 (Confirmation), 혼인 (marriage), 고해 (Reconciliation), 성품 (Holy Orders), 병자(Anointing of the Sick), 성체성혈성사(Eucharist)등이다.
예배에 있어서 동방 정교회는 신학 (theology)과 예배를 (liturgy) 분리 하지 않는다. 예배를 통해서 천국과 지상을 동시에 체험하는것이다. 그래서 예배는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삼위일체론(Trinity)는 “filioque”가 없는 “단일 발출설, single procession”인 “성부”로 발출하는 성령님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고대 에큐메니칼 7공회들의 가르침을 따른다. 위에 소개한 것들이 동방정교회의 이해에 대한 약소한 소개이다.
2. 수도원의 이해 Understanding the Monastic Traditions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람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어버지 께로 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1서 15-17절 (개역 개정)
“Do not love the world or anything in the world. If anyone loves the world, the love of the Father is not in him. For everything in the world-the cravings of sinful man, the lust of his eyes and the boasting of what he has and does-comes not from the Father but from the world. The world and its desires pass away, but the man who does the will of God lives forver.”(1 John 2: 15-17, NIV)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 인구 가운데서 한 소수였으며 그들은 주변 사회에 대해 상당히 초연한 입장을 지키면서 작은 공동체를 통하여 그 이념을 실현해 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교회가 형성되었다. 3 세기 중엽이 되었을때 수천명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3세기후와 4세기초에는 대핍박때문에 잠시동안 중단되었지만 핍박이 실패로 돌아가자 더 많은 인구가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5세기가 끝나기 전 로마 제국의 다수 시민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고 집단 개종이 촉진되면서 교회의 기강은 해이해져갔고 일반적 그리스도인들의 이상과 실천사이에 간격이 넓어졌다.
수도원제도가 생기게 된것은 부분적으로는 이와같은 방종의 반동이고 부분적으로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들에서 자극을 받은 것이지만 완전에 이르지 못하면 무엇이나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이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인가? 그런 삶은 가능한 것인가?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이가? 그것은 과연 모든 인간 사회에 변화를 거져다 줄 것인가? 개개인은 그들의 원리를 타협함없이 일반적 혹은 부분적으로 비 기독교족인 사회에 섞여 살면서 여전히 완전한 그리스도인일 수 있을까?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사회로부터 후퇴할 필요가 있을가? 만일 그렇다면 그는 혼자 살아야 할것인가 혹은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도하는 그런 이들이 다른 이들과 공동으로 그것을 모색해야 할것인가?
만약 공동 생활이 필요하다면 그리스도인의 이상을 완전히 그현할 수 있는 공동체 내지 인간사회가 있을 수 있을까? 처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이와 같은 질문을 제기했고 점점 더 강해졌고 금욕주의 이상과 기독교 도덕의 2중적 표준이 콘스탄틴 이전에 오랫동안 교회내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고대 세계의 차원 높은 철학자들 속에 전승되어 오는 금욕주의 경향이 기독교의 이러한 이상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금욕주의는 수도원생활과 기독교에만 특수하게 있는 것은 아니었고 인도인(Indians), 희랍인 (Greeks), 이집트인들(Egyptians)의 종교중에도 있었다.
수도원 제도는 처음에는 성직자들의 교권 구조안에는 들어있지 않은 하나의 평신도 운동 (Lay movement) 이었으나 5세기 말에는 보편화되어 카톨릭 교회의 특징이 되었다.
수도원 발생에 영향을 준 금욕주의와 수도원의 기원, 수도원의 발달과 수도원의 변화, 그리고 초대 교회에 미친 영향 그리고 오늘날의 수도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a. 수도원 발생에 영향을 미친 금욕주의 Asceticism that Influenced a rise of Monasticism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가 가지 모든 것을 버려야한다고 선언하셨으며 어떤 부자 청년에게는 가가 가진 모든 것은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명령하셨고 어떤 사람은 하늘의 왕국을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됐다고 말씀하심으로 독신주의를 권하셨던 것처럼 보였다(마 19:16-22; 마 10:37; 마 19:11,12, 16-22). 그러나 분명히 금욕주의자였던 세례 요한은 대조적으로 예수님게서는 스스로가 말씀하셨듯이 먹고 마셨고, 바울은 독신 생활을 찬성했지만 이문제에 대해 예수님을 뒷받침하는 아무 분명한 명령도 주님께 받은 것이 없었으며 사실상 결혼은 미혼 상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사일 것이라고 말했다(고전 7:26,28, 38).
예루살렘에 있던 원시 그리스도교회 초창기에 재산의 공동 소유제가 얼마 동안 실시되었지만 공동 저장고에 개인의 소유를 바치는 것은 자발적이었고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처음부터 재산의 사유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정상적인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행 2:44,45; 4:32-37; 5:4). 특히 과부들이 인정되기는 했지만 60세 미만의 사람들은 과부 명단에 기재되지 못하였고 젊은 과부들은 개가해서 저녀들을 낳아 기르라는 명령을 받았다(딤전 5:3,9,10.14).
그러나 수도원 제도 훨씬 이전, 그리고 사실상 교회 창시 첫 시대부터 금식은 공인된 규율이었다. 재혼하지 않고 기도및 교회 봉사에 몸을 바친 과부들이 흔히 눈에 띄었고 교회는 독신자들을 귀히 여겼다. “헤르마스의 목자서”는 그리스도인이 과부들이나 홀아비들이 재혼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주님께로부터 더 큰 영예와 영광을 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시온(Marcion of Sinope, 85-160), 주의자들은 결혼을 금했고 카톨릭교회는 회원들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305년의스페인 엘비라의 교회회 (Synod of Elvira)의에서 감독들과 다른 성직자들의 독신 생활(Celibate life)을 요구했다. 이미 감독이나 사제난 부제가 만일 안수 받기 전에 미혼이었으면 결혼(marriage)해서는 안되며 그의 아내가 죽었을때는 재혼하지 못한다는 풍습이 수립되었다. 성직자들에게 독신생활을 명령하는 교회회의, 공회및 교황들의 공식적인 교령들은 확대되고 있던 관습에서 발생하는 듯하며 독신 생활제도를 새로 시작했다기 보다는 그것을 보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부에서는 부제들과 사제들과 감독들은 독신 (celibate)생활을 해야했고 동부는 감독들은 독신 생활을 했어도 부제들과 사제들은 안수 받기 전에 하던 결혼 생활은 계속 할 수 있었다. 385년 교황 Sercius는 모든 사제들이 날마다 드리는 유카리스트의 희생제를 위해 순결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그것을 명령했다. 390년에 카르타고에서 모였던 공회에서는 감독들과 부제들에게 순결을 명령하였고 5세기 중엽 대교황 레오는 성직을 위한 독신 생활의규칙을 부보제들에게까지 확대시켰다. 4세기 후반에 동부에서 모였던 한 공회에서는 결혼한 사제의 손에서 유카리스트를 받는 것은 불법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을 정죄했다.
b. 수도원 제도의 기원 Beginning of Monasticism
기독교의 이와 같은 경향성은 수도원 제도(monasticism)를 위한 밭이 되었다. 3세기 중엽이 되었을때 수천명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3세기후와 4세기초에는 대핍박(great persecution)때문에 잠시동안 중단되었지만 핍박이 실패로 돌아가자 더 많은 인구가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5세기가 끝나기 전 로마 제국의 다수 시민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며 세례 (baptism) 를 받았고 집단 개종이 촉진되면서 교회의 기강은 해이해져갔고 일반적 그리스도인들의 이상과 실천사이에 간격이 넓어졌다.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인 수준이 저하되는 것같고 신약성경의 높은 수준에 양심의 자극을 받은 열렬한 이들에게 만족이 없었다. 콘스탄틴후 순교 (martyrdom)가 그치자 성도들에게는 금욕(asceticism)이 성도의 최고의 표준이 되었고 자발적으로 빈곤, 금식및 독신주의를 존중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태생의 오리겐 (Origen)은 스스로 불구자가 됨으로서 그리고 먹는 일, 마시는 일, 잠자는 일 및 육체적 안위에 있어서의 내핍을 통해 극단적인 금욕주의의 한 표본을 보였으며 이집트에 있는 교회에서 유명해진 그의 많은 제자들에 대해 감화를 끼쳤다. 금욕(asceticism)적인 노스틱주의자(Gnostics)들, 마사시온주의자들및 몬타누스주의자(Montanists) 들이 이집트 (Egypt)에 있었는데 이들 다수가 이 제도의 후기 발전들에 기여했을 것 같다.
신비주의적및 명상적인 생활이 이집트에서 발생한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를 포함한 다른 비기독교적 모임들 속에 있었으며 이것들이 수도 생활의 신비적이며 명상적인 면을 강조했을 것이다. 3,4세기에 이집트에 일어났던 정치적, 경제적 무질서 때문에 불안감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이 부득불 세상을 도피하게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무거워져가는 공민의 의무로부터 벗어나보려는 욕망때문에 정상 사회로부터 도피하려했는지도 모른다.
이 수도원 운동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전하여졌을때 이 동기는 강한 호소력을 가지게 됐고 이집트의 지형과 기후는 독자적이든 공동체 생활이든 수도사에게 적합했고 기독교 은둔자들이 3세기가 끝나기전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데시우스의 박해를 피해 사막지대로 피신했다가 그대로 거기에 머물러 살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은둔자들은 혼자 살면서 기도와 명상에 몸을 바치고 있었다.
초기 수도원 주의 정신의 지도자인 이집트의 안토니((Anthony of Egypt, 251-356)는 이집트의 콥트인(Coptic)의 후손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신앙을 따라 양육되었다. 20세때 교회에서 그리스도가 부자 청년에게 한 말씀을 듣고 (마 19:21) 그는 즉시 그의 유산을 처분하여 마을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마을 밖에 거처를 정하고 손수 노동을 했고 소출의 일부분을 양식으로 나머지를 가난한 이들의 구제로 사용했고 은둔자들에게 품위, 사랑, 친절, 인내, 온유, 노여움에서의 자유및 기도의 방법을 배웠다. 나중에는 사막으로 옮겨 20년간 은둔(hermit) 생활을 하였고 쉴새없이 노농, 금식, 철야를 하고 끊임없이 기도와 성경낭독을 함으로 마귀의 세력을 극복하였다. 그는 영광을 되찾은 인성의 모습을 보였으며 병자를 고치고 사랑과 화해를 가르쳤으며 모범적인 생활을 했고 그가 터득한 가르침을 전했다. 제자들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가 죽은 후 수천명의 금욕(asceticism)주의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리우스주의자(Arians)들을 강하게 반박했고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그들의 견해를 반박했다. 안토니는 두 가지 형태의 수도원제도(monasticism)를 대표했다. 하나는 은둔자 (hermit)수도제도즉 수도사 각자가 외따른 생활을 하는 은둔자적 삶이고 다른 것은 은둔자의 방법을 절충한것이다.
이집트 출신의 수도원의 첫 개선자인 파코미우스 (Pachomius, 292-346)는 종군후 세례를 받고 고행자가 되었고 은둔자 Palaemon에게 3년간 훈련을 받은 후 320년경 나일강 근처의 Tabennisi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것이 매우 인기가 있자 다른 몇 개를 또 세웠다. 파코미우스는 중앙 수도원에서 그 수도원들을 다스렸고 그가 죽어갈때 자기의 후계자를 임명하였다. 그의 가르침은 각각 맡은 일을 하고 시간을 따라 예배하며 비슷한 옷을 입고 인접한 방에서 살며 한 수도원장 아래서 공동생활을 하는 건전한 제도이었다. 이는 애굽에서 발전하다가 제국 전체에 퍼졌으며 시리아에 은자 수도원이 많이 있었다. 그가 죽을 때는 수도원이 9개, 누이 동생 마리아가 그의 주면에 세운 수녀원이 2개가 있었고 수녀원은 포괄적인 조직 속에 들어 있기는 하지만 남녀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예방조치가 취해져 있었다. 나중에 생긴 성 바실 수도원도 그것을 모방했다.
c. 수도원의 발달과 변화 Development and Change of Monasticism
4세기및 5세기에 수도원 제도는 널리 퍼졌고 수도사들은 증가했다. 수도사들과 수도원은 특히 동쪽, 그가운데서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틴및 시리아에 그 수효가 많았다. 그 이유는 팔레스틴및 시리아에 수도원 이전의 금욕주의 사상이 그리스도인들 사회에서 강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집트의 영향과는 다른 독자적인 시초를 가졌는데 이는 불교및 힌두교와 마니교적 수도원제도의 혜택을 입었었던 것같다. 수도사들은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독처하고 있는 은사들, 수도사들이 자유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피코미우스가 개척한 고도의 조직화된 집단들 속에 살던 사람들이다.
수도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극도의 내핍 생활을 했는데 30년간을 꼭대기에서 살면서 기도에 몰두하여 주상 고행자라고 불리운 시므온 (Simon Stylites, 390-459)이 있었고 카파도키아(Cappadocia)와 폰투스 (Pontus),훗날 소아시아 (Asia Minor)전역에는 공주수사 제도가 관습이 되었다. 4세기 중엽 유스타티우스 (Eustathius)로 도입된 이 지역의 수도 생활은 보급과 조직에서 철학적인 삶을 추구하였으며 이는 바실의 노력에 발전이 있었다. 정신은 하나님사랑과 이웃 사랑을 강조하였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처럼 사도 공동체의 생활을 본받도록 하였다.
수도원 제도 중에 헬레니즘과 주지주의영향을 받은 에바그리우드 폰티쿠스 (Evagrius Ponticus, 345-399)는 애굽에서 정신을 전달했으나 콥트 교회 수사들에게 반감을 삼으로 후에 그의 제자들이 흩어졌으나 그의 사상은 서방과 동방의 수도원주의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방의 수도원 제도는 아타나시우스가 (St. Athansius of Alexandria, 296-373) 도입했다. 그는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기록하여 서방에 보급했고 책은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투르 마르틴 (Martin of Tour, 316-397)은 서방의 수도원조직에 대해 공헌한 사람이고 그가 처음으로 프랑스에 수도원을 세웠다.베르첼리리의 주교 유세비우스(Eusebius of Vercelli, 283-371)는 금욕적인 규율아래 교구의 성직자들을 조직하여 새로운 형태의 수도 공동체를 도입하였고 훗날 어거스틴(Agustine of Hippo Regius, 354-430)은 이 방식을 따랐다. 4세기에는 이미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 수도원제도 (monasticism)가 활발하게 보급되었고 5세기에는 정규 수도 규칙 (Regular Monastic Rules) 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서방 수도원 운동의 개혁자는 누르샤의 베네딕트 (Benedict of Nursia, 480-547)이다. 베네딕트가 작성한 수도 회칙(The Rules of Benedict)은 서방 수도원 주의의 표준이 되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한 사람들이 안정되고 자급 자족하는 공동체로서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금욕을 실천하였으며 공동체에 남아서 살을 것을 요구하였다. 수도원의 공동 관심사에는 모든 형제들의 자문을 구하였고 수도원장은 형제들에게 명백한 순종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몬테 카시노의 공동체 수도원 (Monte Cassino Monastery)을 세웠고 가이사라의 바질(Basil of Caesarea, 330-379)처럼 극단적인 금욕주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고 개인주의와 사회를 등지는 태도는 더욱 인정하지 않았다. 수도사들을 그리스도의 군인들로서 이루어진 영원한 자급자족의 수비대로 생각하였고 제일의 의무는 예배라고 생각, 하루 7번의 공동 예배를 드리고 밭에서 하는 육체적인 노동과 도서를 의무로 규정하였다. 중세에 와서 베네딕트 수도원은 파코미우스 (Pachomius, 292-346) 제도의 수도원들처럼 수사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으며 이러한 수도원 개념은 유럽의 주요 교육 시설에 영향을 주었다. 교황 그레고리(Pope Gregory I, 540-604) 의 후원을 받은 베네딕트 수도 회칙은 후대의 수도원주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수도원의 정신과 교육의 영향은 유럽에 선교적, 구제적, 종교적, 세속교육의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아이랜드의 수도원주의(Irish monasticism tradition)는 카시아누스 (Cassian, 360-435)가 프로방스에 소개됨으로 그 뿌리를 내렸고 켈트족의 수도원제도 (Celtic Monasticism tradition)는 신비적 정신, 무 훈련의 불안정, 엄격한 금욕주의가 특색이었다.
d. 초대교회에 미친 영향 Influence on the Early Christian Churches
수도원 제도는 유럽의 주요 교육 시설 제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로마 제국 카톨릭 교회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여러 교회들 안에 나타났던 폭발적인 새 생명을 발견할 수 있는 주요 경로이었다. 수도생활을 지망하는 이들은 소유를 흩어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었고 많은 수도사들은 그들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영적 문제를 의논해 주었다. 특히 서부에서는 많은 수도적 조직체들이 선교 기관이 됐고 다른 이들을 섬기기위해 그 기관들을 바쳤다. 동방에서 발생한 수도원 운동은 남부 가울 지방을 거쳐 5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아일랜드 (Ireland). 스코트랜드 (Scotsland), 잉글랜드 (England)등지에서 전성하였고 이 운덩의 뛰어난 공헌은 열성적인 선교 활동과 학문에의 헌신에 있었다. 영국에서 로마 기독교가 승리함으로 켈트 수도원은 베네딕트 수도단에 흡수되었고 그 선교 정신은 후세의 영국 수도승에게 영향을 주었고 북 유럽으 개종시키는데 위대한 역할을 한 보니페이스 (Bonafice, 672-754)와 같은 인물을 배출시켰다.
d. 결론 Conclusion
콘스탄틴후 순교가 그치자 성도들에게는 금욕이 성도의 최고의 표준이 되었고 자발적으로 빈곤, 금식및 독신주의를 존중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3, 4세기에 많은 사람이 세상을 도피하게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무거워져가는 의무에서 벗어나보려는 욕망때문에 정상 사회로부터 도피하려했는지도 모른다. 초기의 수도원은 이런 욕망때문에 생겨났고 은둔자의 생활에서 고행과 기도등 현실과는 다른 삶을 추구하고 살았으나 점점 발전해가면서 공공체의 삶을 강조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강조하였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처럼 사도 공동체의 생활을 본받도록 하였다.
서방 수도원의 표준이된 베네딕트 수도원은 파코미우스 새도의 수도원들처럼 수사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으며 이러한 수도원 개념은 유럽의 주요 교육 시설에 영향을 주었다. 교황 그레고리의 후원을 받은 베네딕트 수도 회칙은 후대의 수도원주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수도원의 정신과 교육의 영향은 유럽에 선교적, 구제적, 종교적, 세속교육의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어떤 면에서 수도원 제도는 카톨릭 교회가 이단이라고 배척한 이념들의 승리를 대표했다고 볼 수 있다. 카톨릭 교회 속으로 들어온 율법주의 비슷한 것들, 즉 구원이란 벌어들일 수 있고 또 벌어들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은혜에 대해 반대되는 개념을 갖고 있는것과 육체와 물질을 악으로 보는 노스틱주의 (영지주의,Gnosticism), 마시온주의 (Marcionism), 마니교(Manichaeism)에서 볼 수 있는 신념들이 들어 있었다. 또한 어느 정도 수도원 제도는 복음과 상치되는 많은 요인을 그 자체 안에 작고 잇었다. 대체로 초기에는 그 제도가 비기독교인을 구원할 노력을 하지 않았고 세상을 구원하려고는 하지 않고 그것을 피하려고 애썼다. 수도사의 첫째가는 목적은 그 자신의 구원에 있었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이 아니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성도들과 거룩한 제사장직이 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에 반대되는 사실에 수도원 제도는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하게 되기를 갈망하는 무리들과 기독교 이하의 행동 또는 비기독교적행동과 타협하려는 데 안주하는 무리들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요소도 수도원 운동에 있었다. 수도 생활을 지망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소유를 흩어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었고 많은 수도사들은 그들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영적 문제를 의논해 주었다. 특히 서부에서는 많은 수도적 조직체들이 선교 기관이 됐고 다른 이들을 섬기기위해 그 기관들을 바쳤다.
20세기가 들어서자 유럽사회 전체에 세속화,교회이탈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특히 규율이 엄격한 관상수도원에서는 수도자 수가 상당히 감소되었다. 오늘날에는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떨어진 산중의 수도원이 아니라 대도시속에서 함께 공동 생활을 하는 수도원도 많다. 수도원은 특정한 신분의 사람을 길러내는 기관으로 발전되면서 어느정도 신비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에서 사회의 일부분으로 들어와 소외되고 병든 자들에게 다가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수도원들도 많음을 볼 수 있다.
교회를, 특히 카톨릭 교회의 활력을 측정하는 최선의 표준의 하나는 기존하는 수도원들 및 어떤 한시대에 나타났던 새로운 수도원 운동내지는 수도원 운동에 가까운 운동들의 수효 및 개혁의 힘에서 발견될 수 있다. 활력이 저조했을 때에는 수도 생활이 생기를 잃고 기능이 둔해졌거나 부패해버린 증거이다. 부흥이 일어나고 있을 때는 믿음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들을 바치고 싶어하는 열렬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수도 생활을 위해 몰려들어왔으며 그 생활이 생생한 다양성과 새로운 형태들을 취하고 있었다.
기독교 이상을 완전히 실현할 수 있을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하는 이상과 다양한 수도적 형태들이 수효가 점점 더 많아질 경우 이 공동체들이 중심이 되어 기독교 신앙이 그 주변의 비기독교 세계를 밝혀주며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겠다. 대부분의 수도적 기관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 기관들의 창시자들의 목적으로부터 어긋나 버렸으며 무기력해졌거나 그보다 더 나빠졌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싶어하는 영혼들의 소망이 더 나은 수도원 체제를 형성하면서 정치적, 이념적인 제제를 벗어나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것들이 되어야 하겠다.
3. 출발 Departure
“내가 그 둘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 1: 23
“I am torn between the two: I desire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which is better by far;”(NIV)
토요일 새벽에 나는 일어나 경건의 기도회(Quiet Time)를 마치고 나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나는 오늘 저녁의 샤워는 수도원에서 하게 될것을 생각하면서 더욱 비누를 문질렀다. 왜 더 문질럿을까? 혹시 도시의 때를 조금이라도 더 벗어내기 위해서 아니면 몇일 못할 목욕을생가을 하니까? 아뭏던 아침의 씻음은 의미가 있었다. 수도사들 처럼…
몸을 닦도 나서 아침을 먹었다. 일상생활대로 아침식사로는 베이글 (Bagel, 동그랗고 가운데 구멍이 난 딱딱한 빵)에다 크림 치즈 (Cream Cheese)와 불르베리 (Blueberry), 자몽쥬스 (Grapefruit Juice)와 우유 (Milk)등이다. 나는 옷가방과 성경책 그리고 약간의 물병들과 간식을 챙기고 자동차 차로고 향했다. 물론 무언가를 잊어 벌린것 같았으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다만 빨리 아리조나주를 향하여 떠나고 싶었다. 물론 더 일찍 출발할 수 도 있었지만 나는 일부로 해가 날 때에 출발하기로 계획했다.
이번 여행은 관광여행이 아니라 깊은 영적체험과 바라던 수도원의 생활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새벽부터 서루거나 흥분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마음의 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도를 운전석 옆에다 놓고 안전 기도와 두고 가는 거처소와 안면에 떠오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
차고를 나오면서 기름게이지를 보니까 기름이 부족했다. 그래서 거처소에서 나오자 마다 보이는 정유소에서 기름을 채웠다. 물론 가득 채웠다.
나는 기름을 채우면서 기도하기를 주님이 이번 순례의 기간을 통해서 기름통처럼 비워져있는 가슴에 은혜를 흠뻑 채워주시기를 조용히 기도했다. 인간은 이렇게 항상 비워진 상태에 살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하이웨이 (State Highway) 91번 (아테시아 프리웨이 Artesia Freeway, 오렌지 카운티 Orange County동서쪽을 이어주는 고속도로이다.)의 동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 날씨는 여름에 접어들었는데도 선선했다. 주중은 아니어서 차들은 도로에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침에 떠오르는 해는 나의 얼굴과 가슴쪽을 향해 쒜어오고 있었다.
항상 다니는 고속도로였지만 오늘은 새로웠다. 왜냐면 오늘 달리는 목적은 직장을 가거나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례의 길을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면서 옆의 차량들을 흙어 보았다. 다른 열심히 운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들도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인생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서 달리고 있지 않는가?
에나하임(Anaheim, 독일 이민자들이 세운곳임, 오렌지 카운티에 소재해 있음) 시를 지나면서 옆쪽에는 초록색을 뛰운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운전하면서 계속해서 옆쪽들의 산들을 살펴 보았다. 산은 영적의 의미가 깊은 곳이다. 등산하는 자들에게서는 없어서는 안될 자연다. 그러나 지식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산은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믿는자들에게는 산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출 3장). 나는 산들을 보면서 많은 집들이 지어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산턹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이곳에서 살가 물어 보았다. 등산가가 사나?...
반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하이웨이 10번 동쪽길로 바꾸어 탔다. 10번 길은 미국 동부까지 이어지는 대고속도로이다. 이 프리웨이만 타고 미국의 대륙횡단을 할 수 있다. 한 시간쯤 운전을 하면서 팜 스프링(Palm Springs)지역을 통과 하고 있었다. 팜 스프링스는 샌 버난디노 카운티(San Bernandino County) 의 속한 사막에 위치한 휴양지 (Resort)지역이다. 이곳은 자연 온천 (Hot Springs)과 캐이블카(Cable Tram)로 유명한곳이다. 그리고 카지노와 샵핑아웃렛이 있는 곳이어서 사막이지만 매우 분주한 곳이다. 그러나 한때는 이곳은 매우 조용하고 휴식처로 알려진 때가 있었다.
저자는 사막 (Desert)을 좋아 했기 때문에 옛적에는 이곳을 자주 찾았다. 그리고 근처에 기도원(Prayer Mountain)이 있어서 교회 수양회( Church Retreats) 때와 혼자 와서 기도를 하면서 영적 충전(Recharge)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머무나 다르다. 영적으로 시작해서 육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인간의 역사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현상을 보시고 한탄하시고 계시는 지 모르겠다.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나는 믿음지 적은지 기름이 아직도 많은데 프리웨이 출구에 내려서 주유소에 차를 댔다. 그리고 기름을 채웠다.
날씨는 사막의 더위로 매우 더웠다. 그러나 슾기가 없기 때문에 그냥 더웠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특히 사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기후는 매우 친밀하였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들역시 고동색의 색깔을 띄우고 있었다. 이제 나는 사막에 들어 온것을 피부와 호읍으로 더욱 느꼈다.
나는 이번 순례의 여행을 통해서 깊고 의미있는 체험을 하기 바란다.
네시간의사막의 길을 횡단하면서 캘리포니아주와 아리조나주의 경계선 (State Border)을 통과 하게 되었다.
멀리 보이는 노란색과 초록색의 기는 아마도 아리조나주를 지적하는 깃발이었다. 나는 속도를 줄이면서 왼쪽에 고정되어있는 깃대를 보면서 지나갔다.
이제 부터는 아리조나 (Arizona)주였다.
경계선을 지나면서 느낀것은 자연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산들의 모습들은 거무스러웠다. 그리고 나무들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무더운 아리조나를 지나면서 아마도 자연의 풍경들이 무더운 날씨의 결과로 지역이 거무스럽게 타져있는 느낌을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캘리포니아주와 아리조나주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아리조나의 선인장(catcus)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옛적의 서부영화에서 나올때 보던 카우보이와 선인장이 떠 오르기 시작했다.
아리조나의 명물중에 하나인 키가 큰 선인장을 사구아로( Saguaro cactus)라고 부른다. 이 선인장은 아리조나주의 소노란 지역에서 자라며 멕시코의 소노라지역에서도 자란다. 옆쪽으로 팔같은 선인장이 자랄라면 칠십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수명의 평균이 이백년가량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뜨거운곳에서 사는데도 우리 인간 보다도 오래 사는 선인장이다.
나는 수도원의 훈련을 위해서 일부터 자동차의 에어콘을 계속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의 구름들이 특히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나의 느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이 사십년동안 시내 광야(Wilderness of Sinai)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특히 사막지역의 기후를 보며는 낮에는 너무나 덥기 때문에 구름은 보호의 역활을 해준다. 그리고 밤에는 온도가 갑작히 내려가지 때문에 금세 추워진다. 이때 불기둥은 온방 역활을 한다.)으로 보호하신 일같이 나도 보호함을 받는 느낌을 가졌다.
나는 기름을 채우기 위해서 피닉스(Pheonix, 아리조나주의 수도) 못 미쳐 있는 인근 주유소에 차를 세웠다. 역시 낮의 기후는 매우 건조하면서도 더웠다. 그래서 기름을 채우고 주유소안에 있는 마트에 들어가서 몸을 식혔다. 그리고 이곳에 진열된 상품들을 두루다니면서 구경을 하였다. 특히 냉동안에 진열된 음료수들이 눈에 띠었다. 나는 물을 구입해서 몸의 갈증을 해소했다. 진정한 음로수는 역시 시원한 물 밖에는 없다고 본다. 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생수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예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면서 마트를 나왔다.
이제 하이웨이 10번은 나를 피닉스 (Pheonix) 로 인도하고 있었다. 갑자기 차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는 가운데 여태까지 달려온 길은 2차선이었는데 갑자기 사차선 5차선으러 늘려났다. 그리고 가끔마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알고 보았더니 경찰이 직접 티켓을 않 띠어도 이 카메라는 자동적으로 속도 위반된 차량 번호를 찍어 집으로 직접 티켓이 날라 온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사람없이도 기계들이 더 정확하게 그리고 신속적으로 우리의 실수들을 잡아내고 깨닫게 한다. 그러나 기계들은 우리의 외적인 실수는 잡아낼 수 있어도 우리의 내적인 부패된 마음을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신앙만이 우리를 정화 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순의 길을 가고 있지 않는가?
피닉스는 미국의 남서부의 사막에 세워진 대 도시이다. 이러한 사막지역에 도시를 세운 이유는 농업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 강들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인디안들 때 부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농업과 감귤류등의 과일등을 재배하고 있다. 지금은 하이테크 분야쪽에서도 활발하게 팽창해나가도 있다고 한다.
“뜨거운 삼가이 변하여 못이 될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것이며…” (사 35: 7)
"The burning sand will become a pool, the thirsty ground bubbling springs" (NIV)
피닉스에서 시간을 보니까 오후 3시가 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떠난 시간은 오전 8시 그러니까 일곱시간 이상을 운전하고 온것이다. 느낌으로는 괜찬은것 같으나 몸은 매우 피곤해 있었다. 나는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이 느꼈다. 그리고 지도를 보니까 약 1시간 이상을 더 가야 수도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지도에서 지적하는 약도와 내가 준비한 약도와 자동차의 GPS (Global Positioning Systme, 범지구적 위치결정체계)는 다 다르게 지시하고 있었다. 나는 갑작히 혼돈이 오는것을 느꼈다. 어느 지시에 따라야 하는가였다. 지도, 내가 준비한 약도, GPS? 갑자기 어지려워 지면서 혼돈이 왔다. 그리고는 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수도원에다 전화를 했다. 그러나 엔서링 서비스만 나오는 것이였다. 나는 계속 달릴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차를 동쪽방향에서 서쪽으로 돌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캘리포니아쪽이었다. 당황한 가운데 무조건 본능적으로 고향이 생각난것이었다.
나는 핸들을 돌리면서 속으로 말했다. 나는 지금 여기서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도를 했다.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피닉스 공항쪽 출구로 차를 돌렸다. 그리고는 주유소로 갔다. 날씨는 매우 더웠다. 배고 곱았다. 지쳐 있었다. 나는 주유소 마트에서 일하는 종업인에게 내가 어지에 있고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리고 더운몸을 식혔다. 조금있다가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한가지 지도만을 선택해서 따르기로 했다. 이것은 GPS도 아니고 내가 준비한 약도도 아닌 그냥 지도였다.
내가 느낀것은 이것이다. 한가지 지시만 따라야 하는 것이다. 지시해주는 것이 너무나 많으면 혼돈이 온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갈길을 예수님께 맞긴것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오직 주만이 나의 전부인것이다. 다른길은 없다고 고백하고 싶다. 또 하나의 깨닭음은, 내가 피닉스 지역에서 방향을 읽고 헤멜때 나의 마음은 두 갈래고 나뉘어 졌다. 순례를 포기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실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했다. 그러나 나는 기도를 통해서 시험을 이겼다고 본다. 오직 감당할 시험만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지도를 따라 수도원까지 한 시간을 더 달리고 나서 도착했다.
4. 도 착 Arrival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행 21: 17
“When we arrived at Jerusalem, the brother reveived us warmly.” (NIV)
하이웨이 79번에서 파이사노길 (Paisano Drive 나중에 이길이 성 요셉 St. Joseph Way, 길로 바뀐다.)로 들어서면서 약 이 마일 가량 가보는 산언덕 위에 보이는 채플이 보인다. 전형적인 그리스정교회의 건축모양를 갖춘 이 채플이 이름은 엘리야스 채플(Elias’ chapel) 이다. 채플의 건물색은 하얀색이였으며 둥군 지붕은 지중해의 색인 파란색이 매우 특이했다. 얼마 안가서 나는 돌자갈바닥으로 깔아놓은 주차장에다 차를 대고 수도원의 정문을 바라 보았다.
저녁 노울에 비치는 황금빛같은 색을 지닌 정문은 그리스 건축 또는 비잔틴식의 건축식이었다. 그리고 정문 안으로 보이는 야자수들과 사이프레스 나무들속에 파무친 자그마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진짜로 수도원에 들어가는 구나 생각했다. 마음이 떨리면서 또한 설례이기도 했다. 미스테리(Mystery)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초대교회사 (Early Church history)시대의 교부였던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의 수도원 입문할때의 고백한 글을 기억해 보았다.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 은 그가 은혜를 체험하고 친구들과 함께 수도원적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그당시의 그의 고백을 적어 본다. “이때 나와 함께 늘 서로 의논하고 사귀던 친구들은 복잡하고 번거로운 인간 생활을 떠나서 조용한 곳을 찾아 이주하여 세상일에 시달리지 않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의견이 일치하는 친구들이 어울려 곧 실행하기로 결정하였읍니다.” (성 어거스틴 참회고록, 세계기독교고전 8. P. 162) 나 역시 순례자로서 수도원에 들어가는 심정은 세상과 단절되는 것 같았다.
20세기의 카톨릭교의 가장 엄격한 수도원인 트라피스트(Trappist )회의 수도자이며 명상가며 작가인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은 그의 자서전인 칠층산 (Seven Storey Mountain)에서 수도원의 들어가는 순간의 마음 상태를 이렇게 기록했다. “신부님, 나는 모든것을 하느님께 바치고 싶습니다.”(칠층산, p, 372) 하나님께 모든것을 마친 마음을 이해 할 것 만 같았다. 나는 이렇게 영성의 거성들의 결심의 특징은 결단이라고 보았다. 세상을 등지려는 결단이었다.
도착해서 제일 먼저 간곳은 책방옆에 있는 휴식처였다. 이미 몇 사람들이 이곳에서 수도사의 접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리스에서 온 순례자들이 아니지 모르겠다. 얼마 않있다가 검은 수도복을 입은 수도사가 나타났다. 긴 수염을 기른 그는 나에게 다가 오면서 이름을 말해 주었다. 신부 스라빔 (Father Seraphim)은 나의 이름을 물었다. 나의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눈을 처다 보았다. 그는 매우 진지해 보였으며 눈은 매우 총명스러웠다. 그리고 말을 더듬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본 사실이지만 이들은 별로 대화를 하지 않고 산다고 했다. 신부 스라빔은 나에게 어디서 왔으며 얼마나 머물를것을 물은 다음에 수도원의 예배시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동방정교회의 전례에 있어서 “예배”(Liturgy)라는 말과 “성체 예의” (Divine Liturgy)라는 말을 구분하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어로 보며는 더욱 구별을 볼 수 있다.
동방 정교회는 우리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예배(Worship)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예배(Worship)라는 단어는 는 기독교에서만 사용한다. 정교회에서는 예배대신에 “성체 예의” 또는 “성찬 예식”(Divine liturgy)이라고도 부른다. 개신교 예배와는 전여 다른 것 중에 하나는 정교회는 예배 종류가 많으며 내용자체들이 매우 섬세하다. 그리고 성체예배 때 신부들과 평신도들은 거의 서서 집행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을 사용하지 않고 비잔틴식 달력(Byzantine Calendar)을 사용핟다. 이 달력은 주후 7세기때부터 18세기때 까지 동로마제국(Eastern Roman Empire)때 부터 현제까지 존속하는 정교회 총대주교 (Ecumenical Patriarchates)지시하에서 사용한 동방전통의 교회력이다.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유동성이 많다. 특히 축제일이거나 행사의 날들이 변동될때가 있다. 부활절 주일은 매년 다르다. 그래서 항상 교회달력을 의지하게 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달력은 그레고리안식이다. 교황 그레고리 13세 (Gregory XIII, 1502-1585)가 율리우스달력(Julian Calendar)을 개종하면서 만든 달력이다.
수도원의 예의 시간도 일반적 개념의 시간과 다르다. 성 안토니 수도원의 예의 시간은 평일날과 주일날로 구분되어 져있다. 성무일과는 다음과 같다.
월- 토요일
1:15 AM - 4:00 AM 심야 예배 와 성체 예배
~ 4:00 AM
아침 식사
11:30 AM
점심 식사
3:30 PM - 4:30 PM
오후 3시 예배 와 초저녁 (석후과) 예배
4:30 PM
저녁 식사
5:00 PM - 5:30 PM
최종 예배 (만과)
주일
1:15 AM - 5:30 AM
심야 예배와 성체 예배
~ 5:30 AM
아침겸 점심
3:30 PM - 4:30 PM
오후 3시 예배 와 초저녁 (석후과) 예배
4:30 PM
저녁식사
5:00 PM - 5:30 PM
최종 예배 (만과)
음식은 육식을 금하고 있다. 그리고 평일 때에는 채소와 치즈와 올리브등을 섭취하며 특별한 절기 때에는 금식(Fast)으로 들어가거나 유제품을 멀리한다. 그리고 수도원의 일반때인 주중경우에 금식날짜들은 월요일, 수요일과 금요일로 알고 있다. 금식은 수도사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상생활 부분이었다.
스라핌 신부는 나에게 다른 수도자를 소개해주었다. 그의 이름은 넥타리오스(Nectarios)였다. 그는 수련 수사(Novice)였다. 그는 수도사가 되기위해서 훈련과 교육을 받고 있는 자였다. 스라핌 신부에서 풍기는 엄숙함과 경건함은 비록 떨어지지만 넥타리오스는 매우 상냥하고 친절했다. 그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건물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남자의 기숙사로 발을 옮겼다. 정문에서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걸으며 기숙사로 들어왔다. 수도원에서는 잠자는 구조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수도사들은 그분들나름대로 따로 방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방문객들과 순례자들을 위해서 남녀를 구분한 따로의 기숙사들이 있다. 넥타리오스는 나에게 방 5번을 제공해주었다. 조그마한 방이였고 옆에는 두개의 침대가 양쪽벽으로 놓여있었다.
침대하나위에는 이미 여행가방과 책이 놓여있었다. 이미 순례자가 차지를 했다. 나의 룸메이트의 이름은 펜테로스였다. 그는 카나다 토론토 (Toronto, Canada)에서 사는 그리스-미국인이였다. 그는 약 사십대쭘 되어 보였고 현재는 혼자되었다고 한다. 그는 정교회교인이며, 올해가 8년째 여름에 휴가를 내어서 이 수도원을 찾아 온다고 했다. 펜텔로스는 신앙생활을 생명같이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진지함을 보면서 그의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오후 5시에 있는 최종기도시간 또는 만과 예의(Small compline)에 참석했다.
예배장소는 성 넥타리오스(St Nektarios)였다.
5. 수도원 건물 Chapels in the Monastery
“너희는 산에 올라사서 나무을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학 1: 8
“Go up into the mountains and bring down timber and build the house, so that I may take pleasure in it and be honored” (NIV)
a. 성 앤토니우스 교회 (St. Anthony Church)
이집트 수도원의 창시자인 앤토니우스(Anthony)의 이름을 따서 세운 교회이다 수도원 역시 같은 수도사의 이름을 따서 세워졌다.
이 교회당은 수도원에서 가장 크고 많이 사용되는 곳이다. 비잔틴식의 예배가 매일 드려 지는 곳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동방정교회의 상징인 둥근 천장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것들이 펼쳐진다. 둥근 천장의 모양은 천국을 상징한다. 또는 우주의 둥근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교회당에 들어가 보면 한 가지 특이한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좌석들이 없다는 것이다. 예배는 거의 서서 드리는 것이 기본이다. 이것도 십분이나 삼십분이 아닌 한 시간에서 세 시간 동안을 서서 드리는 것이다.
벽쪽으로 기대는 의자(Tall Chairs, Stasidia) 들이 들어서 있어서 서 있을 떄에 기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것을 접으면 앉을 수 도 있다. 그래서 피곤할 때면 기대는 의자에 앉을 수 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기대는 목적으로 만들어 져있다.
기대는 의 외에 교회당의 진열된 모든 성물들은 다 그리스 (Greece)에서 가져온것이다. 그리고 많은 것들은 손수 만든 물품들이다.
교회당에 들어가자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성모 마리아(St. Mary)의 성화이다. 정식 이름은 판하기아 아리조니티사 (Panagia Arizonitissa, Virgin of Arizona)이다. 순례자들(Pilgrims)은 이 성화를 보면서 입을 성화에 맞추기도 한다. 그리고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교회당에는 전깃불이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단지 두 곳에만 전깃불이 들어온다. 성창을 부르는 곳에 만 전깃불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촛불을 사용해서 빛을 비춘다. 천장가운데 내려오는 촛불은 천국의 교회를 상징한다. 특히 성례일 때에는더 많이 피우기도 한다.
단(Altar)은 커튼 뒤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오직 신부들만 들어가는 거룩한 곳(Holy Place)이기도 하다. 그리고 감독좌석이 중앙 한 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좌석은 오직 감독만 앉게 되어있다. 그리고 역시 그리스 에서 손수 만들어서 보내왔다. 그리고 벽들에는 성자들과 성녀들 그리고 교부들의 성화들이 걸려져 있다.
b. 성 니콜라스 채플 (St. Nicolas Chapel)
수도원 서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정원이 나온다. 이 곳을 통과해서 계속걸어가면 성 니콜라스 채플이 나온다. 모자이크(Mosaic)의 돌들로 건축되어있다.
이 채플 역시 비잔틴식 (Byzantine)건물이다. 정면으로 볼때에 세 개의 창문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운데 창문은 양쪽의 창문보다 약간 큰것이 대조적이다.
이곳에 들어가 보면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을 받는 다. 성 니콜라스는 기적을 베푸는 성자로 알려져있다. 그는 4세기의 성자로서 그리스 (Greece)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마이라(Myra)의 감독으로 교회를 섬겼다.
채플 왼쪽에는 성모 마리아의 성화가 걸려 있다. 오른쪽에는 그리스도의 성화가 걸려있다. 그리스도의 왼쪽 손에는 펼쳐진 성경을 들고 있으며 오른 손은 승리의 사인을 하고 있다. 벽 기둥은 고린도식으로 장식한 기둥들이 서 있으며 바닥은 대리석으로 깔려져있다. 스테인 유리 (Stained Glass)로부터 들어오는 빛은 은은하였다.
c. 성 조지 채플(St. George Chapel)
이 채플은 로마니아 스타일(Romanian Style)로 건축되었다. 삼각형의 모자를 쓴듯한 지붕들이 대조적이다. 성 조지 옆에 세곳의 건물은 영빈관으로 사용된다. 채플안에 있는 가구들은 다 그리스에서 온것이다. 성상들은 다 직접 손으로 만든 물건들이다. 성상들은 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본 따서 새긴 족각 작품들이다.
채플 사이로는 감람나무(Olive Trees)들이 심겨져 있어 서 광경을 더욱 고풍스럽게 만들어 준다.
d. 성 드메트리오스 채플 (St. Demetrios’ Chapel)
데살로니가의 성 드메트리오스(St. Demetrius of Thessaloniki)는 4세기 순교자 (Martyr)이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 세워진 채플이다. 옆에는 스페니쉬 분수 (Spanish Fountain)가 사막의 더위를 시원하게 해 주고 있다.
채플 러시안식( Russian)으로 금속으로 장식한 둥근 지붕 (Onion Dome)이 특이하다. 이 건축을 보고 있으면 러시아 정교회의 교회 (Russian Orthodox Churches)들을 상기 시켜 준다. 이 채플은 러시안의 깊은 영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e. 십자가의 분수 (Fountain of the Cross)
십자가의 분수는 돌로 건축된 성물이다. 분수는 둥근 항아리 모습니다. 그리고 하늘색으로 칠해진 바닥의 찬 물들이 더욱 보는 이로 하여금 피곤하고 지친 영혼과 육신을 시원케 해 주고 있다.
분수 의에 세워진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십자가 모양이다.
이 십자가의 특색은 막대기가 두 개가 아닌 세 개가 붙어져 있다. 전형적인 십자가는 한개의 막대기가 붙어있지만 러시안 십자가는 세 개가 븓어있다. 이유는 첫 번째 막대기는 예수님의 패말이 적혀져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막대기는 손들을 위해서 있으며, 세 번째 막대기는 발판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세 번째 막대기는 약간 옆으로 비스듬하게 박혀져있다.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때에 양쪽으로 두 강도가 동시에 달여 있었다. 그런데 한 강도는 구원을 얻었고 다른 강도는 버림을 받았다. 그래서 천당간 강도를 기억하기 위해서 막대기를 한쪽은 하늘로 향해져있으며 다른 쪽은 지옥을 향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비스듬히 아래쪽으로 놓여져 있는 것이다.
f. 성 스라빔의 분수와 채플 (St. Seraphim’s Fountain and the Chapel)
스라보의 스라빔 (Seraphim of Sarov, 1754-1833)은 러시안 성자이자 수도사이다. 그는 19세기 러시아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던 자로서 캐톨릭교회서도 인정을 하는 수도사이다.
그의 신앙은 평신도 뿐만 아니라 성직자들도 존경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20-2005) 그의 글을 통해서 스라빔을 성자라고 칭하였다.
스라빔 (Seraphim)은 수도원적 기도와 명상 그리고 자신을 부인할 것을 가르쳤다. 그는 신자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성령님의 충만함을 얻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일생을 슾속에서 거하면서 금식과 잠가는 것을 줄이면서 기도에만 열중하였다. 그리고 음식을 먹더라도 하루에 한 끼만을 섭취했다. 그의 영성은 온 러시아 뿐만 아니라 정교회 신자들의 마음속에 지금도 살아있다고 한다.
성 스라빔의 채플 (Seraphim’s Chapel)역시 크지는 않지만 매우 간단하게 제조되어있다.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원한 느낌을 준다. 가운데 걸려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모습은 성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건물 전체가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나타내 주고 있다.
g. 안 마당 (Courtyard)
수도원 중앙에 위치한 안 마당은 피알리 (Phiali)라고 부른다. 피알리 (Phiali)는 조그마한 분수가 있는 전망대 (Watchtower)이기도 하다. 하얀 석가루로 빚어진 전망대 (Watchtower)는 둥그헣게 앉아서 서로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기 좋은 곳이다. 또는 혼자 앉아서 분수를 보면서 명상을 하기에도 좋은 장소이다.
이 밖에도 수도원 전부가 온갖 휘귀한 나무들과 열매 나무들로 심겨져 있어서 매우 우화스럽다. 그리고 바깥쪽으로 감람나무(Olive Trees)들이 있어서 명상이나 산책하기도 좋다.
6. 예배 The Liturgy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아에 무릎을 꿇자”- 시 95: 6
“Come, let us bow down in worhip, let us kneel before the LORD our Maker;”(NIV)
성 안토니 수도원의 하루는 저녁에서 부터 시작한다. 만과 (최종기도 시간, Compline)는 저녁식사후 드리는 마지막 예배이다. 그리고 나서 취침으로 들어간다. 시간은 오후 7시 30분이다.
나는 첫날에 도착해서 석후과 (Vesper)예배를 마치고 내 숙소방으로 들어와 기도를 드리고 잠 자리에 들었다. 저녁 기후는 선선했다. 그래서 이불도 덥지 않고 그냥 잠을 청했다.
“뚝뚝뚝”
“예배시간입니다. 어서들 일어나세요”
나는 수도사가 방문을 노크하면서 깨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그리고 옆을 보니 펜탈로는 이미 예배당에 간것이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예배당으로 향해 걸어갔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오전 12시 40분에 일어나니까 이 자체가 은혜스러웠다. 하늘을 쳐다 보았다. 보름달이었다. 금색의 색깔을 띤 달은 매우 환상스러울 정도로 밝았다. 그리고 하늘에 점점히 떠있는 구름은 야경을 더욱 신비스럽게 만들었다. 아직도 더운기와 차가운 밤 공기는 조금 무거운듯 했다. 그러나 이곳은 나에게 파라다이스(Paradise)였다.
예배실을 들어갔다. 복도의 벽에는 성화 (Sacred Paintings)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수입해온 신도석 (wooden chairs)들은 둘례로 돌아가며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촟불들을 붓이는 신자들 기도를 하는 신자들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어린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물론 부모들이 대리고 왔겠지만 한 아이들도 불평을 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이들 대부분 예배식에 따라 의례를 행했다. 물론 어떤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서 졸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떤 아버지는 애기를 안은 상태로 예배를 섯다 앉았다 하면서 드렸다. 이들의 열심을 또 한번 보면서 감탄하였다. 물론 열심이 있으니까 수도원까지 순례의 길을 택했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예배당 복도나 예배실에 전기 불이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공간을 촛불로 비추어 지고 있었다. 그리고 은은한 향 냄새는 나의 시각, 청각, 후각까지 자극시켜주었다.
나는 신도석에 조용히 앉아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않있다가 밖에서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종소리는 예배를 알리는 소리였다. 수도사들을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그리스어로 들리는 말씀과 시편등을 봉독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수도사들은 자유로 움직이면서 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리고 신자들 역시도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예배에 동참하였다.
예배석 배치도 여자와 남자가 구분되었다. 여성도들은 왼쪽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남성도들은 오른쪽 부분에서 참석하였다.
오전 5시 쯤 되니까 성찬식이 거행되었다. 마지막 예배의 순서이었다. 나는 비록 정교회 교인이 아니어서 성찬식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성쳬를 주는 신부들과 성도들의 진지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다만 이들의 모습으로 볼때 진짜 예수님의 피와 몸을 섭취하는 것 같았다.
아침 예배를 마치고 나서 이들은 식당으로 갔다. 물론 비 정교회인들은 이들이 식사를 하고 날때 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유는 정교회의 전통은 식사 까지고 예배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밖에서 나와 같이 기다리는 자들과 서로 얼굴을 처다 보면서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식당문이 열려지면서 벨소리와 성화를 들고 나오는 수도사들이 나아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후에 신자들이 나오면서 신부들에게 인사를 하고 성화에 입을 마추거나 절을 하고 나갔다.
나는 여기서 역사와 전통에 서 흘러나오는 신앙심과 열심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몇 않되는 순례자들과 아침을 먹었다. 아침식사 메뉴는 수도원에서 구운 빵들 (Toast Bread)과 치즈 (Cheese), 스크램불계란 (Scrambled Eggs)과 땅콩버터 (Penutbutter)와 잼 (Jam)들과 시큼한 올리브 (Olives)였다. 그리고 수박이 열매간식으로 나왔다. 나는 아침을 하고 나서 기숙사로 갔다. 아침식사후 3시간 동안 경건의 시간이 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잠을 자는 시간으로 삼았다.
주일이기 때문에 나는 주일 대예배를 기대했으나 수도원에서는 대 예배가 따로 없었다. 오후 3시의 예배 (Sixth Hour)와 석후과(Vesper)가 있었다. 석후과 예배는 초저녁 예배라고 부르며 취침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예배이다.
나는 넥타리오스에게 왜 대 예배가 없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주일은 쉬는 날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주중에는 신부들이 예배때문에 더 바쁘다고 했다. 나는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주일에 안식일이라는 만큼은 이해가 갔다.
나는 낮에 산책을 하면서 말씀묵상과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이러한 수도원경험과 체험은 어색하지 않음을 느꼈다. 이말을 쉽게 이야기 해서 나는 이러한 삶을 좋아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들이 사용하는 그리스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배또는 수도사들의 삶자체는 나에게 매우 자연 스러웠다.
사막의 분위기, 기도와 예배로 찬 분위기, 수도사들의 영성들, 진지하게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과 순례자들은 나에게 이들과 한 지체가 되는 것을 느꼈다. 물론 개신교 목사의 입장으로서 모든것이 자 완전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들이 믿은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 하나님이시다.
문화와 언어와 풍습을 않 따질 수 는 없지만 이곳에서 체험한것은 이러한 차이들이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체험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천국에서도 이러한 느낌이 아닐 가 생각해 본다. 온 나라지파들의 사람들, 온가지의 방언들, 물론 천국에서는 통역하는일이 없을 것이다. 이유는 모두가 서로들 알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예수님과 영원히 산다는 자체는 모든것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 20)
"Amen. Come, Lord Jesus" (NIV)
7. 성찬식 The Eucharist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전 11장 23-25
“For I received from the Lord what I also passed on to you: The Lord Jesus, on the night he was betrayed, took bread,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broke it an said, ‘This is my body, which is for you ;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In the same way, after supper he took the cup, saying, ‘This cup is the new covenant in my blood; do this, whenever you drink it, in remembrance of me.’” (NIV)
나는 수도원에서 예배를 참석하면서 이들의 진지함과 열심을 보고 매우 감동을 받았다. 우리 개신교는 예배가 거의 엔터테인멘트 수준인 반면에 정교회의 예배는 사람들 위주가 아니라 예수님위주인것을 체험했다.
몇시간에 걸처서 드려진 예배후에 마지막으로 남은 순서는 성찬식의 거행이었다. 이 행사이야 말로 정교회의 예배의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어두운 새벽미명에 촛불로만 비춰지는 불빛가운에 드려지는 성찬식은 마치 중세에 나오는 성화의 한 장면을 상기시켜 주었다.
금실로 장식한 꽃무니가 박혀진 사제복을 입은 사제들은 둘로 나누어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성체물을 나누어 주었다. 사제들은 포도주에 적셔진 자그마한 빵조각을 자그마한 수저에 담는다. 각 한사람 한사람씩 기도하는 자세로 나와서 선체로 사제들이 넣어주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아 먹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자세는 평신도들이 서서 성체를 받는 다는 것이다.
신자들은 성찬식에 참여하기 전에 엄격한 금식을 한다. 전날 부터 시작하는 자들도 있다. 그리고 주일 아침에 일어나서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금식을 할때는 동물에게서 나온 음식들은 금한다. (예, 우유, 버터, 치즈, 고기등이다) 금식의 목적은 성물을 대하는 준비와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 이다.
물론 개신교인 나는 직접 참석할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예배만 보고있어도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
정교회는 성찬식을 일년에 세, 네번정도 거행하였다. 이렇게 자주 할 수 없는 이유 하나는 준비과정이 너무나 길어서 였다. 그러나 요사히 정교회는 매주 집행하는 추세이다.
정교회에서는 안티도론 (Antidoron)이라는 떡과 잔을 비 정교인들에게나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 있다. 안티도론은 축복된 떡과 잔이다. 성찬식에 사용되고 남은 것이나 성별되지 않았기 때문에 효력은 없다. 그러나 이 물체를 받으려고 하는 자들도 많이 있다.
정교회의 성찬식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정교회의 성찬식의 정의는 개신교와는 매우 다르다. 우리는 성찬식에서 떼어주는 성물에 대해서 몇 가지로 해석을 한다. 성찬식 자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시한 말씀대로 행하지만 성물은 예수님의 피와 살로 믿지 않는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성찬식 (Sacrament)을 하나의 미스테리(mystery)로 보고있다. 이 말은 잔 (Cup)과 떡 (Bread)이 진짜 예수님의 피(Blood)와 살(Flesh)로 변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믿음을 가지고 떡과 잔을 대할때 거기에 은혜가 임한다는 것이다.
스위스 종교개혁자 쥬빙글리 (Huldrych Zwilgli, 1484-1531) 역시 성찬식을 화체설(Transubstantiation)로 믿지 않고 상징(Symbol)적으로 이해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식을 나누셨을때 하신 말씀 “이것은 내 몸이니”를 이것은 내몸을 상징한다”라고 이해 했다. 지금도 많은 개신교 교단 (Protestant denominations)에서는 쥬빙글리의 상징적 (Symbolic)이해 보다는 칼빈 (Calvin)의 미스테리 (Mystery)쪽의 이해를 따르고 있는 편이다.
그리스 정교회의 성찬식 이해는 매우 다르다. 이들은 화체설 (Transubstantiation)을 믿는다. 이들은 성찬식을 감사의 제단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Eucharist”라고 부르지만 어원은 그리스어의 “감사”(Eucharist, 헬라어 뜻)에서 나왔다. 성찬식은 또 하나의 희생 (Sacrifice)또는 제물(Offering)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희생의 전부는 예배(Liturgy)이다. 신자들은 예배(Liturgy)를 통해서 자신들을 하나님께 드림같이 성찬식(Eucharist)에서 드려지는 희생은 그리스도 자신(Christ Himself)인것이다. 이들이 드려지는 떡과 잔이 그리스도의 자신의 희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떡과 잔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찬식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Jesus)자신이 직접 희생의 제물이시며 죄인(Sinners)들을 위해서 바치신것이다. 이러므로 신부가 성찬식 때 드리는 기도중에 이렇게 기도를 드린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희생의 제물이 되시었으며 또 제물로 드려지셨습니다.” 정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을 성삼위 하나님께 드려진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교리는 1156-7년 콘스탄틴노플 공회(Council of Constantinople)에서 결정난 교리에 비추어 진것이다.
성 삼위일체 (Holy Trinity)께 드려졌다는 의미는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그리고 성부 (The Father) 하나님과 성령 (The Holy Spirit)하나님께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드려 졌다는 것이다. 정교회의 교리를 보며는 성찬식은 속죄의 제사(Redemptive Sacrifice)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도(Christ)는 믿는 자들과 죽은자들에게 까지 다 구세주(The Savior)가 되신자는 결론이다.
이렇게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자신을 죄인들을 위해서 드리는 거룩한 희생인것이다. 영원하고 독특한 만찬은 사실 교회(Church)의 거룩한 만찬인것이다. 이것이 성찬식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의 의미이다.
나는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신앙은 살아갈 수 록 깊구나 하는 것을 깨닭게 되었다. 나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신 예수님께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8. 기도 Prayer
“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 4: 17
“Pray continually” (NIV)
그리스 동방 정교회의 기도 신학(Theology of Prayer)은 한 마디로 풍부하다. 이 말은 이들은 많은 기도문들(Prayer Books)과 기도형식 (Prayer anthology)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도원(Monastery)은 기도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기도 (Prayer)에 대해 많이 발달되어 있다.
개신교 (Protestant)입장에서 볼때, 무슨 기도가 책들로 나와있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로서 많은 성자 (Saints)성녀들(Saintesses), 평신도(Lay believers)들이 드렸던 기도들을 편집한 기도문 (Prayer Books)들은 이들에게 매우 사랑을 받고 있으며 많이 보급되어 있다.
가장 많이 드리는 기도문중에 하나는 예수 기도(Jesus Prayer or Prayer of the Heart)이다.
예수기도는 매우 간약한 기도이다. 내용은,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또는 짧게도 “주 예수여”이다. 영어로는 Lord Jesus, have mercy on me, 어떤때에는 “a sinner”를 삽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Lord Jesus Christ”라고 드리는 기도이다. 그리고 다른 번형의 기도들이 예수기도에서 발산되기도 하였다.
정교회에서는 예수기도를 번벅하면서 기도를 드린다. 특히 수도사들은 이 기도를 호흡을 하는 이상 만큼 마음을 집중해서 또는 심장의 박동에 따라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드린다.
나는 수도원에 있으며 수도사들이 매번 어디에 있든지 예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의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인간이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변화됨을 인식하는 행동이다. 기도의 뒤에는 성령님의 역사가 항상 따른다. 그래서 기도와 성령(The Holy Spirit)의 역사는 때어 놀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Grace of God)인것이다.
예수 기도중에 신학적으로 네 가지 중요한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로는 예수님의 거룩한 성호(Holy Name)의 중점이며, 둘째로, 하나님의 자비(God’s Mercy)에 호소하는 것, 셋째로, 계속 반복함의 대한 영성 훈련 (Spiritual Discipline), 넷째로, 내적 묵상(Inner Contemplation)으로 인도함으로 나누어 불 수 있다.
나는 수도원 (Monastery)에서 느낀것 중에 개신교의 기도원(Prayer Mountain)의 차이를 체험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도실의 골방(Prayer closet)이었다. 수도원에서는 특별히 기도하는 기도굴 (Prayer cave)또는 기도방(Prayer room)이 따로 없었다. 다만 자기가 머무는 골방(cell)이 전부이다. 그래서 나같은 순례자(Pilgrims)들은 따로 어디 가서 왜치거나 부르짖는 기도를 할 곳이 없었다. 그리고 이들이 통성 기도 (Calling Out Prayer)나 울면서 애통하는 기도 (Crying Out Prayer)를 하는 것을 찾아 볼 수 가 없었다. 나는 나의 나름대로 이들의 문화차이가 아닌가 아니면 그렇게 부르짖을 만한 기도 내용이 없는 가 생각해 보았다.
수도사들은 이들의 삶 자체 (Life Style)가 기도같이 느껴졌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세상을 초월한 자들이다. 이들은 삶 자체가 죽는 연습 (Practicing of Dying)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사는 것이 죽은것 같고 죽은 것이 산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여기서 수도사들과 평신도들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영적의 일을 하려고 하며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자세를 영적의 채널로 바꾸어야 하지만 수도자들은 그러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고 죽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때 이들은 우리 일반 사람들이 같는 갈등이나 시련이 없다.
물론 이들은 이들의 나름대로 시험과 유혹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허황된 꿈, 환상, 질투, 게으름, 이러한 죄의 유혹들이 이들을 공격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의 신앙대호 대치 할것 뿐이다.
수도자의 긍극적인 목표 (Ultimate Goal)는 자유(Freedom)이다. 세상의 염려와 걱정에서의 자유, 미래에서의 자유, 과거의 실수에서의 자유, 자의에서 부터 자유등등이 있다. 이러한 자유를 같기 위해서는 이들은 세상을 포기한자들이다. 세상을 단념한자들인것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명령을 순종한 자들이다. 마태복음 19장 2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하린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간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부자 청년에게 주신 말씀은 다 수도자들에게도 주신 말씀이다. 기독교의 수도원제도의 창설자인 성 안토니(St. Anthony)는 그의 구도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세상을 포기해라 그리하면 하나님안에서 발견될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에 공통점은 포기 또는 단념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자들은 예수안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세상을 포기 한자들인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조롱과 픽박을 받으면서도 세상이 빼았을 수 없는 자유와 평화를 느리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기도가 아니면 무엇인가
9. 친 교 Fellowship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 20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 (NIV)
내가 제목을 친교로 붙여 놓았지만 사실은 내가 수도원을 친교하려고 간것이 아니었고 또한 수도원 자체가 친교를 하는 곳이 아닌것도 나는 안다. 다만 크리스챤으로서 친교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랑의 나눔이라고 생각해서 적어 놓은 것이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에 보며는 “성도의 교제와”라는 구문이 나온다. 성도의 교재는 기독독으 핵심 가르침 중에 하나인것이다.
나는 이박 3일을 수도원에서 보내며 나 나름대로의 친교가 있었고 형성되었는가 문답해 보았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이었지만 나는 여러번의 친교를 할 시간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다. 첫번째의 친교는 나의 룸메이트였던 펜텔로스와였다. 그는 나에게 수도원에 있는 동안 좋은 가이드였다. 그는 8년째 매년 여름마다 휴가를 내어가지고 이 수도원에 찾아와 영적 휴식과 충전을 하는 것이었다.
펜텔로스는 나에게 정교회에 대해서 진지하고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 해주었다. 우리는 침대 위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과연 크리스챤은 친교가 중요하구나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는 나의 수도원의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많은 점을 남겨 주었다. 그는 또한 아침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Volunteer)로 수도원의 정원 (Garden)에서 일을 하는 것이 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순수 자원 봉사였다. 하루는 내가 책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 데 그가 들어왔다. 그는 얼굴에 땀 방울이 더덕 더덕 붙어 있었으며 얼굴은 햇빛에 타서인지 불그스럼했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그는 나에게 나가와 반겨히 맞았다. 그는 아마도 밖이 너무나 더워서 에어콘이 돌고 있는 책방에 조금이나마 쉬로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책방에서 마련한 냉수와 초코렛트 과자를 먹으면서 더위를 식혔다. 나는 수도원에서 어색할 줄 만 알았으나 이렇한 좋은 룸 메이트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두번째의 친교는 넥타리오스(Nectarius)였다. 그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도원을 잘 설명해주었고 또한 좋은 말벗도 되었다. 그는 항상 바쁘게 다녔지만 항상 내가 원하며는 언제든지 도와 주려는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토한 책방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더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
그외도 서로 인사를 통해 만난 수도사들, 신부들, 그리고 순례자들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친교에 대해 또 한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름은 아델 (Amel)이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Uzbekistan)에서 온 러시아 (Russia)계 한인이었다. 그는 아버지는 한국분이었고 어머니는 러시안인이었다. 그는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 그러나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러시안 정교회의 교인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메사츄세츠에 가족과 머물고 있다고 했다. 아델은 아내와 아들을 대리고 이 수도원를 방문했다고 했다. 그는 열심이 있는 신자였다. 온 가족을 데리고 와서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이 었다. 황금같은 여름휴가를 수도원에서 보내는 열심을 볼때 그의 신앙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 식사때 만났다. 우리는 얼굴 생긴 것이 아시안 처럼 생겨서 더욱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나누었고, 또 식사를 마치고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는 소명자로 부른 확신을 없었지만 신앙을 잘 지키는 믿음있는 성도였다. 그는 말 하나 하나도 조금있게 그리고 예절을 지켜 가면서 나를 대했다. 그는 한국사람이라기 보다는 러시안계쪽의 문화를 가진 자 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하는 행동이나 생각은 동양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한국사람이라서 그런지 나성에 있는 교회를 말하면서 목사님의 이름을 대는 것이었다. 나는 잘 모르는 목사님이지만 그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짦은 기간이었지만 귀한 여러분들을 통해 친교를 나눌 수 있었다. 에델, 넥타리오스, 펜텔로스, 마가신부, 스라핌신부들은 나에게 천사와 같았다. 하나님께서 이 외로운 사막가운데 나를 보내시고 동방정교회의 수도원에서 영적의 축복만 주신 것이 아니라 이러한 귀한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게 해주신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살 할 뿐이다. 이제 나는 이들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인도를 함께 생각할 것이다.
10. 책방 The Bookstore
“이 모든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희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 4: 15
“Be diligent in these matters; give yourself wholly to them so that everyone may see your progress.” (NIV)
성 앤토니 수도원(St. Anthony Monastery) 에 도착하게 되며는 제일 먼저 들려야 하는 곳이 책방 (Bookstore) 이다. 이곳에서 접수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도원에 있으면서 이곳을 자주 찾았다. 이유는 여기에 볼만한 책들과 기념품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개신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그러한 기념품들, 성화, 정교회식의 십자가, 동방교회소개에 대한 책자들, 사막의 수도사들의 저서들이 판매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서 순례지들도 만나 볼 수 있었다.
책방은 산뜻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향을 피운흔적이 있어서 그런지 방 자체도 더욱 신비 스러웠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물품들은 그리스에서 수입된 것들이 매우 많다. 특히 앗토스산 (Mt. Athos , 동방정교회의 영성을 지탱해주는 20개의 수도원이 있는 그리스에 위치한 반도이다.)에서 직접 제조한 십자가, 성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수도사들이 직접그린 성화들도 구입할 수 있다.
여기에 책들은 거의 영어아니면 그리스어로 되어있다. 한글로 번역된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들이 동방정교회에 대한 이해를 바로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때 더욱 더 풍요롭고 의미있는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책방의 특징은 항상 시원한 생수와 다과가 준비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봉사가운데 하나는 손님을 맞이 하는 자세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손님을 항상 천사로 비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말은 마치 아브라함 (Abraham)이 손님을 맞이 할때에 하나님의 천사 (Angel of God) 로 맞이 한것 처럼 이들의 손님대접하는 정신은 마치 천사(Angel)를 대접하듯이 깍듯이 대한다.
그래서 불편함이 없는지 무엇이 필요한것이 없는 지를 항상 물어보고 공급해주려 노력한다. 이점을 고려해 볼때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고 매 마른지를 생각해 보았다.
기독교의 국가 (Christian Nation)라고 불리우던 미국은 이제 불친절과 의심과 개인주의로 팽창해 져있지만 이곳에서 다시한번 그리스도의 복음이 실천되는 것을 보면서 믿는 우리자신들도 얼마나 복음에서 멀어져 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 사는 곳으로 돌아가서 복음의 소금이 되어서 세상에 그리스도의 맛을 주는 그러한 자가 되리가 결심하였다.
나는 책방에서 일하는 넥타리오스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시간이 되며는 성자의 유물이 전시되어있는 채풀(Chapel)을 구경시켜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약속 시간에 돌아왔지만 넥타리오는 계속 바빠서 나에게 개인 시간을 낼 수 가 없었다. 특히 그는 혼자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해를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다음 기회에 성자의 유물을 보기로 약속하고 책방을 나왔다.
나는 메니큐어같이 닥아온 돌길을 걸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영성은 다른것이 아니라 대화와 진실함에 있다는 것을 깨닭았다. 아무리 영성이 뛰어나고 훌륭해도 진실하지 못하거나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믿게 되었다. 수도원의 모든 자들은 다 각자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존재하는것 처럼 느껴졌다. 마치 나는 사도 바울의 사랑의 대해서 한 말씀 구절이 생각났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꾕가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삭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것으로 구제하하고 또 내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것을 참으며 모든것을 믿으며 모든것을 바라며 모든것을 견디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 전서 13장 1-7, 13절 (개역한글)
나는 사랑에 대해서 묵상을 하면서 수도원을 돌아 보니까 갑작히 더 조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아무도 없고 나만 주님과 동행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조용한데서 묵상과 기도를 드리게 되어서 더욱 감사했다. 과연 수도원은 상상할 수 없는 체험들을 순간 순간 마다 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특히 아리조나의 사막 한 복판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이러한 역사를 체험하는 것은 분명한 은헤이며 특권이었다.
수도원에서 생각 밖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는 나는 정말로 이곳에 잘 왔구나 하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내일을 내가 이곳을 이제 떠나야 하는 날이다. 벌써 4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변화된 자였다. 이것만은 분명하였다. 세상으로 가며는 무엇이 나를 기다릴까? 어떠한 유혹들이 기다릴까?
11. 마지막 날 Last Day On the Monastery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 20b
“And surely I will be with you always, to the very end of the age.” (NIV)
나는 수도사가 문을 두드리기 전에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 때문에 깊은 잠을 갖지 못했다.
캐톨릭교에 속한 성 요셉 대수도원 (St. Joseph Monastery)의 트라피스틔회(Trappist)의 수도승이었던 바실 페닝톤 (M. Basil Pennington)은 수도사의 정의를 말할때 수도사는 자유함이 있는자이다, 모든것에서 자유스러워해야 하며 또한 주님이 부르실때 곧 바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하는 자이다. 이것이 우리의 빈곤이요, 우리의 순종이며 우리의 독신이다. 이러한 자유들은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안에서 과연 자유한가 이것이다.
나는 25년 전에 신학생으로 소명을 받고 주님의 사역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서 많은 해를 거쳐서 항상 바라고 원했던 수도원 순례의 발을 디뎠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를 하자면 나는 분명히 성장했고 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역사하심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천국의 문에 들어갈 때까지 인도해 주심을 확신한다.
그리고 성 안토니 그리스 수도원 (St. Anthony Greek Monastery)을 떠나면서 체험하였고 느낀것을 적어 보고자한다.
나는 이 짧은 기간이었지만 수도원의 단순하고 순수함을 체험하였다. 동방정교회의 예배를 직접 체험했고 여기서 교회의 전통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닭았다.
수도원은 사랑과 협력과 합심으로 운영이 되며 형성됨을 보았다. 성별된 삶의 가치는 수도사의 내적에 가치로 전달함을 보게 되었다. 영적인 아버지 (Spiritual Father)의 위치의 중요함을 다시금 깨닭았다.
개인적으로 주님과 더욱 가까워졌다.
겸손은 신앙생활의 기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전부이다.
끝에 적은 하나님늬 사랑이 전부라는 말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자 한다.
나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계를 체험하지 못하면 사실은 기독교의 중심을 이해하거나 추측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거나 주님(Lord)으로 섬길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의 빠져있지 않으면 믿는 자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가 어떠한 사랑을 하게 마련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물질에 대한 사랑, 인간 사랑, 동물사랑, 이상에 대한 사랑 등드이 자신의 존재함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애정없이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이미 아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 인간이 창조주에게로 돌아 오는가 인것이다.
사람은 얼마 만큼 노력을 하며는 거기에 대한 평화와 만족과 기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긍극적인 평화, 만족 그리고 기쁨은 복음을 따르는 삶, 다시 말해서 창조주을 사랑하고 피조물을 사랑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런한 방법을 알기 위해서 신자들은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택한 자들은 사실은 자유한 자이며 또한 자유한 것이다.
나는 이번 수도원의 순례를 통해서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고 마음속에 깊이 새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방에 널려져 있던 옷과 잠옷 그리고 세면기통을 여행 가방속에 차곡 차곡 쌓았다. 그리고 마지막 기도를 방에서 드렸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말로만 듣고 그림으로 보았던 성 안토니 동방정교회의 수도원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은혜의 자리에 참석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곳에 찾아오는 자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게 해 주시며 수도원에서 밤낮으로 주님을 섬기는 주님의 군사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들의 기도가 주님 오실 그 날까지 끊임없이 흘러나오게 하시옵소서. 판텔레스 성도, 넥타이로스, 아델 가족 특히 기억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는 나의 거처지를 나와서 다시 한번 채플을 돌어보고 책방에 들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하고 있는 네타리오스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잘가라고 인사를 해 주었다. 나 역시 기도를 부탁했다.
나는 나의 모든것을 공급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나의 삶터로 떠났다.
12.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10번 Interstate Highway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 6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 (NIV)
나는 수도원에 오기 위해서 사용한 길들(Ways) 중에 가장 긴 여행을 한 곳이 하이웨이 (Interstate Highway) 10번이였다.
인터스테이트 10번 도로는 대륙횡단의 고속도로이다. 이 뜻은 이 도로는 미국의 각주(Each State)를 통과하거나 지나간다는 것이다. 10번 도로는 미국의 남쪽 지역의 주들을 통과한다. 이 도로는 캘리포니아(California)주의 서쪽 바다 도시인 산타모니카 (Santa Monica)에서 시작되어 플로리다주(Florida) 의 도시인 잭슨빌(Jacksonville)까지 이어지는 대륙도로이다. 거리로는 2460마일(3959 Km)정도 된다. 이 중간 사이를 지나가는 주들은 다음과 같다. 아리조나(Arizona)의 엘파소 (El Paso), 텍사스(Texas) 산 안토니오 (San Antonio), 휴스톤 (Houston), 루이지아나(Louisiana)의 뉴 올린즈(New Orleans)이다.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시스템(Interstate Highway System)은 1956년도 아이젠하워 (Dwight D. Eisenhower, 1890-1969))미국 34대 대통령이 지시한 각주를 통과하게 만든 고속도로의 정책으로 세워졌다. 미국에는 수많은 각 주(State)를 통과하는 고속도로들이 전국으로 거미망(web)처럼 연결되어 있다. 통계를 보면는 약 6만5천마일의 콘크리트가 바닥에 깔려져 있다.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10번은 대륙횡단을 위해 만들어진 고속도로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대륙도로 (Christopher Columbus Intercontinental Highway)라고도 불리운다.
이 고속도로는 특히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도로이다. 이 고속도로는 로스엔젤레스(Los Angeles)에 위치한 한인타운(Koreatown)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로상에 한인타운(Koreatown)이라는 팻말이 표기되어있다.
나는 수도원을 떠나 아리조나에서 10번 고속도로를 타면서 캘리포니아주를 향해 운전을 하면서 어떤때는 통성기도도 하고 어떤 때는 찬송가, 복음송를 마음놓고 불렀다. 나는 주님과 동행하는 이 길에서 무서운것이 없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씨도 구름기둥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덥게 느끼지도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에어콘을 작동하지 않고 견뎌냈다. 그리고 달리면서 정면 옆면에서 보여지는 자연의 모습들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의 것처럼 생소했다.
자연 (Nature)은 항상 보아도 질리지 않고 계절 (Season)따라, 시간 (Time)따라 항상 다른 모양을 갖추기 때문에 늘 신비 (Mysterious)스럽다. 실증을 잘내는 우리들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시시 때때로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시다.
나는 시편(Psalm) 8편을 노래 하였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요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레 두셧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편 (개역 개정)
나는 지금도 겉으로는 흥분되어 있지만 내적으로는 평화를 체험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일까?
나는 무엇이 나에게 다가와 나의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이며 은혜이기를 바라며 또 한번의 기도를 드렸다.
“주께서는 은혜(Gracious)로우시며 자비(Compassionate)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Slow to Anger)하시며 인애(Love)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서 4장 2절 (개역 개정) 항상 은혜(Gracious)로우시고 자비(Compassionate)로우신 하나님, 죄인을 사랑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노하기를 더디 (Slow to Anger)하시는 하나님, 인애(Love)가 크신 하나님, 저의 죄를 회개하시기를 항상 기다리시고 지금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이 느낌과 자비의 말씀의 이해는 내가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내 마음속의 확신과 평화 그리고 잔잔한 마음은 분명히 주님께로 부터 온 것이 확신한다. 나는 또 한번 하나님을 만난것이다.
시편 기자의 간증이 생각난다. 시편 46편 10절,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NIV)
나는 자연을 보면서 웅장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그 분에 대한 확시에 대해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 그 것이 최고의 존경심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구약(Old Testament)의 이스라엘 (Israelites)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는 신약(New Testament)의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인 크리스쳔들에게 약속의 말씀으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창조주가 되시고 나를 인도해 주실것을 약속하듯이 내 마음 전체를 주관하시고 계셨다. 나는 묵묵히 주님의 역사하심을 몸소 지켜 보고 있었다. 스스로 생겨나는 기쁨과 샘물같이 솟아나는 평화는 나에게 편안함을 가져다 주었다.
10번 고속도로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번 체험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순간 어느덧 나는 아리조나 사막을 지나 캘리포니아 국경인 불라이스(Blyth)시에 도착했다. 콜로라도 강 다리(Colorado River Bridge)를 건넜다. 곧 이휴에 나오는 주경계 검문소(State Check Point)를 통과 하면서 나는 이제 나의 삶터로 돌아옴을 피부로 느꼈다.
그리고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10번 길 사인(Road Sign)속 안에 주 (State)이름이 바뀌었다. 아리조나에서 캘리포니아로…
13. 세리토스 Cerritos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면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 14 (개역 개정)
“Blessed are those who wash their robes, that they may have the right to the tree of life and may go through the gates into the city.”(NIV)
세리토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였다. 장거리 여행을 하였지만 몸은 가쁜하였다. 그러나 피곤은 몰려오는 것 같았다. 집문을 열고 들어와 후덥근한 방을 환기 시키기 위해서 창문들을 다 활짝 열었다. 그리고 나서는 입었던 옷들을 가려서 세탁기에 집어 넣었다.
마치 수도원으로 떠나기 전에 아침에 몸을 닦았듯이 이제는 여행중에 입었던 더러워진 옷들을 세탁기에 넣은 것이다.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였다.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개역 개정)
“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 holy and pleasing to God-which is your spritaul worship.” (NIV)
비록 수도원의 순례를 마쳤지만 나는 계속해서 죄로 물들어진 인생과 싸운 흔적들을 매일 매일 주님께 내어놓고 회개와 자백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
주님-나의 구세주- 앞에 무릎을 끓고 있자면 나는 거룩하신 그리스도 앞에 나올 자격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항상 울고 통곡을 해도 될까 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짧은 기도문을 자주 드린다.
그럴때 마다 내 깊은 영혼의 한 구석에서는 자그마한 소망이 솟아 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비록 부족하고 비천한 존재이지만 그리스도가 지금도 나를 초청하시고 부르신다는 것을 믿게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가” (마태복음 11:28) (개역 개정)”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ded, and I will give you rest” (NIV)
그렇다 우리 주님은 세상에서 피곤하고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을 지금도 초청(Invite)하고 계시다. 나는 주님의 쉼 (Lord’s Rest)이 필요한 자이다. 그리고 나에게 찾을 수 없는 선(Goodness)함을 그리스도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주님께 속한 자이다. 항상 아름다운 주님의 얼굴 (Face of the Lord)을 뵈옵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것을 확인하고 체험하기 위해서 순례자 (Pilgrim)의 길을 간것이 아닌가?
그러나 또 하나의 배운것은 수도원 안에서 계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의 삶터속안에, 가정안에, 직장안에, 학원안에, 사업처안에, 세상안에서도 계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나는 진정 깨달은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몸(Body)과 삶 전체 (Whole Life)를 주님께 재 헌신하였다. 부패(Corrupt)하고 타락(Fallen)한 인간(Person)을 택하시고 종(Servant)으로 삼으시고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 비록 불의 (Unrighteousness) 하고 부족(Imperfect)하지만 주님께 이 몸을 다시 바칩니다.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불쌍(Mercy)히 여기시고 도와(Help)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오는 인간을 빚(Mold)으시고 새롭게 창조 (New Creation)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허물이 많고 죄가 많더라도 한 사람도 그냥 보내시지 않으십니다. 모두 영접(Accept)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자녀로 삼으십니다.
나는 잠을 청하기 전에 더운물을 틀어서 목욕(Bath)을 하였다. 이번의 씻음은 새롭게 탄생한 것을 상징(Symbol of New Life)하는 의미인지 모르겠다.
Reference:
Ante-Nicene Fathers: Hermas, Tatian, Athenagoras, Theophilus and Clement of Alexandria (Entire). (1986). Editors: Alexander Roberts, and James Donaldson. Revised by A. Clevenland Coxe. Vol. II “The Pastor of Hermas.” Grand Rapids, MI.
Cayre, F. (1964) Spiritual Writers of the Early Church. Trans. From French by W. Webster Wilson. New York.
Christie-Burton, Douglas. (1993) The Word in the Desert: Scripture and the Quest for Holiness in Early Christian Monasticism. New York.
Merton, Thomas. (1998). The Seven Storey Mountain. New York.
Latourette, Kenneth Scott. (1975). A History of Christianity. Vols. I and II Revised Edition. San Francisco.
Lossky, Vladimir. (1976). The Mystical Theology of the Eastern Church. Trans. From French. Reprinted Edition. London.
Pennington, Basil. (2003). The Monks of Mount Athos: A Western Monk’s Extraordinary Spritual Journey on Eastern Holy Ground. Woodstock. Vermont.
Ramsey, Bonifice. O. P. (1985). Beginning To Read the Fathers. Revised Edition. Mahwah, NJ.
Walker, Williston and Richard A. Norris and David W. Lotz and Robert T. Handy. (1985). A History of the Christain Church. 4th Edition. New York.
Ward, Marcus. (1953). The Byzantine Church: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Eastern Christianity. Parktown, Madras.
Ware, Timothy. (1997). The Orthodox Church. New Edition. London.
Wills, Garry. (2011). St. Augustine’s Confessions: A Biography. New Jersey.
Alex Pak
박 알렉스
2010 @ copyrights.
순례한 수도원 Place Visited:
St Anthony Monastery, Florence, Arizona, U. S. A.
Website: www.stanthonysmonastery.org
4784 North St. Joseph’s Way, Florence, Arizona 85132-9399
520-868-3188
목록 Content
서론 Introduction
- 동방정교회의 소개 Introduction of Eastern Orthodox Church
- 수도원의 이해 Monasticism
- 출 발 Departure
- 도착 Arrival
- 건물 Buildings
- 예배 Liturgy
- 성찬식 Sacrament
- 기도 Prayer
- 친교 Fellowship
- 책방 Bookstore
- 마지막 날 Last Day On the Monastery
- 하이웨이 10 번 Interstate Highway 10
- 세리토스 Cerritos
서론 Introduction
나의 나이는 오십 삼세이다. 아내와 어머니를 같은해에 주님의 품으로 보내고 난지는 햇수로 구년이나 흘렀다. 나는 사람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이 세상을 떠난다는 말을 나는 조금 이해할 것 만 같다. 홀로 (aloneness)라는 말은 영어로는 single 또는 alone이라고 말한다. 한 단어는 명사이고 다른 하나는 형용사이지만 뜻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수도원에서 또는 세상에 살면서도 도를 닦거나 깊은 영적의 체험을 느끼면서 사는 자들을 수도사 또는 수사라로 부른다. 수도사들을 영어로는 Monk라고 한다. 뜻의 어위는 라틴어에서의 Mono에서 나온것이다. 역시 모노(mono)는 홀로(one)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도사들은 혼자 또는 공동체에 모여서 살면서 오직 추구하는 바는 하나님과의 교재와 동행하는 것이다. 홀로서이든지 또는 공동체가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기도하거나 명상하는 것은 신앙을 가진 자들은 모두가 원하는 바일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지못하기 때문에 힘들어 할것뿐이다.
저자는 이 자그마한 책자를 통해서 혼자(물론 하나님과 동행하였지만) 아리조나 (Arizona)주 플로렌스(Florence)시에 위치한 성 안토니 그리스 동방정교회의 수도원(St. Anthony Greek Monastery)에서 이박 삼일간 순례의길과 수도원에서 지낸 체험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물론 이 책자를 읽고서 또는 수도원에 대한 관심을 가진 분들은 직접 방문을 하거나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더욱 원하는 바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동방 정교회(Eatern Orthodox Church)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간략하게 이 교회의 역사와 가르침, 예배, 신학을 간단하게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단어들을 부록에 설명을 해 놓았다. 그리고 수도원에 대해서도 기원과 발전을 간단하게 설명을 해 놓았다. 그래서 이 책은 동방정교회에 대한 신학, 수도원과 신학용어들을 해석에 도움을 주기위해서 언제든지 찾아 볼 수 있는 참고서의 역활을 하도록 해 놓았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1. 동방 정교회의 소개 A Brief Introduction of Eastern Orthodox Church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 18
“And I tell you that you are Peter,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NIV)
동방 정교회는 매우 역사와 전통(전승)이 깊은 기독교이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기독교는 세파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동방정교회 (Greek Orthodox Church)와 로마 캐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 와 개신교(Protestant)교회들로 나눈다. 그 왜에도 이 세교파안에 많은 교회들과 교단들이 존속하고 있다.
동방 정교회라고 말을 들을때 첫번째의 반응- 의심적스럽고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 어떤이들은 향 냄새와 미스테리하고 화려한 장식들, 예배 또는 이콘(icons) 또는 성상들, 특히 예수님의 그림 성모의 그림, 성자, 성녀들의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의 원인들을 보며는, 우선 우리들이 동방 정교회를 몰라서 그럴 수 있고, 서방에서 사는 우리들은 이들을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일 수 도있다.
교회사를 보며는 개신교의 역사(History of Protestant Reformation)는 16세기때 마틴루터(Martin Luther)선생의 종교개혁으로 부터 발생했지만 동방정교를 보며는 주후 1세기로 본다.
동방 정교회의 이름을 분석해 보면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a. 동방 (Eastern)
b. 정 (Orthodox)
c. 교회 (Church)
a. 첫째: 동방 Eastern
동방이라는 것은 지역 또는 문화를 말한다.
동방과 서방을 나눌때 사용된다. 교회사 적으로 서방은 라틴(Latin)또는 로마(Rome)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리고 동방은 새 로마 또는 콘스탄틴노플을 내포하고 있으며, 동방은 지역 또는 문화를 말해 준다.
b. 둘째: 정(통), (정설) Orthodox
-영어로 Orthodox는 그리스어에서 기원된 언어이다.
"오터" (Ortho) 와 독사 (Dox(e))로 두 단어가 합해져서 만든어진 단어이다.
"오토" (Ortho)의 의미는 “바르다” “정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
“독스” (Dox(e))의 의미는 “견해” 또는 “의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
이 두 단어들을 합해서 “바른 견해” 또는 “올바른 가르침”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오토독스” (Orthodox)의 의미는 “right opinion” 또는 “올바른 가르침”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c. 셋째: 교회 Church(es)
교회는 동방정교회안에 많은 교회들이 있으며, 이들은 정교회의 가르침과 전승을 인정하고 보전하고 있다.
오늘날 동방정교회는 온 세계에 퍼져 있으며 특히 동유럽과 아시아 특히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에 많은 교회들이 있다.
동방정교회의 원래 이름은 히랍(그리스)정교회 (Greek Orthodox Church)로 불리웠다. 나중에 동방정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난 후에 각 나라의 이름들을 달아서 부르고 있다. 현재 정교회는 13개의 독립적인 교회 혹은 자치교회(autocephalous) 들이 있으며, 각 자치교회 안에는 각각 수장들이 있으며 그는 총주교(partirach), 부주교(metropolitan), 대주교(archbishop), 주교(bishop, episcop)등으로 불리운다.
세계총대주교로서는 콘스탄틴노플이 있고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그리고 예루살렘이 있으며 1589년에 콘스탄틴노플의 총대교의 승인으로 러시아정교회가 총대주교로 인정되었다.
자치교회국가 별로는 루마니아(Rumania), 그리스(Greece), 세르비아 (Serbia), 불가리아(Bulgaria), 그루지야(Georgia ),키프로스(Cypress), 폴란드(Poland), 알바니아(Albania)정교회들이 있으며, 그리고 미자립교회들이 중동 (Middle East)과 아프리카 (Africa), 미국 (America), 카나다 (Canada), 오스트렐리아 Australia), 뉴질랜드 (New Zealand), 일본 (Japan), 한국에도 약간의 정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한국정교회 1900. 2. 17 크리산토스 신부로 한국의 선교시작, 현재 11개의 성당이 한국에 있음)
동방정교회의 교인숫자는 약 225-300백만(2억2천2백만에서 3억) 가량으로 보고 있다.
d. 정교회의 특징
첫째로, 정교회는 언어와 예배형식과 성례가 민족과 사회와 밀접하다.
옥스포드대학의 교수이자 동방정교회의 감독인 디모데 칼리스토스 와레감독은 동방정교회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슬라브 동방교회는 국가와 종교가 서로 묶여저 있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서 볼 수 없다”.
-둘째로, 그리스언어로 구성된 동방정교회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철학에 발전을 가져다 주었으며, 교회와 신학에도 많은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셋째로, 순교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
동방정교회는 순교자들을 존경하고 있으며, 이들의 신앙과 업적을 보전하고 있다.
그리고 순교자를 세 부분으로 나눔:
붉은 순교자, 초록 순교자, 그리고 백색 순교자로 나눈다.
백색 순교자는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것을 다 버린자를 말하며,
초록 순교자는 자신의 회개와 고백성사를 위해서 금식과 선을 행하는 자이며
붉은 순교자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거나 목슴을 바친 자를 말한다.
-넷째로 교부(Church Fathers)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보전하고 있다.
교부는 사도들의 제자들을 일컫는 말이며 교부시대는 카톨릭(라틴)교회와 동방정교회의 차이가 있지만 약 2세기에서 8세기로 보고있음. 동방정교회(카톨릭교회)에서는 다메섹의 요한 John of Damascus(676-749)을 마지막 그리스 교부로 인정하고 있다.
교부로 인정받으려며는 몇가지 자격을 갖추어야 함. 보니피스렘시(Bonifice Ramsey O.P.)는 말함. 우선 전례 교회 (antiquitas ecclesiae), 에 관하여 저술을 했으며 인용되는 자, 그리고 정통교리(doctrina orthodoxa)를 세운자 , 성스런 삶(sanctities vitae)을 산자, 교회로(approbatio ecclesiae)부터 인정을 받은자여야 만 한다.
-다섯번째로는 관상의 기도 (헤시카즘, hesychastic prayer)임. 14세기의 헤시키즘의 논쟁이 되었던 신학이기도 하다.
관상의 기도의 기원은 3세기 초대교부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Clement of Alexandria (d. 215))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 (Origen of Alexandria(d. 253))으로 부터 나왔으며 14세기에 팔라마스의그레고리 (Gregory Palamas(1296-1359))에 절정을 이룬다.
관상의 기도(Hesychasm)의 요소가되는 예수의 기도(Jesus Prayer)는 5세기 부터 오늘날 동방정교회 교인들이 매일 드리는 기도이다 예수의 기도의 내용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저 이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Lord Jesus Christ, Son of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
-관상의 기도(헤시카즘, Hesychism)의 핵심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로 나아가야 만 알 수 있다는 역설적인 방법의신학이다. 영은 침묵함으로 영성으로 성숙해질 수 있기때문이다.
관상의 기도는 신비주의(mysticism)에 가까운 경향이 있다.
정교회가 주장하는 성전(sacred tradition)또는 거룩한 전승(Holy tradition)의 의미는 믿음과 행함이 동일하기 때문. 이들의 믿음과 전승은 나눌 수 가 없다고 본다.
전승의 의미는 성경을 말하며 신조(Creeds)와 공회의 결정사항들(Decrees)과 교부들저서의 가르침(writings of the Fathers), 교회 규범(Canons), 예배예식(Service book), 이콘(성화)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20세기 러시아 신학자인 블라드미르 로스키 (Vladimir Lossky) 는 전승을 다음과 같이 말함. “전승은 교회안에서 성령님의 삶이다” “Tradition is the life of the Holy Spirit in the Church” 고 말하면서 전승을 강조하고 있다.
8세기 교부인 다메석 요한(John of Damascus)은 “우리는 아버지(교부)들이 세운 범위를 어길 수 없으며 받은 전승을 보전해야 한다.” 면서 교부신학의 중요성을 암시해주고 있다.
e. 동방 정교회의 전승 교리
성서와 일곱번 공회를 인정하고 있다. (니케아 I (325), II (787), 콘스탄틴노플 I (381), II (553), III (680-1), 에베소 (431), 칼게돈 (451) . 그리고 성전(Holy tradition)을 인정한다.
신앙의 신조로서는 니케아-콘스탄틴노플 신경(Nicea-Constantinople Creed)을 고백함. 교리는 이성과 명상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서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을 중요시 하게여기고 있다.
필리오케 (filioque) 논쟁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단절의 주 원인이 되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니케아신경을 고백할때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에서 부터 발출한다고” 고백하나 동방정교회는 “성령님은 성부로 부터 발출한다고 “고백함. 동방정교회는 카톨릭교회가 “성자에게서”라는 문구를 삽입했다고 해서 필리오케라는 논쟁을 하게 됨. “필리오케”라는 뜻은 “성자로부터””from the Son”이 라는 말이다.
“이콘”(icon) 또는 “성상”을 사용한다. 동방정교회에서는 2차원적 그림을 통해 신앙을 갇도록하게 한다. 그러나 이콘을 예배드리거나 숭상은 하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 veneration of Theotokos) 의 가르침은 이러하다.
성모 마리아는 “하나님을태어나게함”(Theotokos)으로써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다고 보고 있으며 아들을 통해 인류를 위해서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모마리아는 원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느다. 무염시태(Without Original Sin)의 교리를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성모마리아를 신격화 하지도 않는다. 오직 구릅(cherub)이나 스라빔 (seraphim) 보다 귀하디고 본다.
f. 영성체 신학과 성사 (Sacrament)
동방 정교회의 영성체 신학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사제가 성찬식을 거행할때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는 물리적으로 예수님의 피와 살로 변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빵은 누룩이 들어가있는 면병(leavened bread)을 사용한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거행 할때가 목요일이였으며, 유월절 전이였기 때문에 무교병을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봄. 다시 말해서 누룩을 넣은 빵을 먹었을 것이라고 한다.
정교회는 7가지의 성사를 가지고 있다.
세례 (Baptism), 견진 (Confirmation), 혼인 (marriage), 고해 (Reconciliation), 성품 (Holy Orders), 병자(Anointing of the Sick), 성체성혈성사(Eucharist)등이다.
예배에 있어서 동방 정교회는 신학 (theology)과 예배를 (liturgy) 분리 하지 않는다. 예배를 통해서 천국과 지상을 동시에 체험하는것이다. 그래서 예배는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삼위일체론(Trinity)는 “filioque”가 없는 “단일 발출설, single procession”인 “성부”로 발출하는 성령님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고대 에큐메니칼 7공회들의 가르침을 따른다. 위에 소개한 것들이 동방정교회의 이해에 대한 약소한 소개이다.
2. 수도원의 이해 Understanding the Monastic Traditions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람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어버지 께로 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1서 15-17절 (개역 개정)
“Do not love the world or anything in the world. If anyone loves the world, the love of the Father is not in him. For everything in the world-the cravings of sinful man, the lust of his eyes and the boasting of what he has and does-comes not from the Father but from the world. The world and its desires pass away, but the man who does the will of God lives forver.”(1 John 2: 15-17, NIV)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 인구 가운데서 한 소수였으며 그들은 주변 사회에 대해 상당히 초연한 입장을 지키면서 작은 공동체를 통하여 그 이념을 실현해 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교회가 형성되었다. 3 세기 중엽이 되었을때 수천명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3세기후와 4세기초에는 대핍박때문에 잠시동안 중단되었지만 핍박이 실패로 돌아가자 더 많은 인구가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5세기가 끝나기 전 로마 제국의 다수 시민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고 집단 개종이 촉진되면서 교회의 기강은 해이해져갔고 일반적 그리스도인들의 이상과 실천사이에 간격이 넓어졌다.
수도원제도가 생기게 된것은 부분적으로는 이와같은 방종의 반동이고 부분적으로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들에서 자극을 받은 것이지만 완전에 이르지 못하면 무엇이나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이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인가? 그런 삶은 가능한 것인가?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이가? 그것은 과연 모든 인간 사회에 변화를 거져다 줄 것인가? 개개인은 그들의 원리를 타협함없이 일반적 혹은 부분적으로 비 기독교족인 사회에 섞여 살면서 여전히 완전한 그리스도인일 수 있을까?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사회로부터 후퇴할 필요가 있을가? 만일 그렇다면 그는 혼자 살아야 할것인가 혹은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도하는 그런 이들이 다른 이들과 공동으로 그것을 모색해야 할것인가?
만약 공동 생활이 필요하다면 그리스도인의 이상을 완전히 그현할 수 있는 공동체 내지 인간사회가 있을 수 있을까? 처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이와 같은 질문을 제기했고 점점 더 강해졌고 금욕주의 이상과 기독교 도덕의 2중적 표준이 콘스탄틴 이전에 오랫동안 교회내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고대 세계의 차원 높은 철학자들 속에 전승되어 오는 금욕주의 경향이 기독교의 이러한 이상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금욕주의는 수도원생활과 기독교에만 특수하게 있는 것은 아니었고 인도인(Indians), 희랍인 (Greeks), 이집트인들(Egyptians)의 종교중에도 있었다.
수도원 제도는 처음에는 성직자들의 교권 구조안에는 들어있지 않은 하나의 평신도 운동 (Lay movement) 이었으나 5세기 말에는 보편화되어 카톨릭 교회의 특징이 되었다.
수도원 발생에 영향을 준 금욕주의와 수도원의 기원, 수도원의 발달과 수도원의 변화, 그리고 초대 교회에 미친 영향 그리고 오늘날의 수도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a. 수도원 발생에 영향을 미친 금욕주의 Asceticism that Influenced a rise of Monasticism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가 가지 모든 것을 버려야한다고 선언하셨으며 어떤 부자 청년에게는 가가 가진 모든 것은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명령하셨고 어떤 사람은 하늘의 왕국을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됐다고 말씀하심으로 독신주의를 권하셨던 것처럼 보였다(마 19:16-22; 마 10:37; 마 19:11,12, 16-22). 그러나 분명히 금욕주의자였던 세례 요한은 대조적으로 예수님게서는 스스로가 말씀하셨듯이 먹고 마셨고, 바울은 독신 생활을 찬성했지만 이문제에 대해 예수님을 뒷받침하는 아무 분명한 명령도 주님께 받은 것이 없었으며 사실상 결혼은 미혼 상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사일 것이라고 말했다(고전 7:26,28, 38).
예루살렘에 있던 원시 그리스도교회 초창기에 재산의 공동 소유제가 얼마 동안 실시되었지만 공동 저장고에 개인의 소유를 바치는 것은 자발적이었고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처음부터 재산의 사유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정상적인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행 2:44,45; 4:32-37; 5:4). 특히 과부들이 인정되기는 했지만 60세 미만의 사람들은 과부 명단에 기재되지 못하였고 젊은 과부들은 개가해서 저녀들을 낳아 기르라는 명령을 받았다(딤전 5:3,9,10.14).
그러나 수도원 제도 훨씬 이전, 그리고 사실상 교회 창시 첫 시대부터 금식은 공인된 규율이었다. 재혼하지 않고 기도및 교회 봉사에 몸을 바친 과부들이 흔히 눈에 띄었고 교회는 독신자들을 귀히 여겼다. “헤르마스의 목자서”는 그리스도인이 과부들이나 홀아비들이 재혼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주님께로부터 더 큰 영예와 영광을 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시온(Marcion of Sinope, 85-160), 주의자들은 결혼을 금했고 카톨릭교회는 회원들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305년의스페인 엘비라의 교회회 (Synod of Elvira)의에서 감독들과 다른 성직자들의 독신 생활(Celibate life)을 요구했다. 이미 감독이나 사제난 부제가 만일 안수 받기 전에 미혼이었으면 결혼(marriage)해서는 안되며 그의 아내가 죽었을때는 재혼하지 못한다는 풍습이 수립되었다. 성직자들에게 독신생활을 명령하는 교회회의, 공회및 교황들의 공식적인 교령들은 확대되고 있던 관습에서 발생하는 듯하며 독신 생활제도를 새로 시작했다기 보다는 그것을 보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부에서는 부제들과 사제들과 감독들은 독신 (celibate)생활을 해야했고 동부는 감독들은 독신 생활을 했어도 부제들과 사제들은 안수 받기 전에 하던 결혼 생활은 계속 할 수 있었다. 385년 교황 Sercius는 모든 사제들이 날마다 드리는 유카리스트의 희생제를 위해 순결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그것을 명령했다. 390년에 카르타고에서 모였던 공회에서는 감독들과 부제들에게 순결을 명령하였고 5세기 중엽 대교황 레오는 성직을 위한 독신 생활의규칙을 부보제들에게까지 확대시켰다. 4세기 후반에 동부에서 모였던 한 공회에서는 결혼한 사제의 손에서 유카리스트를 받는 것은 불법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을 정죄했다.
b. 수도원 제도의 기원 Beginning of Monasticism
기독교의 이와 같은 경향성은 수도원 제도(monasticism)를 위한 밭이 되었다. 3세기 중엽이 되었을때 수천명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3세기후와 4세기초에는 대핍박(great persecution)때문에 잠시동안 중단되었지만 핍박이 실패로 돌아가자 더 많은 인구가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5세기가 끝나기 전 로마 제국의 다수 시민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며 세례 (baptism) 를 받았고 집단 개종이 촉진되면서 교회의 기강은 해이해져갔고 일반적 그리스도인들의 이상과 실천사이에 간격이 넓어졌다.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인 수준이 저하되는 것같고 신약성경의 높은 수준에 양심의 자극을 받은 열렬한 이들에게 만족이 없었다. 콘스탄틴후 순교 (martyrdom)가 그치자 성도들에게는 금욕(asceticism)이 성도의 최고의 표준이 되었고 자발적으로 빈곤, 금식및 독신주의를 존중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태생의 오리겐 (Origen)은 스스로 불구자가 됨으로서 그리고 먹는 일, 마시는 일, 잠자는 일 및 육체적 안위에 있어서의 내핍을 통해 극단적인 금욕주의의 한 표본을 보였으며 이집트에 있는 교회에서 유명해진 그의 많은 제자들에 대해 감화를 끼쳤다. 금욕(asceticism)적인 노스틱주의자(Gnostics)들, 마사시온주의자들및 몬타누스주의자(Montanists) 들이 이집트 (Egypt)에 있었는데 이들 다수가 이 제도의 후기 발전들에 기여했을 것 같다.
신비주의적및 명상적인 생활이 이집트에서 발생한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를 포함한 다른 비기독교적 모임들 속에 있었으며 이것들이 수도 생활의 신비적이며 명상적인 면을 강조했을 것이다. 3,4세기에 이집트에 일어났던 정치적, 경제적 무질서 때문에 불안감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이 부득불 세상을 도피하게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무거워져가는 공민의 의무로부터 벗어나보려는 욕망때문에 정상 사회로부터 도피하려했는지도 모른다.
이 수도원 운동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전하여졌을때 이 동기는 강한 호소력을 가지게 됐고 이집트의 지형과 기후는 독자적이든 공동체 생활이든 수도사에게 적합했고 기독교 은둔자들이 3세기가 끝나기전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데시우스의 박해를 피해 사막지대로 피신했다가 그대로 거기에 머물러 살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은둔자들은 혼자 살면서 기도와 명상에 몸을 바치고 있었다.
초기 수도원 주의 정신의 지도자인 이집트의 안토니((Anthony of Egypt, 251-356)는 이집트의 콥트인(Coptic)의 후손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신앙을 따라 양육되었다. 20세때 교회에서 그리스도가 부자 청년에게 한 말씀을 듣고 (마 19:21) 그는 즉시 그의 유산을 처분하여 마을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마을 밖에 거처를 정하고 손수 노동을 했고 소출의 일부분을 양식으로 나머지를 가난한 이들의 구제로 사용했고 은둔자들에게 품위, 사랑, 친절, 인내, 온유, 노여움에서의 자유및 기도의 방법을 배웠다. 나중에는 사막으로 옮겨 20년간 은둔(hermit) 생활을 하였고 쉴새없이 노농, 금식, 철야를 하고 끊임없이 기도와 성경낭독을 함으로 마귀의 세력을 극복하였다. 그는 영광을 되찾은 인성의 모습을 보였으며 병자를 고치고 사랑과 화해를 가르쳤으며 모범적인 생활을 했고 그가 터득한 가르침을 전했다. 제자들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가 죽은 후 수천명의 금욕(asceticism)주의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리우스주의자(Arians)들을 강하게 반박했고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그들의 견해를 반박했다. 안토니는 두 가지 형태의 수도원제도(monasticism)를 대표했다. 하나는 은둔자 (hermit)수도제도즉 수도사 각자가 외따른 생활을 하는 은둔자적 삶이고 다른 것은 은둔자의 방법을 절충한것이다.
이집트 출신의 수도원의 첫 개선자인 파코미우스 (Pachomius, 292-346)는 종군후 세례를 받고 고행자가 되었고 은둔자 Palaemon에게 3년간 훈련을 받은 후 320년경 나일강 근처의 Tabennisi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것이 매우 인기가 있자 다른 몇 개를 또 세웠다. 파코미우스는 중앙 수도원에서 그 수도원들을 다스렸고 그가 죽어갈때 자기의 후계자를 임명하였다. 그의 가르침은 각각 맡은 일을 하고 시간을 따라 예배하며 비슷한 옷을 입고 인접한 방에서 살며 한 수도원장 아래서 공동생활을 하는 건전한 제도이었다. 이는 애굽에서 발전하다가 제국 전체에 퍼졌으며 시리아에 은자 수도원이 많이 있었다. 그가 죽을 때는 수도원이 9개, 누이 동생 마리아가 그의 주면에 세운 수녀원이 2개가 있었고 수녀원은 포괄적인 조직 속에 들어 있기는 하지만 남녀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예방조치가 취해져 있었다. 나중에 생긴 성 바실 수도원도 그것을 모방했다.
c. 수도원의 발달과 변화 Development and Change of Monasticism
4세기및 5세기에 수도원 제도는 널리 퍼졌고 수도사들은 증가했다. 수도사들과 수도원은 특히 동쪽, 그가운데서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틴및 시리아에 그 수효가 많았다. 그 이유는 팔레스틴및 시리아에 수도원 이전의 금욕주의 사상이 그리스도인들 사회에서 강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집트의 영향과는 다른 독자적인 시초를 가졌는데 이는 불교및 힌두교와 마니교적 수도원제도의 혜택을 입었었던 것같다. 수도사들은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독처하고 있는 은사들, 수도사들이 자유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피코미우스가 개척한 고도의 조직화된 집단들 속에 살던 사람들이다.
수도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극도의 내핍 생활을 했는데 30년간을 꼭대기에서 살면서 기도에 몰두하여 주상 고행자라고 불리운 시므온 (Simon Stylites, 390-459)이 있었고 카파도키아(Cappadocia)와 폰투스 (Pontus),훗날 소아시아 (Asia Minor)전역에는 공주수사 제도가 관습이 되었다. 4세기 중엽 유스타티우스 (Eustathius)로 도입된 이 지역의 수도 생활은 보급과 조직에서 철학적인 삶을 추구하였으며 이는 바실의 노력에 발전이 있었다. 정신은 하나님사랑과 이웃 사랑을 강조하였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처럼 사도 공동체의 생활을 본받도록 하였다.
수도원 제도 중에 헬레니즘과 주지주의영향을 받은 에바그리우드 폰티쿠스 (Evagrius Ponticus, 345-399)는 애굽에서 정신을 전달했으나 콥트 교회 수사들에게 반감을 삼으로 후에 그의 제자들이 흩어졌으나 그의 사상은 서방과 동방의 수도원주의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방의 수도원 제도는 아타나시우스가 (St. Athansius of Alexandria, 296-373) 도입했다. 그는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기록하여 서방에 보급했고 책은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투르 마르틴 (Martin of Tour, 316-397)은 서방의 수도원조직에 대해 공헌한 사람이고 그가 처음으로 프랑스에 수도원을 세웠다.베르첼리리의 주교 유세비우스(Eusebius of Vercelli, 283-371)는 금욕적인 규율아래 교구의 성직자들을 조직하여 새로운 형태의 수도 공동체를 도입하였고 훗날 어거스틴(Agustine of Hippo Regius, 354-430)은 이 방식을 따랐다. 4세기에는 이미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 수도원제도 (monasticism)가 활발하게 보급되었고 5세기에는 정규 수도 규칙 (Regular Monastic Rules) 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서방 수도원 운동의 개혁자는 누르샤의 베네딕트 (Benedict of Nursia, 480-547)이다. 베네딕트가 작성한 수도 회칙(The Rules of Benedict)은 서방 수도원 주의의 표준이 되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한 사람들이 안정되고 자급 자족하는 공동체로서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금욕을 실천하였으며 공동체에 남아서 살을 것을 요구하였다. 수도원의 공동 관심사에는 모든 형제들의 자문을 구하였고 수도원장은 형제들에게 명백한 순종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몬테 카시노의 공동체 수도원 (Monte Cassino Monastery)을 세웠고 가이사라의 바질(Basil of Caesarea, 330-379)처럼 극단적인 금욕주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고 개인주의와 사회를 등지는 태도는 더욱 인정하지 않았다. 수도사들을 그리스도의 군인들로서 이루어진 영원한 자급자족의 수비대로 생각하였고 제일의 의무는 예배라고 생각, 하루 7번의 공동 예배를 드리고 밭에서 하는 육체적인 노동과 도서를 의무로 규정하였다. 중세에 와서 베네딕트 수도원은 파코미우스 (Pachomius, 292-346) 제도의 수도원들처럼 수사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으며 이러한 수도원 개념은 유럽의 주요 교육 시설에 영향을 주었다. 교황 그레고리(Pope Gregory I, 540-604) 의 후원을 받은 베네딕트 수도 회칙은 후대의 수도원주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수도원의 정신과 교육의 영향은 유럽에 선교적, 구제적, 종교적, 세속교육의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아이랜드의 수도원주의(Irish monasticism tradition)는 카시아누스 (Cassian, 360-435)가 프로방스에 소개됨으로 그 뿌리를 내렸고 켈트족의 수도원제도 (Celtic Monasticism tradition)는 신비적 정신, 무 훈련의 불안정, 엄격한 금욕주의가 특색이었다.
d. 초대교회에 미친 영향 Influence on the Early Christian Churches
수도원 제도는 유럽의 주요 교육 시설 제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로마 제국 카톨릭 교회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여러 교회들 안에 나타났던 폭발적인 새 생명을 발견할 수 있는 주요 경로이었다. 수도생활을 지망하는 이들은 소유를 흩어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었고 많은 수도사들은 그들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영적 문제를 의논해 주었다. 특히 서부에서는 많은 수도적 조직체들이 선교 기관이 됐고 다른 이들을 섬기기위해 그 기관들을 바쳤다. 동방에서 발생한 수도원 운동은 남부 가울 지방을 거쳐 5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아일랜드 (Ireland). 스코트랜드 (Scotsland), 잉글랜드 (England)등지에서 전성하였고 이 운덩의 뛰어난 공헌은 열성적인 선교 활동과 학문에의 헌신에 있었다. 영국에서 로마 기독교가 승리함으로 켈트 수도원은 베네딕트 수도단에 흡수되었고 그 선교 정신은 후세의 영국 수도승에게 영향을 주었고 북 유럽으 개종시키는데 위대한 역할을 한 보니페이스 (Bonafice, 672-754)와 같은 인물을 배출시켰다.
d. 결론 Conclusion
콘스탄틴후 순교가 그치자 성도들에게는 금욕이 성도의 최고의 표준이 되었고 자발적으로 빈곤, 금식및 독신주의를 존중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3, 4세기에 많은 사람이 세상을 도피하게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무거워져가는 의무에서 벗어나보려는 욕망때문에 정상 사회로부터 도피하려했는지도 모른다. 초기의 수도원은 이런 욕망때문에 생겨났고 은둔자의 생활에서 고행과 기도등 현실과는 다른 삶을 추구하고 살았으나 점점 발전해가면서 공공체의 삶을 강조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강조하였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처럼 사도 공동체의 생활을 본받도록 하였다.
서방 수도원의 표준이된 베네딕트 수도원은 파코미우스 새도의 수도원들처럼 수사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으며 이러한 수도원 개념은 유럽의 주요 교육 시설에 영향을 주었다. 교황 그레고리의 후원을 받은 베네딕트 수도 회칙은 후대의 수도원주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수도원의 정신과 교육의 영향은 유럽에 선교적, 구제적, 종교적, 세속교육의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어떤 면에서 수도원 제도는 카톨릭 교회가 이단이라고 배척한 이념들의 승리를 대표했다고 볼 수 있다. 카톨릭 교회 속으로 들어온 율법주의 비슷한 것들, 즉 구원이란 벌어들일 수 있고 또 벌어들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은혜에 대해 반대되는 개념을 갖고 있는것과 육체와 물질을 악으로 보는 노스틱주의 (영지주의,Gnosticism), 마시온주의 (Marcionism), 마니교(Manichaeism)에서 볼 수 있는 신념들이 들어 있었다. 또한 어느 정도 수도원 제도는 복음과 상치되는 많은 요인을 그 자체 안에 작고 잇었다. 대체로 초기에는 그 제도가 비기독교인을 구원할 노력을 하지 않았고 세상을 구원하려고는 하지 않고 그것을 피하려고 애썼다. 수도사의 첫째가는 목적은 그 자신의 구원에 있었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이 아니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성도들과 거룩한 제사장직이 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에 반대되는 사실에 수도원 제도는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하게 되기를 갈망하는 무리들과 기독교 이하의 행동 또는 비기독교적행동과 타협하려는 데 안주하는 무리들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요소도 수도원 운동에 있었다. 수도 생활을 지망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소유를 흩어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었고 많은 수도사들은 그들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영적 문제를 의논해 주었다. 특히 서부에서는 많은 수도적 조직체들이 선교 기관이 됐고 다른 이들을 섬기기위해 그 기관들을 바쳤다.
20세기가 들어서자 유럽사회 전체에 세속화,교회이탈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특히 규율이 엄격한 관상수도원에서는 수도자 수가 상당히 감소되었다. 오늘날에는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떨어진 산중의 수도원이 아니라 대도시속에서 함께 공동 생활을 하는 수도원도 많다. 수도원은 특정한 신분의 사람을 길러내는 기관으로 발전되면서 어느정도 신비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에서 사회의 일부분으로 들어와 소외되고 병든 자들에게 다가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수도원들도 많음을 볼 수 있다.
교회를, 특히 카톨릭 교회의 활력을 측정하는 최선의 표준의 하나는 기존하는 수도원들 및 어떤 한시대에 나타났던 새로운 수도원 운동내지는 수도원 운동에 가까운 운동들의 수효 및 개혁의 힘에서 발견될 수 있다. 활력이 저조했을 때에는 수도 생활이 생기를 잃고 기능이 둔해졌거나 부패해버린 증거이다. 부흥이 일어나고 있을 때는 믿음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들을 바치고 싶어하는 열렬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수도 생활을 위해 몰려들어왔으며 그 생활이 생생한 다양성과 새로운 형태들을 취하고 있었다.
기독교 이상을 완전히 실현할 수 있을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하는 이상과 다양한 수도적 형태들이 수효가 점점 더 많아질 경우 이 공동체들이 중심이 되어 기독교 신앙이 그 주변의 비기독교 세계를 밝혀주며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겠다. 대부분의 수도적 기관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 기관들의 창시자들의 목적으로부터 어긋나 버렸으며 무기력해졌거나 그보다 더 나빠졌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싶어하는 영혼들의 소망이 더 나은 수도원 체제를 형성하면서 정치적, 이념적인 제제를 벗어나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것들이 되어야 하겠다.
3. 출발 Departure
“내가 그 둘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 1: 23
“I am torn between the two: I desire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which is better by far;”(NIV)
토요일 새벽에 나는 일어나 경건의 기도회(Quiet Time)를 마치고 나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나는 오늘 저녁의 샤워는 수도원에서 하게 될것을 생각하면서 더욱 비누를 문질렀다. 왜 더 문질럿을까? 혹시 도시의 때를 조금이라도 더 벗어내기 위해서 아니면 몇일 못할 목욕을생가을 하니까? 아뭏던 아침의 씻음은 의미가 있었다. 수도사들 처럼…
몸을 닦도 나서 아침을 먹었다. 일상생활대로 아침식사로는 베이글 (Bagel, 동그랗고 가운데 구멍이 난 딱딱한 빵)에다 크림 치즈 (Cream Cheese)와 불르베리 (Blueberry), 자몽쥬스 (Grapefruit Juice)와 우유 (Milk)등이다. 나는 옷가방과 성경책 그리고 약간의 물병들과 간식을 챙기고 자동차 차로고 향했다. 물론 무언가를 잊어 벌린것 같았으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다만 빨리 아리조나주를 향하여 떠나고 싶었다. 물론 더 일찍 출발할 수 도 있었지만 나는 일부로 해가 날 때에 출발하기로 계획했다.
이번 여행은 관광여행이 아니라 깊은 영적체험과 바라던 수도원의 생활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새벽부터 서루거나 흥분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마음의 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도를 운전석 옆에다 놓고 안전 기도와 두고 가는 거처소와 안면에 떠오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
차고를 나오면서 기름게이지를 보니까 기름이 부족했다. 그래서 거처소에서 나오자 마다 보이는 정유소에서 기름을 채웠다. 물론 가득 채웠다.
나는 기름을 채우면서 기도하기를 주님이 이번 순례의 기간을 통해서 기름통처럼 비워져있는 가슴에 은혜를 흠뻑 채워주시기를 조용히 기도했다. 인간은 이렇게 항상 비워진 상태에 살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하이웨이 (State Highway) 91번 (아테시아 프리웨이 Artesia Freeway, 오렌지 카운티 Orange County동서쪽을 이어주는 고속도로이다.)의 동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 날씨는 여름에 접어들었는데도 선선했다. 주중은 아니어서 차들은 도로에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침에 떠오르는 해는 나의 얼굴과 가슴쪽을 향해 쒜어오고 있었다.
항상 다니는 고속도로였지만 오늘은 새로웠다. 왜냐면 오늘 달리는 목적은 직장을 가거나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례의 길을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면서 옆의 차량들을 흙어 보았다. 다른 열심히 운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들도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인생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서 달리고 있지 않는가?
에나하임(Anaheim, 독일 이민자들이 세운곳임, 오렌지 카운티에 소재해 있음) 시를 지나면서 옆쪽에는 초록색을 뛰운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운전하면서 계속해서 옆쪽들의 산들을 살펴 보았다. 산은 영적의 의미가 깊은 곳이다. 등산하는 자들에게서는 없어서는 안될 자연다. 그러나 지식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산은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믿는자들에게는 산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출 3장). 나는 산들을 보면서 많은 집들이 지어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산턹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이곳에서 살가 물어 보았다. 등산가가 사나?...
반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하이웨이 10번 동쪽길로 바꾸어 탔다. 10번 길은 미국 동부까지 이어지는 대고속도로이다. 이 프리웨이만 타고 미국의 대륙횡단을 할 수 있다. 한 시간쯤 운전을 하면서 팜 스프링(Palm Springs)지역을 통과 하고 있었다. 팜 스프링스는 샌 버난디노 카운티(San Bernandino County) 의 속한 사막에 위치한 휴양지 (Resort)지역이다. 이곳은 자연 온천 (Hot Springs)과 캐이블카(Cable Tram)로 유명한곳이다. 그리고 카지노와 샵핑아웃렛이 있는 곳이어서 사막이지만 매우 분주한 곳이다. 그러나 한때는 이곳은 매우 조용하고 휴식처로 알려진 때가 있었다.
저자는 사막 (Desert)을 좋아 했기 때문에 옛적에는 이곳을 자주 찾았다. 그리고 근처에 기도원(Prayer Mountain)이 있어서 교회 수양회( Church Retreats) 때와 혼자 와서 기도를 하면서 영적 충전(Recharge)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머무나 다르다. 영적으로 시작해서 육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인간의 역사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현상을 보시고 한탄하시고 계시는 지 모르겠다.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나는 믿음지 적은지 기름이 아직도 많은데 프리웨이 출구에 내려서 주유소에 차를 댔다. 그리고 기름을 채웠다.
날씨는 사막의 더위로 매우 더웠다. 그러나 슾기가 없기 때문에 그냥 더웠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특히 사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기후는 매우 친밀하였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들역시 고동색의 색깔을 띄우고 있었다. 이제 나는 사막에 들어 온것을 피부와 호읍으로 더욱 느꼈다.
나는 이번 순례의 여행을 통해서 깊고 의미있는 체험을 하기 바란다.
네시간의사막의 길을 횡단하면서 캘리포니아주와 아리조나주의 경계선 (State Border)을 통과 하게 되었다.
멀리 보이는 노란색과 초록색의 기는 아마도 아리조나주를 지적하는 깃발이었다. 나는 속도를 줄이면서 왼쪽에 고정되어있는 깃대를 보면서 지나갔다.
이제 부터는 아리조나 (Arizona)주였다.
경계선을 지나면서 느낀것은 자연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산들의 모습들은 거무스러웠다. 그리고 나무들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무더운 아리조나를 지나면서 아마도 자연의 풍경들이 무더운 날씨의 결과로 지역이 거무스럽게 타져있는 느낌을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캘리포니아주와 아리조나주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아리조나의 선인장(catcus)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옛적의 서부영화에서 나올때 보던 카우보이와 선인장이 떠 오르기 시작했다.
아리조나의 명물중에 하나인 키가 큰 선인장을 사구아로( Saguaro cactus)라고 부른다. 이 선인장은 아리조나주의 소노란 지역에서 자라며 멕시코의 소노라지역에서도 자란다. 옆쪽으로 팔같은 선인장이 자랄라면 칠십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수명의 평균이 이백년가량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뜨거운곳에서 사는데도 우리 인간 보다도 오래 사는 선인장이다.
나는 수도원의 훈련을 위해서 일부터 자동차의 에어콘을 계속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의 구름들이 특히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나의 느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이 사십년동안 시내 광야(Wilderness of Sinai)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특히 사막지역의 기후를 보며는 낮에는 너무나 덥기 때문에 구름은 보호의 역활을 해준다. 그리고 밤에는 온도가 갑작히 내려가지 때문에 금세 추워진다. 이때 불기둥은 온방 역활을 한다.)으로 보호하신 일같이 나도 보호함을 받는 느낌을 가졌다.
나는 기름을 채우기 위해서 피닉스(Pheonix, 아리조나주의 수도) 못 미쳐 있는 인근 주유소에 차를 세웠다. 역시 낮의 기후는 매우 건조하면서도 더웠다. 그래서 기름을 채우고 주유소안에 있는 마트에 들어가서 몸을 식혔다. 그리고 이곳에 진열된 상품들을 두루다니면서 구경을 하였다. 특히 냉동안에 진열된 음료수들이 눈에 띠었다. 나는 물을 구입해서 몸의 갈증을 해소했다. 진정한 음로수는 역시 시원한 물 밖에는 없다고 본다. 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생수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예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면서 마트를 나왔다.
이제 하이웨이 10번은 나를 피닉스 (Pheonix) 로 인도하고 있었다. 갑자기 차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는 가운데 여태까지 달려온 길은 2차선이었는데 갑자기 사차선 5차선으러 늘려났다. 그리고 가끔마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알고 보았더니 경찰이 직접 티켓을 않 띠어도 이 카메라는 자동적으로 속도 위반된 차량 번호를 찍어 집으로 직접 티켓이 날라 온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사람없이도 기계들이 더 정확하게 그리고 신속적으로 우리의 실수들을 잡아내고 깨닫게 한다. 그러나 기계들은 우리의 외적인 실수는 잡아낼 수 있어도 우리의 내적인 부패된 마음을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신앙만이 우리를 정화 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순의 길을 가고 있지 않는가?
피닉스는 미국의 남서부의 사막에 세워진 대 도시이다. 이러한 사막지역에 도시를 세운 이유는 농업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 강들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인디안들 때 부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농업과 감귤류등의 과일등을 재배하고 있다. 지금은 하이테크 분야쪽에서도 활발하게 팽창해나가도 있다고 한다.
“뜨거운 삼가이 변하여 못이 될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것이며…” (사 35: 7)
"The burning sand will become a pool, the thirsty ground bubbling springs" (NIV)
피닉스에서 시간을 보니까 오후 3시가 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떠난 시간은 오전 8시 그러니까 일곱시간 이상을 운전하고 온것이다. 느낌으로는 괜찬은것 같으나 몸은 매우 피곤해 있었다. 나는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이 느꼈다. 그리고 지도를 보니까 약 1시간 이상을 더 가야 수도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지도에서 지적하는 약도와 내가 준비한 약도와 자동차의 GPS (Global Positioning Systme, 범지구적 위치결정체계)는 다 다르게 지시하고 있었다. 나는 갑작히 혼돈이 오는것을 느꼈다. 어느 지시에 따라야 하는가였다. 지도, 내가 준비한 약도, GPS? 갑자기 어지려워 지면서 혼돈이 왔다. 그리고는 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수도원에다 전화를 했다. 그러나 엔서링 서비스만 나오는 것이였다. 나는 계속 달릴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차를 동쪽방향에서 서쪽으로 돌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캘리포니아쪽이었다. 당황한 가운데 무조건 본능적으로 고향이 생각난것이었다.
나는 핸들을 돌리면서 속으로 말했다. 나는 지금 여기서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도를 했다.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피닉스 공항쪽 출구로 차를 돌렸다. 그리고는 주유소로 갔다. 날씨는 매우 더웠다. 배고 곱았다. 지쳐 있었다. 나는 주유소 마트에서 일하는 종업인에게 내가 어지에 있고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리고 더운몸을 식혔다. 조금있다가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한가지 지도만을 선택해서 따르기로 했다. 이것은 GPS도 아니고 내가 준비한 약도도 아닌 그냥 지도였다.
내가 느낀것은 이것이다. 한가지 지시만 따라야 하는 것이다. 지시해주는 것이 너무나 많으면 혼돈이 온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갈길을 예수님께 맞긴것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오직 주만이 나의 전부인것이다. 다른길은 없다고 고백하고 싶다. 또 하나의 깨닭음은, 내가 피닉스 지역에서 방향을 읽고 헤멜때 나의 마음은 두 갈래고 나뉘어 졌다. 순례를 포기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실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했다. 그러나 나는 기도를 통해서 시험을 이겼다고 본다. 오직 감당할 시험만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지도를 따라 수도원까지 한 시간을 더 달리고 나서 도착했다.
4. 도 착 Arrival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행 21: 17
“When we arrived at Jerusalem, the brother reveived us warmly.” (NIV)
하이웨이 79번에서 파이사노길 (Paisano Drive 나중에 이길이 성 요셉 St. Joseph Way, 길로 바뀐다.)로 들어서면서 약 이 마일 가량 가보는 산언덕 위에 보이는 채플이 보인다. 전형적인 그리스정교회의 건축모양를 갖춘 이 채플이 이름은 엘리야스 채플(Elias’ chapel) 이다. 채플의 건물색은 하얀색이였으며 둥군 지붕은 지중해의 색인 파란색이 매우 특이했다. 얼마 안가서 나는 돌자갈바닥으로 깔아놓은 주차장에다 차를 대고 수도원의 정문을 바라 보았다.
저녁 노울에 비치는 황금빛같은 색을 지닌 정문은 그리스 건축 또는 비잔틴식의 건축식이었다. 그리고 정문 안으로 보이는 야자수들과 사이프레스 나무들속에 파무친 자그마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진짜로 수도원에 들어가는 구나 생각했다. 마음이 떨리면서 또한 설례이기도 했다. 미스테리(Mystery)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초대교회사 (Early Church history)시대의 교부였던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의 수도원 입문할때의 고백한 글을 기억해 보았다.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 은 그가 은혜를 체험하고 친구들과 함께 수도원적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그당시의 그의 고백을 적어 본다. “이때 나와 함께 늘 서로 의논하고 사귀던 친구들은 복잡하고 번거로운 인간 생활을 떠나서 조용한 곳을 찾아 이주하여 세상일에 시달리지 않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의견이 일치하는 친구들이 어울려 곧 실행하기로 결정하였읍니다.” (성 어거스틴 참회고록, 세계기독교고전 8. P. 162) 나 역시 순례자로서 수도원에 들어가는 심정은 세상과 단절되는 것 같았다.
20세기의 카톨릭교의 가장 엄격한 수도원인 트라피스트(Trappist )회의 수도자이며 명상가며 작가인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은 그의 자서전인 칠층산 (Seven Storey Mountain)에서 수도원의 들어가는 순간의 마음 상태를 이렇게 기록했다. “신부님, 나는 모든것을 하느님께 바치고 싶습니다.”(칠층산, p, 372) 하나님께 모든것을 마친 마음을 이해 할 것 만 같았다. 나는 이렇게 영성의 거성들의 결심의 특징은 결단이라고 보았다. 세상을 등지려는 결단이었다.
도착해서 제일 먼저 간곳은 책방옆에 있는 휴식처였다. 이미 몇 사람들이 이곳에서 수도사의 접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리스에서 온 순례자들이 아니지 모르겠다. 얼마 않있다가 검은 수도복을 입은 수도사가 나타났다. 긴 수염을 기른 그는 나에게 다가 오면서 이름을 말해 주었다. 신부 스라빔 (Father Seraphim)은 나의 이름을 물었다. 나의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눈을 처다 보았다. 그는 매우 진지해 보였으며 눈은 매우 총명스러웠다. 그리고 말을 더듬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본 사실이지만 이들은 별로 대화를 하지 않고 산다고 했다. 신부 스라빔은 나에게 어디서 왔으며 얼마나 머물를것을 물은 다음에 수도원의 예배시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동방정교회의 전례에 있어서 “예배”(Liturgy)라는 말과 “성체 예의” (Divine Liturgy)라는 말을 구분하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어로 보며는 더욱 구별을 볼 수 있다.
동방 정교회는 우리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예배(Worship)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예배(Worship)라는 단어는 는 기독교에서만 사용한다. 정교회에서는 예배대신에 “성체 예의” 또는 “성찬 예식”(Divine liturgy)이라고도 부른다. 개신교 예배와는 전여 다른 것 중에 하나는 정교회는 예배 종류가 많으며 내용자체들이 매우 섬세하다. 그리고 성체예배 때 신부들과 평신도들은 거의 서서 집행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을 사용하지 않고 비잔틴식 달력(Byzantine Calendar)을 사용핟다. 이 달력은 주후 7세기때부터 18세기때 까지 동로마제국(Eastern Roman Empire)때 부터 현제까지 존속하는 정교회 총대주교 (Ecumenical Patriarchates)지시하에서 사용한 동방전통의 교회력이다.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유동성이 많다. 특히 축제일이거나 행사의 날들이 변동될때가 있다. 부활절 주일은 매년 다르다. 그래서 항상 교회달력을 의지하게 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달력은 그레고리안식이다. 교황 그레고리 13세 (Gregory XIII, 1502-1585)가 율리우스달력(Julian Calendar)을 개종하면서 만든 달력이다.
수도원의 예의 시간도 일반적 개념의 시간과 다르다. 성 안토니 수도원의 예의 시간은 평일날과 주일날로 구분되어 져있다. 성무일과는 다음과 같다.
월- 토요일
1:15 AM - 4:00 AM 심야 예배 와 성체 예배
~ 4:00 AM
아침 식사
11:30 AM
점심 식사
3:30 PM - 4:30 PM
오후 3시 예배 와 초저녁 (석후과) 예배
4:30 PM
저녁 식사
5:00 PM - 5:30 PM
최종 예배 (만과)
주일
1:15 AM - 5:30 AM
심야 예배와 성체 예배
~ 5:30 AM
아침겸 점심
3:30 PM - 4:30 PM
오후 3시 예배 와 초저녁 (석후과) 예배
4:30 PM
저녁식사
5:00 PM - 5:30 PM
최종 예배 (만과)
음식은 육식을 금하고 있다. 그리고 평일 때에는 채소와 치즈와 올리브등을 섭취하며 특별한 절기 때에는 금식(Fast)으로 들어가거나 유제품을 멀리한다. 그리고 수도원의 일반때인 주중경우에 금식날짜들은 월요일, 수요일과 금요일로 알고 있다. 금식은 수도사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상생활 부분이었다.
스라핌 신부는 나에게 다른 수도자를 소개해주었다. 그의 이름은 넥타리오스(Nectarios)였다. 그는 수련 수사(Novice)였다. 그는 수도사가 되기위해서 훈련과 교육을 받고 있는 자였다. 스라핌 신부에서 풍기는 엄숙함과 경건함은 비록 떨어지지만 넥타리오스는 매우 상냥하고 친절했다. 그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건물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남자의 기숙사로 발을 옮겼다. 정문에서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걸으며 기숙사로 들어왔다. 수도원에서는 잠자는 구조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수도사들은 그분들나름대로 따로 방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방문객들과 순례자들을 위해서 남녀를 구분한 따로의 기숙사들이 있다. 넥타리오스는 나에게 방 5번을 제공해주었다. 조그마한 방이였고 옆에는 두개의 침대가 양쪽벽으로 놓여있었다.
침대하나위에는 이미 여행가방과 책이 놓여있었다. 이미 순례자가 차지를 했다. 나의 룸메이트의 이름은 펜테로스였다. 그는 카나다 토론토 (Toronto, Canada)에서 사는 그리스-미국인이였다. 그는 약 사십대쭘 되어 보였고 현재는 혼자되었다고 한다. 그는 정교회교인이며, 올해가 8년째 여름에 휴가를 내어서 이 수도원을 찾아 온다고 했다. 펜텔로스는 신앙생활을 생명같이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진지함을 보면서 그의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오후 5시에 있는 최종기도시간 또는 만과 예의(Small compline)에 참석했다.
예배장소는 성 넥타리오스(St Nektarios)였다.
5. 수도원 건물 Chapels in the Monastery
“너희는 산에 올라사서 나무을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학 1: 8
“Go up into the mountains and bring down timber and build the house, so that I may take pleasure in it and be honored” (NIV)
a. 성 앤토니우스 교회 (St. Anthony Church)
이집트 수도원의 창시자인 앤토니우스(Anthony)의 이름을 따서 세운 교회이다 수도원 역시 같은 수도사의 이름을 따서 세워졌다.
이 교회당은 수도원에서 가장 크고 많이 사용되는 곳이다. 비잔틴식의 예배가 매일 드려 지는 곳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동방정교회의 상징인 둥근 천장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것들이 펼쳐진다. 둥근 천장의 모양은 천국을 상징한다. 또는 우주의 둥근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교회당에 들어가 보면 한 가지 특이한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좌석들이 없다는 것이다. 예배는 거의 서서 드리는 것이 기본이다. 이것도 십분이나 삼십분이 아닌 한 시간에서 세 시간 동안을 서서 드리는 것이다.
벽쪽으로 기대는 의자(Tall Chairs, Stasidia) 들이 들어서 있어서 서 있을 떄에 기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것을 접으면 앉을 수 도 있다. 그래서 피곤할 때면 기대는 의자에 앉을 수 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기대는 목적으로 만들어 져있다.
기대는 의 외에 교회당의 진열된 모든 성물들은 다 그리스 (Greece)에서 가져온것이다. 그리고 많은 것들은 손수 만든 물품들이다.
교회당에 들어가자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성모 마리아(St. Mary)의 성화이다. 정식 이름은 판하기아 아리조니티사 (Panagia Arizonitissa, Virgin of Arizona)이다. 순례자들(Pilgrims)은 이 성화를 보면서 입을 성화에 맞추기도 한다. 그리고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교회당에는 전깃불이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단지 두 곳에만 전깃불이 들어온다. 성창을 부르는 곳에 만 전깃불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촛불을 사용해서 빛을 비춘다. 천장가운데 내려오는 촛불은 천국의 교회를 상징한다. 특히 성례일 때에는더 많이 피우기도 한다.
단(Altar)은 커튼 뒤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오직 신부들만 들어가는 거룩한 곳(Holy Place)이기도 하다. 그리고 감독좌석이 중앙 한 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좌석은 오직 감독만 앉게 되어있다. 그리고 역시 그리스 에서 손수 만들어서 보내왔다. 그리고 벽들에는 성자들과 성녀들 그리고 교부들의 성화들이 걸려져 있다.
b. 성 니콜라스 채플 (St. Nicolas Chapel)
수도원 서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정원이 나온다. 이 곳을 통과해서 계속걸어가면 성 니콜라스 채플이 나온다. 모자이크(Mosaic)의 돌들로 건축되어있다.
이 채플 역시 비잔틴식 (Byzantine)건물이다. 정면으로 볼때에 세 개의 창문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운데 창문은 양쪽의 창문보다 약간 큰것이 대조적이다.
이곳에 들어가 보면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을 받는 다. 성 니콜라스는 기적을 베푸는 성자로 알려져있다. 그는 4세기의 성자로서 그리스 (Greece)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마이라(Myra)의 감독으로 교회를 섬겼다.
채플 왼쪽에는 성모 마리아의 성화가 걸려 있다. 오른쪽에는 그리스도의 성화가 걸려있다. 그리스도의 왼쪽 손에는 펼쳐진 성경을 들고 있으며 오른 손은 승리의 사인을 하고 있다. 벽 기둥은 고린도식으로 장식한 기둥들이 서 있으며 바닥은 대리석으로 깔려져있다. 스테인 유리 (Stained Glass)로부터 들어오는 빛은 은은하였다.
c. 성 조지 채플(St. George Chapel)
이 채플은 로마니아 스타일(Romanian Style)로 건축되었다. 삼각형의 모자를 쓴듯한 지붕들이 대조적이다. 성 조지 옆에 세곳의 건물은 영빈관으로 사용된다. 채플안에 있는 가구들은 다 그리스에서 온것이다. 성상들은 다 직접 손으로 만든 물건들이다. 성상들은 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본 따서 새긴 족각 작품들이다.
채플 사이로는 감람나무(Olive Trees)들이 심겨져 있어 서 광경을 더욱 고풍스럽게 만들어 준다.
d. 성 드메트리오스 채플 (St. Demetrios’ Chapel)
데살로니가의 성 드메트리오스(St. Demetrius of Thessaloniki)는 4세기 순교자 (Martyr)이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 세워진 채플이다. 옆에는 스페니쉬 분수 (Spanish Fountain)가 사막의 더위를 시원하게 해 주고 있다.
채플 러시안식( Russian)으로 금속으로 장식한 둥근 지붕 (Onion Dome)이 특이하다. 이 건축을 보고 있으면 러시아 정교회의 교회 (Russian Orthodox Churches)들을 상기 시켜 준다. 이 채플은 러시안의 깊은 영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e. 십자가의 분수 (Fountain of the Cross)
십자가의 분수는 돌로 건축된 성물이다. 분수는 둥근 항아리 모습니다. 그리고 하늘색으로 칠해진 바닥의 찬 물들이 더욱 보는 이로 하여금 피곤하고 지친 영혼과 육신을 시원케 해 주고 있다.
분수 의에 세워진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십자가 모양이다.
이 십자가의 특색은 막대기가 두 개가 아닌 세 개가 붙어져 있다. 전형적인 십자가는 한개의 막대기가 붙어있지만 러시안 십자가는 세 개가 븓어있다. 이유는 첫 번째 막대기는 예수님의 패말이 적혀져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막대기는 손들을 위해서 있으며, 세 번째 막대기는 발판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세 번째 막대기는 약간 옆으로 비스듬하게 박혀져있다.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때에 양쪽으로 두 강도가 동시에 달여 있었다. 그런데 한 강도는 구원을 얻었고 다른 강도는 버림을 받았다. 그래서 천당간 강도를 기억하기 위해서 막대기를 한쪽은 하늘로 향해져있으며 다른 쪽은 지옥을 향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비스듬히 아래쪽으로 놓여져 있는 것이다.
f. 성 스라빔의 분수와 채플 (St. Seraphim’s Fountain and the Chapel)
스라보의 스라빔 (Seraphim of Sarov, 1754-1833)은 러시안 성자이자 수도사이다. 그는 19세기 러시아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던 자로서 캐톨릭교회서도 인정을 하는 수도사이다.
그의 신앙은 평신도 뿐만 아니라 성직자들도 존경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20-2005) 그의 글을 통해서 스라빔을 성자라고 칭하였다.
스라빔 (Seraphim)은 수도원적 기도와 명상 그리고 자신을 부인할 것을 가르쳤다. 그는 신자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성령님의 충만함을 얻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일생을 슾속에서 거하면서 금식과 잠가는 것을 줄이면서 기도에만 열중하였다. 그리고 음식을 먹더라도 하루에 한 끼만을 섭취했다. 그의 영성은 온 러시아 뿐만 아니라 정교회 신자들의 마음속에 지금도 살아있다고 한다.
성 스라빔의 채플 (Seraphim’s Chapel)역시 크지는 않지만 매우 간단하게 제조되어있다.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원한 느낌을 준다. 가운데 걸려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모습은 성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건물 전체가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나타내 주고 있다.
g. 안 마당 (Courtyard)
수도원 중앙에 위치한 안 마당은 피알리 (Phiali)라고 부른다. 피알리 (Phiali)는 조그마한 분수가 있는 전망대 (Watchtower)이기도 하다. 하얀 석가루로 빚어진 전망대 (Watchtower)는 둥그헣게 앉아서 서로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기 좋은 곳이다. 또는 혼자 앉아서 분수를 보면서 명상을 하기에도 좋은 장소이다.
이 밖에도 수도원 전부가 온갖 휘귀한 나무들과 열매 나무들로 심겨져 있어서 매우 우화스럽다. 그리고 바깥쪽으로 감람나무(Olive Trees)들이 있어서 명상이나 산책하기도 좋다.
6. 예배 The Liturgy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아에 무릎을 꿇자”- 시 95: 6
“Come, let us bow down in worhip, let us kneel before the LORD our Maker;”(NIV)
성 안토니 수도원의 하루는 저녁에서 부터 시작한다. 만과 (최종기도 시간, Compline)는 저녁식사후 드리는 마지막 예배이다. 그리고 나서 취침으로 들어간다. 시간은 오후 7시 30분이다.
나는 첫날에 도착해서 석후과 (Vesper)예배를 마치고 내 숙소방으로 들어와 기도를 드리고 잠 자리에 들었다. 저녁 기후는 선선했다. 그래서 이불도 덥지 않고 그냥 잠을 청했다.
“뚝뚝뚝”
“예배시간입니다. 어서들 일어나세요”
나는 수도사가 방문을 노크하면서 깨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그리고 옆을 보니 펜탈로는 이미 예배당에 간것이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예배당으로 향해 걸어갔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오전 12시 40분에 일어나니까 이 자체가 은혜스러웠다. 하늘을 쳐다 보았다. 보름달이었다. 금색의 색깔을 띤 달은 매우 환상스러울 정도로 밝았다. 그리고 하늘에 점점히 떠있는 구름은 야경을 더욱 신비스럽게 만들었다. 아직도 더운기와 차가운 밤 공기는 조금 무거운듯 했다. 그러나 이곳은 나에게 파라다이스(Paradise)였다.
예배실을 들어갔다. 복도의 벽에는 성화 (Sacred Paintings)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수입해온 신도석 (wooden chairs)들은 둘례로 돌아가며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촟불들을 붓이는 신자들 기도를 하는 신자들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어린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물론 부모들이 대리고 왔겠지만 한 아이들도 불평을 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이들 대부분 예배식에 따라 의례를 행했다. 물론 어떤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서 졸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떤 아버지는 애기를 안은 상태로 예배를 섯다 앉았다 하면서 드렸다. 이들의 열심을 또 한번 보면서 감탄하였다. 물론 열심이 있으니까 수도원까지 순례의 길을 택했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예배당 복도나 예배실에 전기 불이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공간을 촛불로 비추어 지고 있었다. 그리고 은은한 향 냄새는 나의 시각, 청각, 후각까지 자극시켜주었다.
나는 신도석에 조용히 앉아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않있다가 밖에서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종소리는 예배를 알리는 소리였다. 수도사들을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그리스어로 들리는 말씀과 시편등을 봉독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수도사들은 자유로 움직이면서 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리고 신자들 역시도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예배에 동참하였다.
예배석 배치도 여자와 남자가 구분되었다. 여성도들은 왼쪽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남성도들은 오른쪽 부분에서 참석하였다.
오전 5시 쯤 되니까 성찬식이 거행되었다. 마지막 예배의 순서이었다. 나는 비록 정교회 교인이 아니어서 성찬식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성쳬를 주는 신부들과 성도들의 진지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다만 이들의 모습으로 볼때 진짜 예수님의 피와 몸을 섭취하는 것 같았다.
아침 예배를 마치고 나서 이들은 식당으로 갔다. 물론 비 정교회인들은 이들이 식사를 하고 날때 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유는 정교회의 전통은 식사 까지고 예배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밖에서 나와 같이 기다리는 자들과 서로 얼굴을 처다 보면서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식당문이 열려지면서 벨소리와 성화를 들고 나오는 수도사들이 나아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후에 신자들이 나오면서 신부들에게 인사를 하고 성화에 입을 마추거나 절을 하고 나갔다.
나는 여기서 역사와 전통에 서 흘러나오는 신앙심과 열심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몇 않되는 순례자들과 아침을 먹었다. 아침식사 메뉴는 수도원에서 구운 빵들 (Toast Bread)과 치즈 (Cheese), 스크램불계란 (Scrambled Eggs)과 땅콩버터 (Penutbutter)와 잼 (Jam)들과 시큼한 올리브 (Olives)였다. 그리고 수박이 열매간식으로 나왔다. 나는 아침을 하고 나서 기숙사로 갔다. 아침식사후 3시간 동안 경건의 시간이 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잠을 자는 시간으로 삼았다.
주일이기 때문에 나는 주일 대예배를 기대했으나 수도원에서는 대 예배가 따로 없었다. 오후 3시의 예배 (Sixth Hour)와 석후과(Vesper)가 있었다. 석후과 예배는 초저녁 예배라고 부르며 취침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예배이다.
나는 넥타리오스에게 왜 대 예배가 없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주일은 쉬는 날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주중에는 신부들이 예배때문에 더 바쁘다고 했다. 나는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주일에 안식일이라는 만큼은 이해가 갔다.
나는 낮에 산책을 하면서 말씀묵상과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이러한 수도원경험과 체험은 어색하지 않음을 느꼈다. 이말을 쉽게 이야기 해서 나는 이러한 삶을 좋아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들이 사용하는 그리스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배또는 수도사들의 삶자체는 나에게 매우 자연 스러웠다.
사막의 분위기, 기도와 예배로 찬 분위기, 수도사들의 영성들, 진지하게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과 순례자들은 나에게 이들과 한 지체가 되는 것을 느꼈다. 물론 개신교 목사의 입장으로서 모든것이 자 완전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들이 믿은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 하나님이시다.
문화와 언어와 풍습을 않 따질 수 는 없지만 이곳에서 체험한것은 이러한 차이들이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체험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천국에서도 이러한 느낌이 아닐 가 생각해 본다. 온 나라지파들의 사람들, 온가지의 방언들, 물론 천국에서는 통역하는일이 없을 것이다. 이유는 모두가 서로들 알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예수님과 영원히 산다는 자체는 모든것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 20)
"Amen. Come, Lord Jesus" (NIV)
7. 성찬식 The Eucharist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전 11장 23-25
“For I received from the Lord what I also passed on to you: The Lord Jesus, on the night he was betrayed, took bread,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broke it an said, ‘This is my body, which is for you ;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In the same way, after supper he took the cup, saying, ‘This cup is the new covenant in my blood; do this, whenever you drink it, in remembrance of me.’” (NIV)
나는 수도원에서 예배를 참석하면서 이들의 진지함과 열심을 보고 매우 감동을 받았다. 우리 개신교는 예배가 거의 엔터테인멘트 수준인 반면에 정교회의 예배는 사람들 위주가 아니라 예수님위주인것을 체험했다.
몇시간에 걸처서 드려진 예배후에 마지막으로 남은 순서는 성찬식의 거행이었다. 이 행사이야 말로 정교회의 예배의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어두운 새벽미명에 촛불로만 비춰지는 불빛가운에 드려지는 성찬식은 마치 중세에 나오는 성화의 한 장면을 상기시켜 주었다.
금실로 장식한 꽃무니가 박혀진 사제복을 입은 사제들은 둘로 나누어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성체물을 나누어 주었다. 사제들은 포도주에 적셔진 자그마한 빵조각을 자그마한 수저에 담는다. 각 한사람 한사람씩 기도하는 자세로 나와서 선체로 사제들이 넣어주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아 먹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자세는 평신도들이 서서 성체를 받는 다는 것이다.
신자들은 성찬식에 참여하기 전에 엄격한 금식을 한다. 전날 부터 시작하는 자들도 있다. 그리고 주일 아침에 일어나서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금식을 할때는 동물에게서 나온 음식들은 금한다. (예, 우유, 버터, 치즈, 고기등이다) 금식의 목적은 성물을 대하는 준비와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 이다.
물론 개신교인 나는 직접 참석할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예배만 보고있어도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
정교회는 성찬식을 일년에 세, 네번정도 거행하였다. 이렇게 자주 할 수 없는 이유 하나는 준비과정이 너무나 길어서 였다. 그러나 요사히 정교회는 매주 집행하는 추세이다.
정교회에서는 안티도론 (Antidoron)이라는 떡과 잔을 비 정교인들에게나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 있다. 안티도론은 축복된 떡과 잔이다. 성찬식에 사용되고 남은 것이나 성별되지 않았기 때문에 효력은 없다. 그러나 이 물체를 받으려고 하는 자들도 많이 있다.
정교회의 성찬식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정교회의 성찬식의 정의는 개신교와는 매우 다르다. 우리는 성찬식에서 떼어주는 성물에 대해서 몇 가지로 해석을 한다. 성찬식 자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시한 말씀대로 행하지만 성물은 예수님의 피와 살로 믿지 않는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성찬식 (Sacrament)을 하나의 미스테리(mystery)로 보고있다. 이 말은 잔 (Cup)과 떡 (Bread)이 진짜 예수님의 피(Blood)와 살(Flesh)로 변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믿음을 가지고 떡과 잔을 대할때 거기에 은혜가 임한다는 것이다.
스위스 종교개혁자 쥬빙글리 (Huldrych Zwilgli, 1484-1531) 역시 성찬식을 화체설(Transubstantiation)로 믿지 않고 상징(Symbol)적으로 이해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식을 나누셨을때 하신 말씀 “이것은 내 몸이니”를 이것은 내몸을 상징한다”라고 이해 했다. 지금도 많은 개신교 교단 (Protestant denominations)에서는 쥬빙글리의 상징적 (Symbolic)이해 보다는 칼빈 (Calvin)의 미스테리 (Mystery)쪽의 이해를 따르고 있는 편이다.
그리스 정교회의 성찬식 이해는 매우 다르다. 이들은 화체설 (Transubstantiation)을 믿는다. 이들은 성찬식을 감사의 제단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Eucharist”라고 부르지만 어원은 그리스어의 “감사”(Eucharist, 헬라어 뜻)에서 나왔다. 성찬식은 또 하나의 희생 (Sacrifice)또는 제물(Offering)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희생의 전부는 예배(Liturgy)이다. 신자들은 예배(Liturgy)를 통해서 자신들을 하나님께 드림같이 성찬식(Eucharist)에서 드려지는 희생은 그리스도 자신(Christ Himself)인것이다. 이들이 드려지는 떡과 잔이 그리스도의 자신의 희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떡과 잔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찬식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Jesus)자신이 직접 희생의 제물이시며 죄인(Sinners)들을 위해서 바치신것이다. 이러므로 신부가 성찬식 때 드리는 기도중에 이렇게 기도를 드린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희생의 제물이 되시었으며 또 제물로 드려지셨습니다.” 정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을 성삼위 하나님께 드려진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교리는 1156-7년 콘스탄틴노플 공회(Council of Constantinople)에서 결정난 교리에 비추어 진것이다.
성 삼위일체 (Holy Trinity)께 드려졌다는 의미는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그리고 성부 (The Father) 하나님과 성령 (The Holy Spirit)하나님께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드려 졌다는 것이다. 정교회의 교리를 보며는 성찬식은 속죄의 제사(Redemptive Sacrifice)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도(Christ)는 믿는 자들과 죽은자들에게 까지 다 구세주(The Savior)가 되신자는 결론이다.
이렇게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자신을 죄인들을 위해서 드리는 거룩한 희생인것이다. 영원하고 독특한 만찬은 사실 교회(Church)의 거룩한 만찬인것이다. 이것이 성찬식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의 의미이다.
나는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신앙은 살아갈 수 록 깊구나 하는 것을 깨닭게 되었다. 나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신 예수님께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8. 기도 Prayer
“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 4: 17
“Pray continually” (NIV)
그리스 동방 정교회의 기도 신학(Theology of Prayer)은 한 마디로 풍부하다. 이 말은 이들은 많은 기도문들(Prayer Books)과 기도형식 (Prayer anthology)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도원(Monastery)은 기도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기도 (Prayer)에 대해 많이 발달되어 있다.
개신교 (Protestant)입장에서 볼때, 무슨 기도가 책들로 나와있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로서 많은 성자 (Saints)성녀들(Saintesses), 평신도(Lay believers)들이 드렸던 기도들을 편집한 기도문 (Prayer Books)들은 이들에게 매우 사랑을 받고 있으며 많이 보급되어 있다.
가장 많이 드리는 기도문중에 하나는 예수 기도(Jesus Prayer or Prayer of the Heart)이다.
예수기도는 매우 간약한 기도이다. 내용은,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또는 짧게도 “주 예수여”이다. 영어로는 Lord Jesus, have mercy on me, 어떤때에는 “a sinner”를 삽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Lord Jesus Christ”라고 드리는 기도이다. 그리고 다른 번형의 기도들이 예수기도에서 발산되기도 하였다.
정교회에서는 예수기도를 번벅하면서 기도를 드린다. 특히 수도사들은 이 기도를 호흡을 하는 이상 만큼 마음을 집중해서 또는 심장의 박동에 따라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드린다.
나는 수도원에 있으며 수도사들이 매번 어디에 있든지 예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의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인간이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변화됨을 인식하는 행동이다. 기도의 뒤에는 성령님의 역사가 항상 따른다. 그래서 기도와 성령(The Holy Spirit)의 역사는 때어 놀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Grace of God)인것이다.
예수 기도중에 신학적으로 네 가지 중요한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로는 예수님의 거룩한 성호(Holy Name)의 중점이며, 둘째로, 하나님의 자비(God’s Mercy)에 호소하는 것, 셋째로, 계속 반복함의 대한 영성 훈련 (Spiritual Discipline), 넷째로, 내적 묵상(Inner Contemplation)으로 인도함으로 나누어 불 수 있다.
나는 수도원 (Monastery)에서 느낀것 중에 개신교의 기도원(Prayer Mountain)의 차이를 체험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도실의 골방(Prayer closet)이었다. 수도원에서는 특별히 기도하는 기도굴 (Prayer cave)또는 기도방(Prayer room)이 따로 없었다. 다만 자기가 머무는 골방(cell)이 전부이다. 그래서 나같은 순례자(Pilgrims)들은 따로 어디 가서 왜치거나 부르짖는 기도를 할 곳이 없었다. 그리고 이들이 통성 기도 (Calling Out Prayer)나 울면서 애통하는 기도 (Crying Out Prayer)를 하는 것을 찾아 볼 수 가 없었다. 나는 나의 나름대로 이들의 문화차이가 아닌가 아니면 그렇게 부르짖을 만한 기도 내용이 없는 가 생각해 보았다.
수도사들은 이들의 삶 자체 (Life Style)가 기도같이 느껴졌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세상을 초월한 자들이다. 이들은 삶 자체가 죽는 연습 (Practicing of Dying)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사는 것이 죽은것 같고 죽은 것이 산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여기서 수도사들과 평신도들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영적의 일을 하려고 하며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자세를 영적의 채널로 바꾸어야 하지만 수도자들은 그러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고 죽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때 이들은 우리 일반 사람들이 같는 갈등이나 시련이 없다.
물론 이들은 이들의 나름대로 시험과 유혹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허황된 꿈, 환상, 질투, 게으름, 이러한 죄의 유혹들이 이들을 공격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의 신앙대호 대치 할것 뿐이다.
수도자의 긍극적인 목표 (Ultimate Goal)는 자유(Freedom)이다. 세상의 염려와 걱정에서의 자유, 미래에서의 자유, 과거의 실수에서의 자유, 자의에서 부터 자유등등이 있다. 이러한 자유를 같기 위해서는 이들은 세상을 포기한자들이다. 세상을 단념한자들인것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명령을 순종한 자들이다. 마태복음 19장 2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하린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간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부자 청년에게 주신 말씀은 다 수도자들에게도 주신 말씀이다. 기독교의 수도원제도의 창설자인 성 안토니(St. Anthony)는 그의 구도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세상을 포기해라 그리하면 하나님안에서 발견될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에 공통점은 포기 또는 단념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자들은 예수안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세상을 포기 한자들인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조롱과 픽박을 받으면서도 세상이 빼았을 수 없는 자유와 평화를 느리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기도가 아니면 무엇인가
9. 친 교 Fellowship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 20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 (NIV)
내가 제목을 친교로 붙여 놓았지만 사실은 내가 수도원을 친교하려고 간것이 아니었고 또한 수도원 자체가 친교를 하는 곳이 아닌것도 나는 안다. 다만 크리스챤으로서 친교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랑의 나눔이라고 생각해서 적어 놓은 것이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에 보며는 “성도의 교제와”라는 구문이 나온다. 성도의 교재는 기독독으 핵심 가르침 중에 하나인것이다.
나는 이박 3일을 수도원에서 보내며 나 나름대로의 친교가 있었고 형성되었는가 문답해 보았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이었지만 나는 여러번의 친교를 할 시간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다. 첫번째의 친교는 나의 룸메이트였던 펜텔로스와였다. 그는 나에게 수도원에 있는 동안 좋은 가이드였다. 그는 8년째 매년 여름마다 휴가를 내어가지고 이 수도원에 찾아와 영적 휴식과 충전을 하는 것이었다.
펜텔로스는 나에게 정교회에 대해서 진지하고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 해주었다. 우리는 침대 위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과연 크리스챤은 친교가 중요하구나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는 나의 수도원의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많은 점을 남겨 주었다. 그는 또한 아침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Volunteer)로 수도원의 정원 (Garden)에서 일을 하는 것이 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순수 자원 봉사였다. 하루는 내가 책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 데 그가 들어왔다. 그는 얼굴에 땀 방울이 더덕 더덕 붙어 있었으며 얼굴은 햇빛에 타서인지 불그스럼했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그는 나에게 나가와 반겨히 맞았다. 그는 아마도 밖이 너무나 더워서 에어콘이 돌고 있는 책방에 조금이나마 쉬로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책방에서 마련한 냉수와 초코렛트 과자를 먹으면서 더위를 식혔다. 나는 수도원에서 어색할 줄 만 알았으나 이렇한 좋은 룸 메이트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두번째의 친교는 넥타리오스(Nectarius)였다. 그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도원을 잘 설명해주었고 또한 좋은 말벗도 되었다. 그는 항상 바쁘게 다녔지만 항상 내가 원하며는 언제든지 도와 주려는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토한 책방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더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
그외도 서로 인사를 통해 만난 수도사들, 신부들, 그리고 순례자들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친교에 대해 또 한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름은 아델 (Amel)이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Uzbekistan)에서 온 러시아 (Russia)계 한인이었다. 그는 아버지는 한국분이었고 어머니는 러시안인이었다. 그는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 그러나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러시안 정교회의 교인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메사츄세츠에 가족과 머물고 있다고 했다. 아델은 아내와 아들을 대리고 이 수도원를 방문했다고 했다. 그는 열심이 있는 신자였다. 온 가족을 데리고 와서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이 었다. 황금같은 여름휴가를 수도원에서 보내는 열심을 볼때 그의 신앙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 식사때 만났다. 우리는 얼굴 생긴 것이 아시안 처럼 생겨서 더욱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나누었고, 또 식사를 마치고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는 소명자로 부른 확신을 없었지만 신앙을 잘 지키는 믿음있는 성도였다. 그는 말 하나 하나도 조금있게 그리고 예절을 지켜 가면서 나를 대했다. 그는 한국사람이라기 보다는 러시안계쪽의 문화를 가진 자 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하는 행동이나 생각은 동양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한국사람이라서 그런지 나성에 있는 교회를 말하면서 목사님의 이름을 대는 것이었다. 나는 잘 모르는 목사님이지만 그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짦은 기간이었지만 귀한 여러분들을 통해 친교를 나눌 수 있었다. 에델, 넥타리오스, 펜텔로스, 마가신부, 스라핌신부들은 나에게 천사와 같았다. 하나님께서 이 외로운 사막가운데 나를 보내시고 동방정교회의 수도원에서 영적의 축복만 주신 것이 아니라 이러한 귀한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게 해주신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살 할 뿐이다. 이제 나는 이들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인도를 함께 생각할 것이다.
10. 책방 The Bookstore
“이 모든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희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 4: 15
“Be diligent in these matters; give yourself wholly to them so that everyone may see your progress.” (NIV)
성 앤토니 수도원(St. Anthony Monastery) 에 도착하게 되며는 제일 먼저 들려야 하는 곳이 책방 (Bookstore) 이다. 이곳에서 접수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도원에 있으면서 이곳을 자주 찾았다. 이유는 여기에 볼만한 책들과 기념품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개신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그러한 기념품들, 성화, 정교회식의 십자가, 동방교회소개에 대한 책자들, 사막의 수도사들의 저서들이 판매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서 순례지들도 만나 볼 수 있었다.
책방은 산뜻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향을 피운흔적이 있어서 그런지 방 자체도 더욱 신비 스러웠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물품들은 그리스에서 수입된 것들이 매우 많다. 특히 앗토스산 (Mt. Athos , 동방정교회의 영성을 지탱해주는 20개의 수도원이 있는 그리스에 위치한 반도이다.)에서 직접 제조한 십자가, 성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수도사들이 직접그린 성화들도 구입할 수 있다.
여기에 책들은 거의 영어아니면 그리스어로 되어있다. 한글로 번역된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들이 동방정교회에 대한 이해를 바로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때 더욱 더 풍요롭고 의미있는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책방의 특징은 항상 시원한 생수와 다과가 준비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봉사가운데 하나는 손님을 맞이 하는 자세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손님을 항상 천사로 비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말은 마치 아브라함 (Abraham)이 손님을 맞이 할때에 하나님의 천사 (Angel of God) 로 맞이 한것 처럼 이들의 손님대접하는 정신은 마치 천사(Angel)를 대접하듯이 깍듯이 대한다.
그래서 불편함이 없는지 무엇이 필요한것이 없는 지를 항상 물어보고 공급해주려 노력한다. 이점을 고려해 볼때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고 매 마른지를 생각해 보았다.
기독교의 국가 (Christian Nation)라고 불리우던 미국은 이제 불친절과 의심과 개인주의로 팽창해 져있지만 이곳에서 다시한번 그리스도의 복음이 실천되는 것을 보면서 믿는 우리자신들도 얼마나 복음에서 멀어져 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 사는 곳으로 돌아가서 복음의 소금이 되어서 세상에 그리스도의 맛을 주는 그러한 자가 되리가 결심하였다.
나는 책방에서 일하는 넥타리오스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시간이 되며는 성자의 유물이 전시되어있는 채풀(Chapel)을 구경시켜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약속 시간에 돌아왔지만 넥타리오는 계속 바빠서 나에게 개인 시간을 낼 수 가 없었다. 특히 그는 혼자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해를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다음 기회에 성자의 유물을 보기로 약속하고 책방을 나왔다.
나는 메니큐어같이 닥아온 돌길을 걸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영성은 다른것이 아니라 대화와 진실함에 있다는 것을 깨닭았다. 아무리 영성이 뛰어나고 훌륭해도 진실하지 못하거나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믿게 되었다. 수도원의 모든 자들은 다 각자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존재하는것 처럼 느껴졌다. 마치 나는 사도 바울의 사랑의 대해서 한 말씀 구절이 생각났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꾕가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삭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것으로 구제하하고 또 내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것을 참으며 모든것을 믿으며 모든것을 바라며 모든것을 견디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 전서 13장 1-7, 13절 (개역한글)
나는 사랑에 대해서 묵상을 하면서 수도원을 돌아 보니까 갑작히 더 조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아무도 없고 나만 주님과 동행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조용한데서 묵상과 기도를 드리게 되어서 더욱 감사했다. 과연 수도원은 상상할 수 없는 체험들을 순간 순간 마다 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특히 아리조나의 사막 한 복판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이러한 역사를 체험하는 것은 분명한 은헤이며 특권이었다.
수도원에서 생각 밖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는 나는 정말로 이곳에 잘 왔구나 하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내일을 내가 이곳을 이제 떠나야 하는 날이다. 벌써 4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변화된 자였다. 이것만은 분명하였다. 세상으로 가며는 무엇이 나를 기다릴까? 어떠한 유혹들이 기다릴까?
11. 마지막 날 Last Day On the Monastery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 20b
“And surely I will be with you always, to the very end of the age.” (NIV)
나는 수도사가 문을 두드리기 전에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 때문에 깊은 잠을 갖지 못했다.
캐톨릭교에 속한 성 요셉 대수도원 (St. Joseph Monastery)의 트라피스틔회(Trappist)의 수도승이었던 바실 페닝톤 (M. Basil Pennington)은 수도사의 정의를 말할때 수도사는 자유함이 있는자이다, 모든것에서 자유스러워해야 하며 또한 주님이 부르실때 곧 바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하는 자이다. 이것이 우리의 빈곤이요, 우리의 순종이며 우리의 독신이다. 이러한 자유들은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안에서 과연 자유한가 이것이다.
나는 25년 전에 신학생으로 소명을 받고 주님의 사역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서 많은 해를 거쳐서 항상 바라고 원했던 수도원 순례의 발을 디뎠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를 하자면 나는 분명히 성장했고 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역사하심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천국의 문에 들어갈 때까지 인도해 주심을 확신한다.
그리고 성 안토니 그리스 수도원 (St. Anthony Greek Monastery)을 떠나면서 체험하였고 느낀것을 적어 보고자한다.
나는 이 짧은 기간이었지만 수도원의 단순하고 순수함을 체험하였다. 동방정교회의 예배를 직접 체험했고 여기서 교회의 전통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닭았다.
수도원은 사랑과 협력과 합심으로 운영이 되며 형성됨을 보았다. 성별된 삶의 가치는 수도사의 내적에 가치로 전달함을 보게 되었다. 영적인 아버지 (Spiritual Father)의 위치의 중요함을 다시금 깨닭았다.
개인적으로 주님과 더욱 가까워졌다.
겸손은 신앙생활의 기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전부이다.
끝에 적은 하나님늬 사랑이 전부라는 말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자 한다.
나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계를 체험하지 못하면 사실은 기독교의 중심을 이해하거나 추측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거나 주님(Lord)으로 섬길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의 빠져있지 않으면 믿는 자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가 어떠한 사랑을 하게 마련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물질에 대한 사랑, 인간 사랑, 동물사랑, 이상에 대한 사랑 등드이 자신의 존재함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애정없이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이미 아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 인간이 창조주에게로 돌아 오는가 인것이다.
사람은 얼마 만큼 노력을 하며는 거기에 대한 평화와 만족과 기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긍극적인 평화, 만족 그리고 기쁨은 복음을 따르는 삶, 다시 말해서 창조주을 사랑하고 피조물을 사랑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런한 방법을 알기 위해서 신자들은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택한 자들은 사실은 자유한 자이며 또한 자유한 것이다.
나는 이번 수도원의 순례를 통해서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고 마음속에 깊이 새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방에 널려져 있던 옷과 잠옷 그리고 세면기통을 여행 가방속에 차곡 차곡 쌓았다. 그리고 마지막 기도를 방에서 드렸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말로만 듣고 그림으로 보았던 성 안토니 동방정교회의 수도원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은혜의 자리에 참석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곳에 찾아오는 자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게 해 주시며 수도원에서 밤낮으로 주님을 섬기는 주님의 군사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들의 기도가 주님 오실 그 날까지 끊임없이 흘러나오게 하시옵소서. 판텔레스 성도, 넥타이로스, 아델 가족 특히 기억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는 나의 거처지를 나와서 다시 한번 채플을 돌어보고 책방에 들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하고 있는 네타리오스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잘가라고 인사를 해 주었다. 나 역시 기도를 부탁했다.
나는 나의 모든것을 공급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나의 삶터로 떠났다.
12.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10번 Interstate Highway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 6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 (NIV)
나는 수도원에 오기 위해서 사용한 길들(Ways) 중에 가장 긴 여행을 한 곳이 하이웨이 (Interstate Highway) 10번이였다.
인터스테이트 10번 도로는 대륙횡단의 고속도로이다. 이 뜻은 이 도로는 미국의 각주(Each State)를 통과하거나 지나간다는 것이다. 10번 도로는 미국의 남쪽 지역의 주들을 통과한다. 이 도로는 캘리포니아(California)주의 서쪽 바다 도시인 산타모니카 (Santa Monica)에서 시작되어 플로리다주(Florida) 의 도시인 잭슨빌(Jacksonville)까지 이어지는 대륙도로이다. 거리로는 2460마일(3959 Km)정도 된다. 이 중간 사이를 지나가는 주들은 다음과 같다. 아리조나(Arizona)의 엘파소 (El Paso), 텍사스(Texas) 산 안토니오 (San Antonio), 휴스톤 (Houston), 루이지아나(Louisiana)의 뉴 올린즈(New Orleans)이다.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시스템(Interstate Highway System)은 1956년도 아이젠하워 (Dwight D. Eisenhower, 1890-1969))미국 34대 대통령이 지시한 각주를 통과하게 만든 고속도로의 정책으로 세워졌다. 미국에는 수많은 각 주(State)를 통과하는 고속도로들이 전국으로 거미망(web)처럼 연결되어 있다. 통계를 보면는 약 6만5천마일의 콘크리트가 바닥에 깔려져 있다.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10번은 대륙횡단을 위해 만들어진 고속도로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대륙도로 (Christopher Columbus Intercontinental Highway)라고도 불리운다.
이 고속도로는 특히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도로이다. 이 고속도로는 로스엔젤레스(Los Angeles)에 위치한 한인타운(Koreatown)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로상에 한인타운(Koreatown)이라는 팻말이 표기되어있다.
나는 수도원을 떠나 아리조나에서 10번 고속도로를 타면서 캘리포니아주를 향해 운전을 하면서 어떤때는 통성기도도 하고 어떤 때는 찬송가, 복음송를 마음놓고 불렀다. 나는 주님과 동행하는 이 길에서 무서운것이 없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씨도 구름기둥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덥게 느끼지도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에어콘을 작동하지 않고 견뎌냈다. 그리고 달리면서 정면 옆면에서 보여지는 자연의 모습들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의 것처럼 생소했다.
자연 (Nature)은 항상 보아도 질리지 않고 계절 (Season)따라, 시간 (Time)따라 항상 다른 모양을 갖추기 때문에 늘 신비 (Mysterious)스럽다. 실증을 잘내는 우리들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시시 때때로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시다.
나는 시편(Psalm) 8편을 노래 하였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요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레 두셧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편 (개역 개정)
나는 지금도 겉으로는 흥분되어 있지만 내적으로는 평화를 체험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일까?
나는 무엇이 나에게 다가와 나의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이며 은혜이기를 바라며 또 한번의 기도를 드렸다.
“주께서는 은혜(Gracious)로우시며 자비(Compassionate)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Slow to Anger)하시며 인애(Love)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서 4장 2절 (개역 개정) 항상 은혜(Gracious)로우시고 자비(Compassionate)로우신 하나님, 죄인을 사랑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노하기를 더디 (Slow to Anger)하시는 하나님, 인애(Love)가 크신 하나님, 저의 죄를 회개하시기를 항상 기다리시고 지금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이 느낌과 자비의 말씀의 이해는 내가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내 마음속의 확신과 평화 그리고 잔잔한 마음은 분명히 주님께로 부터 온 것이 확신한다. 나는 또 한번 하나님을 만난것이다.
시편 기자의 간증이 생각난다. 시편 46편 10절,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NIV)
나는 자연을 보면서 웅장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그 분에 대한 확시에 대해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 그 것이 최고의 존경심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구약(Old Testament)의 이스라엘 (Israelites)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는 신약(New Testament)의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인 크리스쳔들에게 약속의 말씀으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창조주가 되시고 나를 인도해 주실것을 약속하듯이 내 마음 전체를 주관하시고 계셨다. 나는 묵묵히 주님의 역사하심을 몸소 지켜 보고 있었다. 스스로 생겨나는 기쁨과 샘물같이 솟아나는 평화는 나에게 편안함을 가져다 주었다.
10번 고속도로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번 체험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순간 어느덧 나는 아리조나 사막을 지나 캘리포니아 국경인 불라이스(Blyth)시에 도착했다. 콜로라도 강 다리(Colorado River Bridge)를 건넜다. 곧 이휴에 나오는 주경계 검문소(State Check Point)를 통과 하면서 나는 이제 나의 삶터로 돌아옴을 피부로 느꼈다.
그리고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10번 길 사인(Road Sign)속 안에 주 (State)이름이 바뀌었다. 아리조나에서 캘리포니아로…
13. 세리토스 Cerritos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면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 14 (개역 개정)
“Blessed are those who wash their robes, that they may have the right to the tree of life and may go through the gates into the city.”(NIV)
세리토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였다. 장거리 여행을 하였지만 몸은 가쁜하였다. 그러나 피곤은 몰려오는 것 같았다. 집문을 열고 들어와 후덥근한 방을 환기 시키기 위해서 창문들을 다 활짝 열었다. 그리고 나서는 입었던 옷들을 가려서 세탁기에 집어 넣었다.
마치 수도원으로 떠나기 전에 아침에 몸을 닦았듯이 이제는 여행중에 입었던 더러워진 옷들을 세탁기에 넣은 것이다.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였다.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개역 개정)
“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 holy and pleasing to God-which is your spritaul worship.” (NIV)
비록 수도원의 순례를 마쳤지만 나는 계속해서 죄로 물들어진 인생과 싸운 흔적들을 매일 매일 주님께 내어놓고 회개와 자백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
주님-나의 구세주- 앞에 무릎을 끓고 있자면 나는 거룩하신 그리스도 앞에 나올 자격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항상 울고 통곡을 해도 될까 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짧은 기도문을 자주 드린다.
그럴때 마다 내 깊은 영혼의 한 구석에서는 자그마한 소망이 솟아 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비록 부족하고 비천한 존재이지만 그리스도가 지금도 나를 초청하시고 부르신다는 것을 믿게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가” (마태복음 11:28) (개역 개정)”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ded, and I will give you rest” (NIV)
그렇다 우리 주님은 세상에서 피곤하고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을 지금도 초청(Invite)하고 계시다. 나는 주님의 쉼 (Lord’s Rest)이 필요한 자이다. 그리고 나에게 찾을 수 없는 선(Goodness)함을 그리스도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주님께 속한 자이다. 항상 아름다운 주님의 얼굴 (Face of the Lord)을 뵈옵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것을 확인하고 체험하기 위해서 순례자 (Pilgrim)의 길을 간것이 아닌가?
그러나 또 하나의 배운것은 수도원 안에서 계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의 삶터속안에, 가정안에, 직장안에, 학원안에, 사업처안에, 세상안에서도 계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나는 진정 깨달은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몸(Body)과 삶 전체 (Whole Life)를 주님께 재 헌신하였다. 부패(Corrupt)하고 타락(Fallen)한 인간(Person)을 택하시고 종(Servant)으로 삼으시고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 비록 불의 (Unrighteousness) 하고 부족(Imperfect)하지만 주님께 이 몸을 다시 바칩니다.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불쌍(Mercy)히 여기시고 도와(Help)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오는 인간을 빚(Mold)으시고 새롭게 창조 (New Creation)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허물이 많고 죄가 많더라도 한 사람도 그냥 보내시지 않으십니다. 모두 영접(Accept)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자녀로 삼으십니다.
나는 잠을 청하기 전에 더운물을 틀어서 목욕(Bath)을 하였다. 이번의 씻음은 새롭게 탄생한 것을 상징(Symbol of New Life)하는 의미인지 모르겠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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