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NTRAL JUVENILE HALL
(aka EASTLAKE) IN BOYLE HEIGHTS IS CLOSING ON JULY 2023 LET’S REMEMBER ALL THE STUDENTS, YOUNG ADULTS, STAFF AND TEACHERS WHO WILL BE MOVING TO A NEW LOCATION. THEY NEED LOTS OF PRAYERS AND LOVE. ANOTHER LOCATION CLOSING IS BARRY J. NIDORF JUVENILE HALL IN SYLMAR, CA. “I WAS IN PRISON AND YOU CAME TO VISIT ME.” – MATT. 25: 36 (NIV) SOURCE: LA TIMES, MAY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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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W is a substitute teacher, whom I happened to work with within the Los Angeles area high school district. Before he became a teacher, he used to be a photographer, traveler, movie producer, director, and screenwriter. He intrigued me when he mentioned about a film about a Mayan Indian spiritual leader in the Lacandones tribe near the states of Chiapas, the Yaxchilan borders of Mexico and Guatemala. His name is Chan `Kin Viejo, and he lived 104 years some legend notes.
According to Mr. W, Chan K`in Viejo who later converted to Christianity (some doubt it) was the last Indian descendant to the ancient Maya. Mayan civilization or empire began in central (meso) America that withstood more than a thousand years until the coming of Spanish conquerors in 1700. Older descendants of Lacandones wished to remain true to nature and simple living and practice their ancestor's religion. Until recently, Lacandones did not have paved roads or electricity, they continued to live within their tradition and religious custom. However, young Lacandones chose to follow new modern ways of living. Chan `Kin Viejo was considered one of the important spiritual leaders who influenced the lives of many in his lifetime. Even though many of the practices were contrary to the teachings of Christianity, his legacy is fading fast. After knowing a bit about Chan K`in Viejo and his life, I am starting to wonder about the future of Christianity and how it will become. I hope and pray that they will continue to become the Savior Jesus wishes to be. 드디어 친목회 날이 왔다.
반갑고 그리운 옛 청년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다. 토요일 저녁 5시 오렌지 카운티 라팔마 지역에 (Remember Knott's Berry Farm?) 있는 뷔페식당에서 모이기로 했다. 식당에 도착한 시간 4시 40분 벌써 많은 손님이 예약을 하려고 북적거리고 있었다. 날씨는 겨울 날씨에 비해 춥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오래 기다리기는 쌀쌀했다. 어드덧 이 목사(후보) 형제 부부가 도착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나서는 자리 예약을 했다. 곳 이어서 유 자선가 장로 부부와 정 회장 부부와 이 선교사 후보자 부부가 도착했다. Timothy 선교사 후보자 부부는 말 그대로 4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매우 귀한 부부였다. 오래간만에 만났지만, 옛 모습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 반가웠지만 40년의 공백으로 기쁨과 어색함이 같은 동시에 스쳐왔다. 홍 자매는 감기로 모임에 안 오려 했지만 모임의 중요함을 알고 참석했다고 했다. (what a committment!) 더 반가왔던 분은 김 자매였다. 하얀 스타일의 예쁜모자와 오버코트 매칭 세트는 자매님을 몰라보게 했지만 역시 옛 모습이 그대로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추운줄도 몰루는 밖에서 서로 뜨겁게 반가이 맞이하는 인사를 하는 동안에 어느덧 10명의 자리가 마련되어 우리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진 삼각형의 형태의 테이블에 앉혀 주었다. 뷔페식당은 이미 만원이었으며 나름대로 시끄러웠으며 또한 분주하게 손님들이 각자의 음식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시끄러운 줄 모르며 만남의 반가움 때문에 친교 그리고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여기서 옛정과 신앙의 동지의 뭉침이 중요함을 체험했다. 우리들은 만족할 만큼의 뷔페 음식을 먹고 나서 밖에서 줄 지어 기다리는 손님들을 배려해서 다음 장소를 조용한 데로 옮기기로했다 택한 곳은 옆길에 있는 칼스 주니어 (별 다방?)였다. 역시 나는 뷔페에서 나와 길을 헤매다가 유 자선가 장로의 보내준 구글맵과 주소로 칼스 주니어를 찾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렌지 주스와 병 물과 프랜치 프라이와 오니언링을 주문해 먹으면서 살아온 이야기, 후손 자녀들의 이야기, 또 왜 선교사 지망생의 길을 택하게 됐는지 그리고 이민 교회의 다음 가야 할 길에 대해서 진지하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으로 말들을 이어 갔다. 나는 왜 수도사가 되고 왜 개신교 목사가 수도원을 이야기 하는 질문에 답하기를 이민교회의 다음 스텝은 생존기에서 정착기로 들어서야 한다고 했다. 이민 초장기 시절 많은 이민자들이 교회를 신앙 보다는 정착하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또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 나왔으나 이제는 교회를 이러한 목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론 신앙 때문에 교회를 나오는 성도도 있음) 이제는 올바른 신앙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 주고 기독교의 순수한 신앙 전수를 이민교회가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수도원 영성 (말이 아니라 직접 체험 함)의 필요성과 수도사의 삶이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것을 나의 사명이라고 나누었다. 이민교회는 지난 60년 동안 이민자들의 생존과 정착에 뛰어들면서 이민자들과 함께 목사님들이 복덕방 노릇, 통역사 노릇, 직업 선택을 도와주는 생존에 연관된 사역에 전념하셨다. 이제 60년이 지난 이민교회는 1세 세대는 다 은퇴 또는 천국으로 가시고 1.5 또는 2세들이 이민교회를 맡고 계신다. (김동명목사님 안이숙사모님 1957년 베렌도 침례교회개척 Berendo Street Baptist Church) 그러나 영적인 지침도가 없는 상황에서 오늘도 이민교회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도들을 섬기고 있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신앙이나 영성이 아니라 이민교회에 맞는 적절한 신앙과 신학을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기독교 역사가 깊은 로마 천주교나 동방정교회 역사보다 (2020년의 역사), 기독교 역사가 짧은 이민교회나 한국의 교계는 신학 또는 영성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나 영성가들이 배출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개신교에서는 천주교의 영성가들을 인용하는 상태이다 (예, 화란계 신부 헨리 나우엔, 성 어거스틴, 마더 테레사, 트레스 디아스 영성 수련회모임, 침묵기도, 관상기도, 구심기도 등등). 이제는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체험한 신앙을 가질 때가 왔다고 믿는다. 물론 위대한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는다. 뿌리가 깊히 내려져야 가능하다. 어떠한 사역도 일도 많은 시간과 끊임없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남은 시간과 건강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도와 협력할 수 있다면 바람이다. 이제 우리들밖에 남지 않은 칼스 주니어에서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맛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들의 뷔페 음식들, 훈훈한 교제, 친목, 이민교회와 성도들의 현 주소, 우리후손들이 신학을 하는 귀한 헌신자 자녀들 그리고 후손들이 씩씩하게 자라는 자랑 등등. 나에게는 이번 40년 친목회가 매우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원하는 옛 친구들 (아직도 못 뵌 수 많은 행제 자매님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을 찾으려는 우리 각자의 몸부림은 이 자체가 영성의 모습이 아닌가 본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소수계 아시안으로 또한 한인 이민자로 또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우리는 천국에서 80년 친목회에 참석 할때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루고 왔노라 하기를 조금이나마 기대한다. 20년 전에 홀아버지가 된 나는 헤매면서 섬겼던 목회 사역을 접고 집에서 딸을 키우면서 픽업 사이사이에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살아오면서 읽고 암기하고, 배우며, 가르치고 또한 설교로 사용했던 성경이 처음으로 새롭게 읽히기 시작했다. 솔직히 성경을 몇 번 읽었느냐 얼마나 아느냐는 이제 나에게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오랜 세월이 가르쳐 주는 것은 성경을 읽는다는 자체가 매우 힘든 노동이며 또한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고통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에게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가 아니라 젊어서성경을 읽으세 늙어지면 못 읽게되나니라고 가르치고 싶다. 이제 글의 주제로 들어간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두움 (캄캄한, He Would Dwell In A Dark Cloud)에 거하신다고 말씀한다 (왕상 8:12; 대하 6:1).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구절이다. 솔로몬왕은 7년 동안 건축한 성전을 언급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성전 낙성식에서 드린 고백기도이다. 셀수 없이 많은 금과 은과 각종 향목과 보석으로 세워진 훌륭한 성전이었지만 솔로몬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집이라고 말하면서 캄캄한 구름 속에 나타나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렇게 찬란한 성전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없이 어두움 속에 나타나는 에너지를 하나님의 임재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 모두는 빛을 좋아하고 화려한 것을 찾고 또한 부정적인 것 보다는 밝은 것을 택하는 경향이있다. 그러면 성경은 왜 하나님께서는 어두움에 거한다고 말씀하시는가? 어두움이 주는 의미는 침묵과 고요이다. 그리고 에너지의 결합이다. 행동이 없고 다만 내 영혼이 수동적으로 어두움 속에 휩싸이는 상태이다. 그리고 어두움은 욕망을 흡수해 버린다. 인간의 모든 정욕을 해방시켜주는 상태이다. 구름 또는 연기는 영적인 상태를 말해 준다. 하나님 앞에서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16세기의 신비주의자인 십자가의 요한은 그의 저서인 “어두운 밤”에서 “어느 어두운 밤에 사랑에 타 할딱이며 좋을씨고 행운이여 알 이 없이 나왔노라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 (어두운 밤 번역:레전더의 성역) 십자기의 요한은 영적인 단계에서 첫 번째 해야 할 것은 자신을 세상의 모든 염려와 근심과 분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럴 때 이제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동방 정교회의 수도사인 그레고리 팔라마스 (14세기)는 헤시키즘의 대 영성가이다. 헤시키아는 헬라어로 침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그리스의 앗토스섬에서 일생동안 수도를 한 그레고리는 하나님의 본질은 알 수 없거나 에너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예수의 기도(Jesus Prayer)를 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고 무야의 상태에서 빛을 본다고 한다. 물론 하나님을 만나 보는 것이 아니라 은혜 (에너지)를 체험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요한이나 그레고리 팔라마스가 말해주는 것은 신앙생활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가 있다는 것과 (마치 아기가 성장하는 단계가 있는 것처럼) 또한 집중적인 노력과 의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걸작품은 오랜 세월의 준비와 노력의 합작인 것처럼 신앙성장도 서로 격려해야 하고 반응을 보여야 한다고 본다. 이제 2022년도 20일이 안 남았지만, 베렌도 침례교회 멤버들은 다가오는 모임에 열심히 동참해서 서로 그리스도의 에너지 (사랑)을 나누었으면 바란다. 이것이 성경이 말해 주는 어두움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오래전에 요한 복음서를 공부할때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연상케 한다. 알렉산더 박 박사 (동서 성경연구소 소장)
1. 들어가는 말 김 수영 박사는 오늘날 한국기독교에 무속신앙 또는 무속종교가 끼친 영향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영향을 받는 오늘날의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이것을 바로 알고 깨닫고 이해해서 신자답게 거룩하고 순결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또한 바른 예배와 신앙생활을 할 것을 당부한다. 김 박사는 무속종교 소개와 발전을 이야기하면서 오늘날 개신교회와 신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강의 내용에서 구체적으로 교회에 준 영향을 이야기하며, 무속신앙과 기독교의 같은 점과 다른 점 (compare and contrast)를 소개해 주고 있다. 주제 별로는 신론, 중보론, 성령론, 예배론, 축복론, 기타 등으로 기독교의 조직신학의 개론 방식으로 발표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김 박사는 오늘날 한인교회가 무속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하며 개혁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함과 성결의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을 맺는다. 2. 무속종교와 역사 무속신앙이라는 것은 무당 (샤먼; Shaman)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민간적 종교의식 (Korean folk religion), 또는 토착 종교를 말한다. 샤머니즘 (Shamanism) 가르침 : 모든 자연에 영의 존재를 믿으며 자연 물체를 숭배하며, 모든 영혼(Spirit)의 존재를 믿으며 또한 인간의 사망 후 영이 되어 존재함으로 현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영어로 토테미즘 (Totemism) 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자연물을 신성화하는 종교이다. 정령을 펜엔티어즘 (Panenthiesm) 만물이 신성화함을 믿으며 또한 초자연의 귀신 (Demon)을 따른다. (북아시아의 몽골인의 종교인 텡그리즘 (Tengrinism)이 무속종교에 속한다.) 이러한 현 세계와 세계를 이어주고 제사해주는 자를 무당 (Shaman), 만신 또는 박수 (Magician) 라고 부르고 있고, 이러한 면으로 보면 무속신앙은 총체적 신앙의 체계임을 볼 수 있다. 기원으로 보면 고조선 의 단군신화(곰, 호랑이 이야기; 천신 강림과 산신 신앙 )로 시작해서 애니미즘 (Animism)과 토테미즘 (Totemism) 즉, 자연숭배로 퍼져나갔다. 삼국시대 (A.D. 300- A.D. 700) 에 와서 제천의식과 솟대로는 새긴 새를 꽂은 나무를 중재자로 삼아 수호 개념의 틀을 세웠다. 고려시대 (A.D. 936- A. D.1392)에 와서는 무속종교가 구체화 되며, 조선시대 (A. D.1392- A. D.1897) 에 와서는 탄압 시대를 맞는다. 일제 강점기 (A. D.1910- A. D. 1945) 때는 탄압과 유지기가 같이 존재한다. 해방 이후의 (A. D.1945- 현재) 무속종교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되어 오고 있다. 무속종교는 아시아 지역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 중동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륙 종교로 불리는 불교 佛敎: (Buddhism) 기원전 6세기 인도 계통 종교; 석가모니;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 (수행의 종교). 유교儒敎 : (Confucianims)는 기원전 8세기-5세기 중국 춘추시대 유학의 학문이며 공자 (기원전 6세기) 공교륜의 명분을 가르침을 일컫는다. 도교道敎: (Taoism)는 기원전 5세기 중국 고대의 종교이며 노자 (주전 6세기)의 가르침에 따라 다신교를 주장한다. 인간과 자연의 합치, 불동, 간결 등을 가르치고 있다. 무속종교는 이러한 종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로 보자면 한국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보고 있다. 로마 천주교의 역사는 1830년에 교황청이 조선 대목구를 설립함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개신교의 역사는 칼 귀츨라프 (1832년)의 성경을 보급함으로 기독교가 들어왔다. 그후로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 (1870), 로버트 매클레이 (1884년), 알렌 (1884년), 영국의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 (1886년) 그리고 미국의 호러스 알렌 (1884년), 언더우드 박사 (1885년)와 아펜젤러 (1885년)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한국에 선교의 시작과 발전을 가져왔다. 3. 기독교와 무속종교의 가르침 차이 첫번째로, 무속종교는 창설자가 없다는 점이다. 오직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신을 믿지만, 기독교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 삶의 개입과 다스림을 믿는다. 그래서 신도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무속종교에서는 기독교의 단어들인 사랑 (요 3: 16)과 희생 (히 10: 10), 죄와 용서 (마 18: 21-35), 화해와 회복 (롬 8: 1-2; 엡 2: 16) 또는 심판 (히 9: 27)을 통한 상급과 벌 (계 22: 12) 그리고 영생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생 하지 않은 인간은 종교인은 될 수 있으나 기독교인은 아니다. 인류역사상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신앙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생존과 재앙과 위험 속에서 인간은 자신들보다 더 강하고 위대한 존재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다. 아기들에게 서는 부모가 될 수 있고 학교에서는 교사, 직장에서는 상사 또는 사장, 나라에서는 왕 또는 통치자들이 이러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는 보이는 세계와 달리 무지 (Ignorant) 가운데 무언가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에서 보이는 물질을 신으로 선택해 그들의 신으로 만들어 버린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우상숭배 (Idolatry)라 한다. 그러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와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신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으시고 각자 개인에게 나타나신다. (이것을 예정론이라 함) 유대인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 모든 민족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돌아가심과 부활과 재림과 심판은 오직 기독교에 있는 독특한 신학이며 가르침이다. 그래서 택한 백성은 거룩하게 또한 성결 하게 살아야 함과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 할 것을 강조한다. 둘째로 무속종교는 정통과 이단을 평가할 수 있는 성경 또는 표준 또는 기준 (Canon)할 수 있는 신학이나 확립된 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속종교에는 논쟁은 있지만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는 투쟁은 없는 것이다. 무속종교는 조직적으로나 교리상으로 채택되어 있지 않지만 기독교는 초창기때 유기적 가정교회로 시작해서 오늘날 인류의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넷워크 시스템과, 교회법 (Church Canon law)과 단체적 조직 (Religious Orders)과 신조 (Creeds)및 교리 (Doctrines), 고백서 (Confessions)와 학습 (Catechisms)과 성경책(Scripture)이 있다. 비록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분파와 분리가 일어나지만 핵심의 가르침은 단 하나이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 것과 예수그리스도의 강생 (incarnation)과 대속 (redemption)인 것이다. 교리상으로 말하자면 원죄를 지은 인간을 영원한 죽음에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속종교에서는 이러한 가르침이나 신조가 없다. 무속종교는 기독교처럼 성자, 성녀, 순교자, 수도원 제도 수도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무속종교는 희생의 종교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본받고 따르려 하는 자들이 수많이 많으며 또 계속 생겨나나 반대로 무속종교인들 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셋째로 무속종교는 천국이나 마지막 심판에 대한 가르침이 없지만, 기독교는 인간의 타락으로 시작해서 죄의 용서, 화해의 가능성 그리고 마지막심판과 천국의 영생을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는 현세가 전부가 아니라 현세는 단지 영생을 얻기까지의 준비의 단계로 가르친다. 순례자의 개념과 순교적 신앙(죽어야 산다)은 기독교의 역설적인 진리의 가르침이 주제이다. 이생에서 부귀 또는 형통은 부실하며 신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며 그와 즐겁게 동행하는 것이다. (미가 6: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원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4. 결론 기독교와 무속신앙은 유사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속종교는 개인주의 기복의 종교이며 또한 현세에 초점을 맞추나 기독교는 개인의 종교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다. (God-centered) 신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사는 매일 전투하는 살아있는 증거자들이다. 오늘날 세상에는 많은 미혹과 혼미의 영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믿는 자들을 유혹하고 혼미스럽게 하려고 하는 악한 세력이 우리 옆에 있다. 여기에서 크리스천들은 현세와 타협하려는 두 마음 : 하나님과 재물의 신(God and mammon)을 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우상숭배를 해서도 안 된다. 또한 신성과 거룩함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에 마음에 초점을 맞추도록 우리는 항상 노력해야 한다. 영적 전쟁은 이 시간에도 치러지고 있다. 무속종교는 기독교와 크리스천을 도전하는 사단의 가르침이며 지금은 기독교가 무속종교에서 하루속히 빨리 벗어나서 생명력을 다시 회복하고 발휘할 때이다. 진정한 신앙인이 무언가를 다시 한번 살피는 시간이 되었으면 바람이다. sources: Endredy, James. Shamanism for Beginners: Walking with the World Healers of Earth and Sky. Llewellyn Publication, 2009. websites: 열린공감 TV: 천공 대한민국 미래 포럼 (무속신앙) 유튜브: 천공 http://www.christiantoday.us/17779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9091 http://www.kmcdaily.com 손원영교수, "불자들에게 예수를 전하려고했다" (2022.08.22) https://namu.wiki/w/%EB%AC%B4%EA%B5%90 by Alexander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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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Brother Alexander T. Pak has a doctorate in Patristics, which he studied under Dr. Joseph P. Farrell (Oxon) and Dr. Scott DeHart (Oxon), from CGSOT. He focuses on researching Church Fathers, Korean-American immigrant history, and missions. Martyr's Descendant: A Story of Vowed Son was published in the spring of 2019 and was his autobiographical novel that tells of how he found himself. Archives
July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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