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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prints of Mu-Gung-Wha Christians in America:  A Brief history of Early Korean-American Church's in America                                    

                                                                                                                                                                                             By Alex Pak


미국 속의 무궁화 크리스챤들의 발자취 : 미주이민 초창기 교회의 이야기 

서론 (Introduction)
미주한인교회 100주년의 역사를 맞이하여 이민교회들과 신학교육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이제는 어제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또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가야하는 사명을 다시 한번 새겨보는 글이 됐으면 바란다.  하나님께서 어느 지역에 교회를 세우시거나 기독대학교를 세우실 때는 독특한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미주한인교회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독특한 목적을 가지고 세우시고 인도하셨다.  이제 미주한인교회는 더욱 힘을 가해서 좋은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고 21세기의  예수님을 닮어가는 성도들을 세워가는데 앞장서야 겠다.  우리 모두가 앞서 간 신앙의 선조들을 기억하면서 현재의 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 아메리카에 사는 우리는 오래 전에 신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안들의 삶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은 우리들보다 먼저 이 땅에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이들의 흔적들과 소수의 후손들이 남아 있다. 우리후세들의 앞날도 우리들이 어떠한 신앙을 이들에게 남겨야 인디안들의 역사를 되풀이 않을 것인지 알아야 한다.  여기에 간략하게 소개된 교회외에도 수많은 크고 작은 교회들이 지금도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음을 저자는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간략한 한국기독교 역사의 흐름(Brief History of Korean Protestnat Christianity)
우리가 기억해야 할것은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한국의 정서와 신앙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기독교 복음 전파를 이야기 할때 특징적인 것은 서양에서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복음이 한국땅에 들어와 기독교 신앙이 자생적으로 세워져 있었다는 점이다.  즉 한국인들은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받아드린 것이다.  

특히 만주와 일본에서 성경이 한글로 번역된 역사를 보거나 한국인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서방에 선교사 파송 요청을 하였다.1 물론 한국기독교의 역사 속에는 서양에서 온 중국에 파견된 선교사님들의 순교정신으로 씨가 뿌려졌다.  한국의 기독교 선교의 시작은  중국에 선교를 하던 선교사님들이 하루속히 조선에도 선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기도에서 비롯되었다.  이중에 네델란드 선교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귀출라프(K. F. A. Gutzlaff)선교사는 1832년 중국을 떠나 서해안에 있는 장산곶, 백령도, 대청도, 그리고 안면도에 가까운 금강입구까지 성경을 배포하고 복음을 전했다. 2 

그후 1866년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영국선교회 소속인 토마스 선교사가 고종 황제를 만나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3  토마스선교사는 불신자들에게 성경을 나누어주고 전도지를 배부하였다. 그러나  평양의 관원들은 토마스선교사를  체포하고 처형시키고 말았다. 이로서 한국의 기독교역사의 첫 순교자가 되었으며,4  이로서 한국교회는 순교의 피가 밑거름 되어 성장하게 되었다. 

그후 1872년 스코트랜드 연합장로교회의 맥킨타이어 (John McIntyre)목사와 로스(John Ross)목사가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어 만주에 도착하여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중에 1866년 조선의 평양에서 토마스선교사의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은 한국선교에 각벽한 관심을 갇게 되었다. 

로스목사는 1874년 10월 중국과 한국의 국경이었던 고려문에 도착하여 한국의 전도와 선교의 가능성를 파학하고 한국의 청년인 이응찬을 만나게 되었다.5 그리하여 이응찬은 한국의 첫 개신교의 신자가 되었다.6 이응찬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고향 의주를 왕래하면서 백홍준, 이성하, 이익세, 김진기 등을 전도하였다. 특히 이응찬과 백홍준외 다른이들은 1879년도 로스목사와 맥킨타이어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7  그리고 이들은 성경 로스역을 번역하는데 큰 도움을 준 동역자가 되었다.  이중 백홍준은 1883년 로스역 성경책 수십 권을 등에 메고 의주 땅을 비롯해서 위원,강께, 구성 등을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였다. 많은 증거자들은 위험과 핍박속에서도 열심히 전도를 하면서 한국교회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국의 개신교의 선교사로 첫 발걸음을 옮긴 사람은 일본 주재 감리교회의 선교사였던 메클레이 (Rev. R. S. MaClay)이다. 메클레이 선교사는 한국의 실력자 김옥균을 일본에서 만나 한국의 선교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중 고종황제를 만날 수 있도록 요청하자 김옥균은 이 일에 적극 찬성하였고  고종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1884년 6월 24일 메클레이는 한국을 방문하였지만 고종 황제를 만나지 못하고 그 대신 김옥균으로 하여금 고종 황제에게 선교의 뜻을 전달하도록 부탁하였다.8  김옥균은 공식적으로 메클레이를 방문하고 고종 황제에게 제출한 타원서가 성공되었음을 전달하였다. 

이로서 한국에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었고, 얼마  안되어 1884년 9월에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의 선교사인 알렌(Dr. H. N. Allen)의료 선교사가 내한하게 되었다. 그리고  감리교희의 소속 아펜젤라 부부 선교사가 1885년 4월 15일 부활절에 인천항에 도착하였다.9  이어서 5월 3일에는 미국 감리교회 소속 스크렌톤 선교사와 그의 모친 스크렌톤 선교사가 함께 입국함으로 한국의 감리교 역사가 펼쳐졌다. 


미주 한국인의 흐름(Lives of Korean American)
미국에 한인들이 정착한 역사를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한다. 첫째 시기는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어 1882년부터 최초의 한인 이민이 집단으로 하와이에 이주한 때 1903년까지를 보고 있으며, 둘째 시기는 한인들이 하와이 노동이민을 시작한 1903년부터 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셋째 시기는 1945년부터 미국의 새 이민법이 제정되어 동양인들이 대량으로 미국에 이민할 수 있었던 1965년, 케네디 정권시대였다.  이때의 이민자들로는  유학생, 전쟁고아, 미군과 결혼한 부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네번째 시기는 1965년부터 현재 시기로 보고있다. 그리고 현재에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들의 대부분은 1965년 이후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10 한인들이 최초로 미국에 공식적으로 그리고 집단 이민을 온 시기는 1903년과 1905년 사이이다. 하와이 이민국 기록에 이미 한국사람의 이름으로 등록된 자들이 나온다.  

하와이(Hawaii)
미주한국인의 이민이 공식적으로 시작된것을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미국상선 S. S. 갈렉시호(Gaelic)편으로 도착한 자들로 보편적으로 본다.11 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그릅의 이민자들은 이른 바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계약 노동자들의 시작이었다.  물론  하와이 이 전에도 이미 미국대륙에는 한국인들이 살아있었던것으로 파학된다.  이렇게 시작해서 미국땅에 한인들의 거주지가 형성되었고 또한 공동체가 건설되었다.

와싱톤(Washington)
특히 와싱톤(Washington)지역에 한국사람이 첫 발을 들여놓기는 1883년 9월 15일에 와싱톤에 도착한 한국정부의 보빙사(구한말때 외교사절단) 일행일 것이다. 그 전해였던 1882년에 한미상수호조약이 조인되고 다음 해인  1883년 주 한미국공사관이 서울에 개관되었으며 그 답례로서 구한국정부가 보빙사를 미국에 파견한 것이다.12  

이리하여 미국대륙에 한국인들이 거주하면서 한국인의 거주가 확실해졌다. 그리고  1905년 일본과의 보호조약으로서 대한 제국이   일본에게 빼앗기게 되자, 사실 와싱톤의  주미 한국공사관도 폐쇠되었으며 한때는 와싱톤지역의 한인들의 대한 통계는 확실치 않았다.  1919년 3. 1 운동 후에 중국 상해에 대한 민국  임시 정부가 조직되고 그 구미 대표부가 와싱톤에 조직이 되었다.  여기에 대표부가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의 본산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어떤 이야기에는 뉴욕에 거주했다고 주장한다.13 

와싱톤의 첫 번째 교회로는 1936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름은 “와싱톤 한인교회”라고 명칭되어있다.  이미 제 2차대전 중에 약 15명 가량의 한국인 미국정부요인들이 이미 와싱톤지역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곳에 있는 한인들이 모여서 세운교회라고 알려져 있다.14

뉴욕(New York)
뉴욕의 한인들은 미국의 제 3대 도시에 속하는 자들로 포함된다. 미국의 3대 도시인 로스엘젤레스(Los Angeles), 뉴욕(New York), 그리고 시카고(Chicago) 도시에 재미교포들이  사회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뉴욕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15  뉴욕은 미국 동북부, 뉴욕주에 있는 대도시이다.  허드슨 강(Hudson River)과 이스트강(East River)이 대서양(Atlantic Ocean)을 만나는 곳에 위치한 곳이다. 뉴욕은 세계적으로 금융업계, 상업, 경제와 문화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계의 이민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뉴욕시에서 한인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곳들이 엘름허스트(Elmhurst), 코로나(Corona), 퀸즈(Queens), 보로(Boroughs), 플러싱(Flushing)을 중심으로 잭슨하이트(Jackson Height), 우드사이드(Woodside), 서니사이드(Sunnyside)등 지역으로 이곳은 한인 뿐만 아니라 흑인, 히스페닉, 인도인, 그리고 중국인, 백인의 중류, 하류의 인구가 거하는 곳이다.  뉴욕의 한인들이 경영하는 유명한 업종은 세탁업, 채소상, 생선점 그리고 크게 유행하는 네일산업이다(네일 산업은 손톱을 치장하는 가계임).16 

특히 뉴욕지역은 유학생들이 1960년 당시에 콜럼비아대학(Columbia University)과 뉴욕대학(New York University) 및 기타 지역의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유학생들이 뉴욕지역 한국유학생협회를 조직해  1960년도 초까지 한인사회의 활동과 행사를 주관했다.17  특히 일본이나 중국 이민과 달리  미주 본토의 한인 이민은 주로 유학생으로 왔다가 거주한 자들이 많이 있었다. 유학생들은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기 때문에  한인인구는 자연적으로 공부하는 곳에서 늘어나게 되었다.  

1965년 이민법(케네디대통령때 제안됨, 죤슨대통령때실시됨)으로 뉴욕한인사회의 인구는 급성장하였다. 처음에 이민온자들은  가족초청으로 온 새 이민자라기보다는 한국유학생들이 전문직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의료계 전문인들의 수요로 발전해나갔다. 

그리고 70년대 후반과 80년도부터  이민의 문이 넓어지면서 이민자들의 수요가 늘어났다. 뉴욕지역의 교회의 발전도 한인이민자숫자와 함께 성장하게 되었다. 

시카고 (Chicago)
시카고(Chicago) 는 미국의 중부 도시로 5대호(The Five Great Lakes)에 연한 대도시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시카고의 한인타운은 노스 클라크(North Clark)와 로렌스(Lawrence)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에 머물며 살고 있다. 

시카고의 한인이민역사는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서재필박사가 결혼 관계로 시카고를 방문하였음)18  그리고 당시의 한인들은  유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1918년에 한인학생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1920년대초에 한인감리교회가 세워져  1960년도때까지 이민초창기의 이민자들의 신앙과 이민 삶의 방향을 잡아주었다.  당시에 한인과 미국가정에 입양된 한인고아들은 시카고 지역에 많이 있었지만 시카고지역 한인들과는 별다른 접촉이 없었다.19 특히  시카고에 이민온 자들의 대부분은  전문직과 기술직 종사자들이  많았다. 로스엔젤레스 또는 뉴욕은 이미 많은 이민자들이 정착을 하는 것이 당연하나 시카고는 이렇게 특별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 옴으로 지역에 발전과 이민사회를 이루어 나갔다. 

가주 (California)
가주(California) 한인켜뮤니티는 역사와 전통이 있었다. 이미 도산 안창호는 1904년에 남가주(Southern California)에 위치한 리버사이드(Riverside)에 한인 떠돌이 농장 노동자를 위한 합숙소를 제공하였다.20  그는 노동자들과 함께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그들을 위해서 교육을 시켰고 그들의 권익문제를 위해서 수고를 하였다. 그는 마치 멕시칸-어메리칸 운동가였던 시져 차베스(César Chávez) 처럼 한인이민자들을 위해서 공을 세웠다.

도산역시 미국에 온 이유는 유학이였다. 그는 부인인 안혜련과  샌프랜시스코(San Francisco)에 공부를 하는 동안에 그가 목격한 한인들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그는 친목회를 구성해서 한인들의 용기를 세워주고 서로 사랑하며, 아끼며, 질서를 세워 장사를 하고 일거리를 찾아주는데 이바지 하였다.21 도산안창호박사는 인간의 존중을 알았으며 또한 자유와 공의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준 분이다. 잠간 샌프란시스코와 버클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샌프란시스코 (San Francisco)
샌프랜시스코(San Francisco)지역은 미국 서쪽해한에 있는 도시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우리 한국사람들이 생각할때 금문교 (The Golden Gate) 로 유명하지만 한때 샌프란시스코는 매우 진보적인 곳이었다. 

60년대에 유명한 하이트- 에쉬버리동네 (Haight – Ashbury district) 와 버클리 캠퍼스는 한때 미국에 히피 운동의 소굴들이었다. 하이트-에쉬버리는 금문교공원 (Golden Gate Park) 동쪽 구역에 있는 공원이었다.  그리고 옆 언덕에는 샌프란시스코대학 (The University of San Francisco) 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대학은 예수회 (Jesuit Society) 의 대학으로 그 당시 천주교에서 진보적인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세 곳은 늘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곳이었다.22

버클리 (Berkeley)
누구든지 샌프랜시스코만과 버클리 언덕에 위치한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U.C. Berkeley) 캠퍼스를 보면 1960년도때 월남 전쟁 반대 시위운동을 생각할 것이다. 이 운동은 그 당시의 조직과 권위를 질문하는 반응적인 운동이었다.  

버클리대학은 서부 학생운동의 소굴로 알려져 있다. 1964년 9월에 일어난 버클리언론의 자유운동 (Berkeley Free Speech Movement) 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 당시 대학교 대문 밖에 있는 도로는 학생들의 활동장소였다. 정치적인 집회, 팜플랫 배포 등의 온갖 모임이 다 이 도로 에서 이루어졌다. 어느날 대학 행정관은 이 도로가 학교의 소유임을 발견하고는 학생들의 모든 정치적인 모임을 정지 시켰다.학생회는 학교 측에서 그들을 억누른다고 항의했다.23

처음에는 학생들이 원하는것은 학교측과의 타협이었다. 그러나 학교측에서는 한 발자국도 양보를 하지 않았으므로 학생들의 집단 반발이 일어났다. 이때가 1964년 9월 그 당시의 공민권운동 (Civil Rights Movement) 을 본받아 이들은 학교 건물을 장악하고 철폐 항의운동을 벌였다. 그 다음날에 천명 이상의 버클리학생들이 항의운동에 참여 했다.  에드몬드 브라운 (Edmund Brown) 주지사는 경찰을 캠퍼스로 불러 들여 800명 이상의 학생들을 체포했다. 이사건은 대학원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 당시 학생의 주동자는 마리오 사비오 (Mario Savio) 였다. 사비오는 뉴욕에서 온 유대계 사람으로 철학과 졸업반이었다. 그는 연설을 하기 위해서 경찰차에 올라갔을 때 자기가 신었던 구두를 벗었다. 이유는 학교의 소유를 더럽히기를 원치 않아서였다고 말했다.

사비오의 주장은 대학측과 학생들의 관계였다. 학교측이 학생들의 의견과 요구를 들어주기를 바랬다. 그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학교측의 소유물이었다. 사비오가 시작한 자유언론운동이 전국에 퍼져나갔다. 미국 전국의 방송들이 이 버클리대학의 자유언론운동 사건을 방송했다. 결국 학교측은 양보를 하고 학생들에게 정치적모임을 다시 허락했다. 이로써 버클리 자유언론운동은 가라앉기 시작했다.24

지금도 샌프란시스코와 버클리는 젊은이의 뜨거운 사랑과 자유의 표현이 가장 인본적으로 표현된 곳으로 남아있다.

남가주 (Southern California)
남가주지역에는 많은 유명한 도시들이 있다. 특히, 산타모니카비치(Santa Monica Beach), 헐리우드(Hollywood), 코리아타운(Koreantown)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헐리웃은 한마디로 ‘Make Believe Culture’ 이다. 이 말은 ‘문화는 사실이 아닌 것까지도 진짜같이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는 의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 만번의 같은 광고와 과대선전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노리는 결과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선전이나 광고가 과장된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결국은 이런 것들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헐리웃은 영원한 젊음을 숭배하는 문화이다. 그래서 미국은 누구나 할것 없이(지금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다 젊어지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이다.

헐리웃 불러바드는 낮이나 밤이나 항상 도로와 그 주변이 붐빈다. 도로는 관광객들로 붐비며 길가는 이 유명한 길을 운전하기를 원하는 이들로 인해 늘 붐빈다. 특히 헐리웃 불로바드의 도로는 유명하다. 이 거리는 세계적인 영화배우의 이름들과 가수들, 예술가, 감독 등의 이름들이 특별한 시멘트에 새겨져 있다. 이곳을 ‘워크 어브 패임(Walk of  Fame)’ 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곳에는 관광객들로 인해 붐빈다. 이 길바닥에 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지기까지에는 몇 만명의 사람들이 그 경쟁에서 낙선 되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는 듯이 꿈을 가지고 이곳을 찾는 것이다.25

헐리웃은 어느 누구나 다 손님이며 관광객들이기 때문에 서로를 쳐다 보아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아니 서로들 자기들을 쳐다 보아 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흔히 생각하기를 헐리웃에 가면 영화배우를 볼 수 있을것 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혹시 유명한 영화배우가 거리에 걸어다니 더라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유는 많은 영화배우들이 자신들을 허술하게 치장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헐리웃 불로바드에서 영화배우를 찾듯이 그들도 그들의 신분을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알아야 하는 것은 그들은 자신을 분장하는 일에 있어서 프로급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을 감추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다. 

헐리우드는 화려한 곳이기도 하지만 또 인간의 천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 헐리웃에는 집이 없는 홈레스피폴(Homeless People) 들이 많이 있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수 많은 자들이 미국 전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몰린다. 그리고 이곳에서 크게 성공하고자 하는 꿈을 가진다. 이들의 꿈은 감독이나 에이젠트들에게 픽업이 되어서 유명한 무비스타가 되는 것이다. 이곳에는 특히 젊은 이 들이 많다. 이들은 영화 배우들과 엑스트라들에게는 성경(Bible) 이라 할 만큼 중요한 주간지인 Hollywood Reporter를 읽으면서 일할 곳을 찾는다. 이 주간지에는 언제, 어디서, 어떤 영화가 촬영되며, 엑스트라 몇 명이 필요하다는 정보를 주는 신문이다.

항상 수요보다는 공급이 많듯이 많은 자들이 영화계의 생존싸움에서 밀려나거나 발을 못붙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곳에 와서 픽업이 못되어 방황하다가 가지고 있던 돈과 친구가 떨어져나간 젊은이들은 이제 생존할 길을 찾게 된다. 생존의 방법들은 거의 다 비참한 것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팔거나 도적질을 하거나 어떤 때는 그들의 몸에서 피를 뽑아서 근처에 있는 혈액은행(Blood Bank)에 가서 피를 판다. 그리고 피를 판 돈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그리고 어떤 젊은이들은 또 자선단체의 도움을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잔혹하게 헐리웃의 삶을 살아간다. 마약과 술로 진창이 된 자들도 거지의 모습을 하고 혼을 잃은 잠비 처럼 혼자 중얼거리면서 위로를 하는 것이다. 

미국에 살면 (이제는 세계 어느 곳에 살든지 간에) 헐리웃의 영향을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들 모두는 헐리웃이 우리를 흥미롭게 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헐리웃의 문화는 영화만이 아니다. 정치계, 변호사계, 은행, 보험회사, 도박문화, 술회사, 담배회사, 메스미디아, 교육계, 대형놀이터공원 (Disneyland, Universal Studio, Six Flags Park 등등), 컴퓨터계 등등이 모두다 헐리웃 문화하고 복합적으로 직접적인 연관이 되어있다. 헐리웃이 관련되지 않은 문화는 거의 없다. 쉽게 이야기해 헐리웃이 만든 영화가 다루지 않은 분야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는 작아진다. 그러면서 인간의 가치는 celluloid (필림의 요소) 만도 못하게 되어 간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15분에다가  20초 광고이다’ 이것이 셀률로이드의 문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26

헐리웃은 음악계의 상업도 장악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든지 어떤 모양이든지 음악을 듣는다. 음악은 우주적인 매체이다. 음악이 없이는 인간존재가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하다. 아니 문명이 불가능할 것이다. 헐리웃은 인간이 음악 없이는 못사는 약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음악을 상업용으로 만들어 내어 많은 돈을 벌었고, 또 계속 벌고 있다. 우리는 싫건 좋건 돈을 지불해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돈을 내기 싫으면 지겨운 광고를 들어야한다

베이비부머(Baby Boomer) 의 시대가 점차로 노화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그들의 70년대에 세계를 휩쓸었던 Rock-N-Roll 음악은 다시 재생되어 그들의 마지막 장송곡으로 듣는 것을 볼 수 있다. 베이비부머들은 그들이 늙을 것을 생각하지 못하면서 자란 자들이다. 이들의 부모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그들이 못 누렸던 물질들을 그들의 자녀들에게 제한 없이 갖다 받쳤다. 이러한 상태에서 자란 베이비부머들은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자라났다. 이들의 시대를 “나 시대(Me Generation)” 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을 정복했던 롹엔롤 음악들을 이들의 세대를 설명 해주고 있다. 지금도 미국의 Rock-N-Roll 은 막대한 비지네스이다. 그것을 조종하는 헐리웃은 더 큰 실제의 현상이다.

나는 문화 비평론가는 아니다. 다만 현실의 한쪽 부분을 해석할 뿐이다. 헐리웃은 이미 옛날부터 컴퓨터로 영화를 제작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수명이 6개월이다. 다시 말해서 6개월이 지나면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는 골동품이 되어 버린다는 이야기다. 한 컴퓨터전문가는 ‘컴퓨터와 TV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다음 단계’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허황된 것인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인지는 기다려 보면 알 것이다.

헐리웃의 실제는 미지이다. 다시 말해서 헐리웃을 누가 장악 하느냐에 따라서 이들의 상황이 바뀐다. 이제는 유대인들이 서서히 헐리웃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몇 년전에 개봉되었던 스타워즈(Star Wars)의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유대인으로 그는 26세에 이미 유명한 감독이 되었다. 그는 1995년도에 2명의 유대인과 합해서 ‘드림워크(Dream Work)’ 라는 거대한 영화 제작소를 설립했다. 이들은 영화계의 개념을 다시 쓸 수 있을 만한 유능한 감독들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헐리웃의 개념도 변할지도 모른다. 

헐리웃의 근간은 분명히 돈이 목적이다. 이들은 많은 돈을 순식간에 벌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돈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나 돈이 많다보면 부패하기 쉽다. 헐리웃이 좀 더 도덕적이고 사회의 악을 폭로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바라며 이 문화만가 부패를 오히려 막아주는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환경에 우리 한인 이민자들은 정착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인타운(Korea town)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코리아타운 (Korea town)
저자가 미국에 온 해인 1971년  나성에 도착했을 때에 올림픽 블러버드는 매우 한산한 길이었다. 이미 백인들은 이 거리를 떠나 갔고 남미계와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 당시 올림픽 블러버드에는 미국 자동차 딜러들이 많이 있었으며, 단지 몇개 만의 한인가게들이 있었다.한인 식품점으로는 풍년식품점이 있었고 그 집주인은 마음씨가 좋은 분이셨다. 그 당시 한인들이 교포 소식이나 타운의 돌아가는 일을 알려면 이 식품점에 가면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음식을 먹고 싶을때면 벌몬트와  8가 사이에 있었던 수정식당이 있었다. 그리고 맛있는 함흥냉면을 먹으려면 피코와 알링톤 길에 있었던 함흥냉면 식당에 가면 되었다.

그 당시에 한인타운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볼때는 매우 미비했었다. 모든 시작이 그러하듯이 처음 이민 온 자들은 정착하기에 분주했으며 직장과 사업 외에는 다른 곳으로 마음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다만 생존하기에 바빴다.

한인타운에는 특히 독일에서 탄광자로 수고하던 자들과 간호사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독일이나 카나다에서 이민자들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생활수준이나 로스엔젤레스에 적응하는데 있어서 순탄하였다. 특히 그 당시에는 이미 유학생들이나 고학력을 지닌 자들이 교회설립 또는 미국에서 필요한 서류들을 작성해주는 수고를 했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에서 가졌던 고등직업을 버리고 맨발로 나서는 일도 많았다. 이민자에 필요한 번역이나  복덕방 역활까지 하였다. 

특히 미국에 온 간호사들을 위해서 수고한 자들도 있다. 간호사들은 이곳에서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서 따로 공부를 해야만 했으며 시험을 보아야 했다. 이들을 도와준 사람들 박학도씨는 경복고등학교을 나오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도미해 특히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는 간호사들들 위해서  라이센스 공부반을 세워서 도왔다. 박학도씨는 1981년도 국제간호협의회 총회 참관기를 기념하면서 그당시 약 6천명이 넘는 간호사들과 관계자들이 모여서 제 17회 국제 간호협의회를 거행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또 간호협의회를 언급하면서 단일 전문직으로는 어느 분야보다도 많은 수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27  간호사들이나 의사 그리고 특별전문직을 가진 자들은 이민사회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활을 감당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수고 역시 교회와 발을 맞추어 나갔다. 

월셔불러버드는 사무실이 많고 고층 건물들이 많은 곳이다. 다운타운에서 서쪽으로 연결되는 이 길은 다운타운, 헐리웃과 웨스트사이드의 세 지역에 연결되어 품위있는  지역이다. 이 길은 잘 다듬어진 야자수 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는 고상하고 품위있는 비지네스의 길이다. 192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모습을 상상케 해주는 아르데코양식의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월셔불러버드는 변호사 사무실이 많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산타모니카 비치(Santa Monica Beach)
산타모니카 비치(Santa Monica Beach)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UCLA 캠퍼스에서 30분간 서쪽으로 운전하고 가면 태평양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는 남북으로 끝이 없는 낭만적인 연안이 펼쳐진다. 에메랄드 빛의 태평양의 바닷물은 보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신을 잊게 만든다. 거기다가 태평양 바다바람과  캘리포니아의 (대륙성) 날씨는 시간을 멈추게 하는 신비함이 있다. 이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캘리포니아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산타모니카 비치를 중심으로 유명한 해변들이 남쪽으로는 베니스 비치 (Venice Beach), 마리나 델레이 (Marian Del Rey) 와 맨해튼비치 (Manhattan State Beach) 와 헐모사비치 (Hermosa Beach) 와 뉴포트비치 (Newport Beach) 와 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레돈도 비치 (Redondo Beach) 와 남쪽 끝으로는 샌디에고 (San Diego) 가 있다. 그리고 더 내려가면 멕시코 국경선에 도달하게 된다. 

산타모니카 비치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바디 써핑으로 유명한 곳들이 계속 나온다. 이곳들은 말리부비치 (Malibu Beach), 쥬마 (Zuma), 아마릴로 비치 (Amarillo Beach), 부얼고 비치 (Puerco Beach)와 에스칸디도 비치 (Escondido Beach) 들이고 이곳들은 수영과 써핑으로 모험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써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누구든지 써핑보드를 가지고 이곳에서 파도에 도전할 수 있다. 남녀노소가 다 함께 야외스포츠를 즐기는 것은 캘리포니아의 자연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산타바바라 (Santa Barbara) 가  나오며 더 올라가면 수쿠버 다이빙도 할 수 있는 몬테레이반도 (Monterey Peninsula) 가 나온다. 그리고 돌고래를 구경할 수 있고 낚시를 즐길수 있는 하프문 베이 (Half Moon Bay) 가 샌프란시스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지역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State of Mind). 세계의 각국 어느 민족들에 속하든지 모두가 살면서 이곳을 자기들의 ‘홈’ 이라고 부르며 산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것은 경험이면서 또한 계속해서 배우는 생활이다. 어느 누구도 이곳에 대해 평을 할 때에 같은 평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이곳에서 겪는 경험이 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캘리포니아는 어느 누가 와서 살아도 부담이 안가는 마음의 상태이다. 다만 목적이 있어서 와서 살면 그 만큼 성공률이 높아지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다른 데서 실패하고 왔을지라도 그들이 살기는 더  좋은 곳인것이다.

다운타운 LA 에서 서쪽으로 계속 가면 특이한  곳이 나온다.  이 곳을 ‘웨스트엘에이 (West LA)’ 라고 부른다. 이곳은 유대인들이 제일 많이 밀집해서 사는 곳 이기도하다. 그래서 이곳에는 유대인들의 회당들이 많이 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인 토요일 저녁만 되면 검은 수염을 한 정통 유대교인 남자들이 검은 모자와 검은 오버코트를 입고서 회당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남자는 남자끼리 그리고 여자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여자끼리 걸어서 회당으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장면을 보면 너무 인상적이다. 마치 종교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스라엘의 옛 전통과 현대 시대의 조화가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한 느낌을 준다.

유대인들을 볼 때마다 인간의 완강하고 불의하고 단단한 모습을 본다. 인류 역사상 한 나라가 파괴된 후에 다시 건국된 나라는 이스라엘 뿐이다. 이 민족의 상징은 ‘Cactus(선인장)’ 이다. 선인장은 껍데기는 거칠고 뾰족뾰족한 가시가 많이 있지만 속은 매우 부드러운 식물이다. 이들은 외부의 전쟁과 위협으로 강해질 수 밖에 없었지만 그들의 속은 매우 부드러운 민족이다. 이들은 한국 민족처럼 노래부르기와 춤추기를 좋아한다. 나는 가끔 유대인들의 노래를 들은 적도 있다. 이들의 노래는 매우 상쾌하다. 이런 백성이 살고 있는 동안에는 신 교훈이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회당으로 가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에 거기서 유대민족들 자신들이 서로를  하나로 묶으며 그들의 본체를 유지하려는 간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LA는 사시사철이 봄과 같은 날씨이며 사막의 기후 같아서 낮에는 매우 덥고 저녁과 밤에는 매우 쌀쌀하다 . 그래서 이곳에 오면 나이 감각과 세월 감각이 없어지는 별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그냥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수 많은 세월을 그냥 보내는 수가 적지 않다.  LA의 문화는 야외활동의 문화이다. 모든 것이 자동차가 있어야 가능하고 대중교통은 매우 불편한 편이다.

자동차와 프리웨이 문화는 이곳의 특이한 현상이다.  아침에 프리웨이를 타서 하루종일 프리웨이를 안내리고 다녀도 끝이 없는 곳이다.  프리웨이를 타지않고는 아무데도 못가며 아무 일도 못한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자동차는 필수이다.

LA는 음식점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자기 취향에 맞는 음식을 찾아 먹는데 어려운점이 거의 없다 . 그리고 거의 수준급의 음식을 값싸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갖는 장점 중의 하나이다. 내가 많은 여행을 해 보았지만 이곳같이 음식이 많고 다양한 곳은 매우 드물다. 다민족이 살고있는 장점때문에 거기에 맞추어서 각국의 음식을 맛 볼수 있다.

캘리포니아는 대체적으로 부자가 많이 살고 있는 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부자가 많이 산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빈부차이가 심한 곳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베벌리힐즈 (Beverly Hills) 에 로데오 드라이브 (Rodeo Drive) 라는 곳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물건을 파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반면에 값싼 소품도 구입할 수 있는 캐주얼 상점도 볼수 있다. 몇 블럭안되는 이곳은 어느 누구나 와서 가격만 지불하면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기도하다. 세계의 유명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이곳은 쇼핑하는자들보다는 구경을 하는자들과 관광객들이 늘 붐빈다.  그리고 제일 비싼 차들이 뉴욕의 택시 보다 더 흔한 곳 이기도 하다.  또 특이한 것은 이렇게 부자들과 없는 자들이 서로 섞여 사는 것이다.  백만장자들과 영화배우들은 이렇게 평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있다. 산타모니카의 붉은 빛나는 저녁 노을은 오늘도 이렇게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주면서 오늘 하루의 고통과 번뇌를 잊게 하면서 깊어진다. 오직 바라는 것은 오늘을 잊는 것이다.  하루의 고통은 하루에 족하므로…혹시 내일은 행운의 바퀴가 올 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산타모니카비치는 내일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올 것이다.28

나성의 한인교회들 (Korean Churches in  Los Angeles Areas)
이민 초기 역사를 볼 때 로스엘젤레스지역에 있었던 미주한인교회들의 역할은 한인 민족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고 미국에 정착하는데 있어서 너무나 중요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로스엘젤레스지역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한인교회는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하다가 은퇴하시고 미국으로 들어온 셔만(Mrs. Florence M. Sherman)29  부인의 주선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1904년 3월 11일 남가주 갈미교회 선교부의 보조로 미션(Mission)이  세워졌다. 미션의 목적은  초기 한인들을 기숙시키며 밤에는 영어를 가르치고 전도를 했다. 이것이 나성한인연합감리교회의 시작이었다.30  제퍼슨한인연합장로교회(1906년 5월 10일), 대한인 기독교회(일명 동지회 교회, 1906년 5월 10일), 기독교 가정교회 (1941년 1월 17일), 독립장로교회 (1959년 4월첫주일), 한국인 연합교회 (1965년 4월), 포모나 한인교회(1968년 4월) 등이 존속하고 있었다. 

70년대에 이미 LA 근처에는 몇 개의 한인 교회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 당시 교회로는 중앙교회(설립 1969년 7월)를 담임한 장세화 목사, 소망교회 임 동선목사 (임 목사는 나중에 동양선교 교회를 개척하심), 로스엘젤레스한인 침례교회 (설립 1957년 3월 10일, 김 동명목사), 그리고 피코 알링톤교회(김 요한목사)과 세계선교교회 (조 요셉목사)들이 목회를 LA에서 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이민 목회를 맡으신 목사님들은 많은 수고를 하셨다. 그리고 당시 목회를 하신 분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목사님들이 거의 특이한 상황에서 목자의 직책을 감당하셨다는 점이다. 이민 초창기의 목자들은 이민 온 교인들의 영적 지도자로서만 수고를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외에 직업 알선자, 영어 통역관 역할, 법정 통역관 역할, 복덕방 역할 등등으로 영육간에 지도자 역할을 다 담당하셨다. 그리고 몇 분의 목사님들의 사모님들은 교인들과 함께 봉제 공장 또는 넥타이 공장에서 긴 시간의 노동을 통해 교인들에게 직접적으로도 힘과 위로를 주었다. 그 당시에 한인 이민자들이 가질 수 있었던 직업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갓 이민 온 자들은 미국에 온 사실만으로도 감사히 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민자들을 위로하고 함께 미래를 위해 수고하고 개척한 배경에는 교회들과 목사님들의 말 못할 수 많은 사연과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목사님들이 목회 할 수 있도록 곧은 터를 닦아온 길에는 숱한 배경이 있었다.

이민 목회는 처음부터 그냥 생긴 우연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에 제일 먼저 이민 온 자들은 하와이의 파인애플과 사탕수수 밭에 일하러 온 농부들 외에는 거의 유학생들과 전문직을 가진 분 들이었다. 그리고 또한 목사님들과 성직자들이 신학공부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이민목회의 시작이 되었다. 그 당시 유학생들은 미국, 캐나다와 유럽의 나라에서 공부를 하였다. 많은 목사님들과 신학도들은 미국에 유학을 오셔서 공부를 하면서 그 당시 유학 온 학생들과 미국에 이미 온 분들을 상대로 목회를 하셨다. 지금도 오래 된 이민교회의 역사를 보면 설립자들이 거의 유학으로 오신 분들이 많았다. 이민교회가 있기 전에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유학생들과 일찌기 목회자들을  보내사 앞으로 올 많은 이민자들을 위해 준비 시키셨던 것이다. 이민자들이 많이 오기 시작한 80년대에도 지금의 대형교회들은 그 당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LA에는 나성영락교회, 동양선교교회, 로스엘젤레스한인침례교회, 나성한인교회 그리고 동부에서는 와싱톤한인장로교회가 이미 이민자들의 영과 육신의 안식처로써 존재하고 있었다. 한인 이민자들이 미국에 처음 와서 갈 수 있는 곳인 교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며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성영락교회(Young Nak Presbyterian Church of Los Angeles)
나성영락교회는 1973년 3월 4일에 한 교인의 가정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4월 8일에 미국교회 헐리웃제일장로교회로 이전했으며 1974년 3월 10일에 김계용목사가 부임하였다.31 한국의 영락교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교회이다. 나성영락교회의 담임목사님은 김계용목사였다. 서울영락교회의 원로 목사였더 한 경직목사는  김 계용목사를 “한국이 낳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했다.32

동양선교교회 원로목사이신 임동선목사는 김계용목사님을 “내가 만난 동역자 중 가장 진실한 선한 목자였다고” 회고했다.33  그리고  목회생활중 가장 가까이서 목회의 위로와 충고를 받은 좋은 동지였다고 말했다.

김 계용목사의 설교는 신학적이거나 복잡한 교리 중심의 설교보다는 현실에 당면한 이민자들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표현으로 아주 알아듣기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설교보다는 대화형식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목사는 이민목회 철학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 “이민 목회는 거저 사랑이야, 저마다 사랑해 달라는 거야.  고국 떠나서 누구나 사랑이 그립거든.” 34 한  영혼 한 영혼마다 신경을 쓰신 목사였다.  한인 이민 역사에 소중한 발자취를 남기신 목사였다.

김목사는  6.25 사변때에 사모님과 가족과 헤어지신 후 40년간을 독신으로 성직자 생활을 하셨다. 김목사님은 남이 모르는 외로움과 고통을 극복하신면서 나성영락교회의 교인들을 친가족과 같이 여기면서 귀한 목회를 하셨다. 김목사는  40년만에 그리던 사모님과 가족을 만나기 위해 북한 땅을 밟으셨으나 1990년 9월 1일에 북한 측의 일방적인 사망의 보도로 성직자의 일생을 마쳤다.35  김계용목사가 좋아하시던 성경구절은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스엘젤레스 한인침례교회(Berendo Street Korean Baptist Church)
1957년도에 교회를 설립한 김 동명목사는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했으며  침례교 신학박사를 마치고 목회를 했다. 김목사는 매우 상냥하면서 항상 선하신 아버지상을 주신 목사로 알려져 있다. 김목사의 사모인 안 이숙사모(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는  김목사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리고 안 사모 일제시대 당시에 독립군들과 신사참배 운동을 반대하는 목사님들과 함께 신앙을 지켜 나가셨다. 안사모는 순교를 하기 위해서 일부러 옥생활을 미리 준비하신 분이셨다. 그리고 안사모는 신앙때문에 감옥에 갇혀서 고생을 하신 분이다. 그리고 해방되는 날 풀려 나오게 되었는데 순교하지 못함을 한탄하셨다고 전해진다.  안사모는 순교는 아무나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36  안사모님은 진실로 순교하기를 원하셨고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는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분이시다. 

또한 안사모의 특징이 하나 있는 데 그것은 사모는 새벽 예배를 나오셔서는 절대로 아무하고도 인사를 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아직 아버지 하나님께도 인사를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인간에게 인사를 먼저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나성한인교회(Los Angeles Christian Reformed Church)
나성한인교회는 1976년경에 김의환목사가 개척한 교회이다.37 김 의환목사는  목회자이면서 신학자이다. 김목사는 교회사의 학자로서 한국의 총회신학교 (총신)와 고려신학교 외에 세계를 다니시면서 신학생들을 양육했던  신학자이다. 김목사는 미시건주 그렌드래피드 (Grand Rapids)에 위치한 칼빈신학교 (Calvin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했고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석사(Th. M.) 학위를 받으시고 같은 도시에 있는 템플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는 한국과 미국에서 교회와 신학교를 세우시고 제자양육에 몰두한 목회자이다.
김 의환목사는 나성한인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그 교회를 나성에서 대형교회로 성장시키셨으며 한인 교인들에게 개혁신앙과 개혁신학을 정립했다. 그리고 김목사는 국제 신학원(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를 설립해서  외국인 신학생까지 장학금을 주면서 제 3세계 나라의 지도자까지 교육했다. 

동양선교교회 (Oriental Mission Church)
교회는 임동성목사가 1970년 7월 26일 로스엔젤레스에 설립을 했다.38  그당시 한인이민자들은 계속해서 나성으로 거주지를 마련하면서 한인사회를 형성하였다. 동양선교교회는 한인이민교회에서 모범적으 발전한 교회이다. 그리고 많은 지교회들과 선교기관들을 후원하면서 발전한 교회이다. 교회는 세계선교를 통해서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는것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교회의 세가지 창립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이천영목사(서울신학대학교수)의 권위 때문이었다. 로스엘젤레스를 방문했던 이목사가 임목사에게 후세들의 신앙교육과 새 이민사회를 위해서 이민교회를 세우라는 권유의 말이였으며, 둘째로는 임목사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 공부를 하며 동시에 이민목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번째 이유는 이미 그 당시 교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고 싶었기 때문이다.39  이러한 투철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교회는 서서히 부흥하기 시작했다.  

교회의 이름을 동양선교교회(The Oriental Mission Church)라고 지었다.  동양선교교회라는 이름은 “동양사람이 동양을 위해서,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선교한다”는 사명을 제일로 펴나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였다. 특히 동양에서 이민와 미국 땅에 동양인을 위한 교회를 세우고 한국과 미국을 향한 다리 역활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해서 하였다. 특히 교회 이름사이에 처음으로 선교(Misison)라는 두 글자를 넣은 교회는 동양선교교회가 처음이었다. 영어로는 The World Mission Church로 사용한다. 약자로는 OMC로 쓰인다.40  이름에는 이미 선교와 동양인의 정신을 성경에서 나옴을 볼 수 있었다. 성결교단으로 처음에 한국에 들어간 미국의 동양선교회는 영어로 Oriental Missionary Society로 쓰인다. 선교단체의 약자는 OMS로 사용한다.41
교회는 일년만에 교인이 200명으로 늘어나는 역사를 체험했다. 교회부흥의 배경에는 임동선목사의 뛰어난 설교와 헌신적봉사가 있었으며, 그 당시 볼드윈힐(Baldwin Hill)에 위치한 교회는 비록 한인타운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교회전부가 가족적인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특히 은혜스러운 예배와 설교, 헌신적인 교사들이 가르친 주일학교, 은혜와 축복이 넘치는 성가대 등이 다 교회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42 이러한 소문이 한인사회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교인은 교회로 몰리기 시작했다.  30년사 인터뷰때 임동선목사는 볼드윈힐교회 때 크게 부흥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첫 사랑의 뜨거움과 같이 모든 성도들이 은혜를 사모하고, 모이기를 힘쓰고, 열심, 전도, 봉사,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씀했다.43  물론 모든 교회는 다 어려움과 힘든일들이 있지만 이러한것 들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목사님의 비젼과 헌신이 있었다. 

결론 (Conclusion)
무궁화라는 상징을 가진 우리 한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받게 된 후 고국땅을 떠나 전 세계속에 퍼져 이민자로서 살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남미에 사는 한인들은 더욱 더 큰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하나님의 섭리로 미국땅에 와서 사는 우리들은 미국의 모범적인 시민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후손을 위해서도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가 한국에 살았을 때에는 한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야한다. 

아메리카대륙은 동양인들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크리스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때 이미 대륙은 수많은 인디안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은 각자의 독특한 이들만의 문명과 제국들을  구성하고 있었다. 남미 페루에는 잉카제국(Inca Empire) 그리고 유카탄지역으로는 마얀문명(Mayan)이 존재했었으며 멕시코로는 아스텍(Aztec) 문명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볼수 있는 것들은 흔적 뿐이다. 

그리고 나서 몇 백년후에 다시 아시안들이 대륙의 땅을 밟았다. 그 중에 한인들이 들어있다. 다시말해서 아시안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두번째 도전하는 것이다. 이번의 도전은 우리들이 복음을 믿고 있는 것이 원주민인 인디안들과 다른점이다.  이민역사를 보면서 뺄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의 영향이다. 이 글의 내용의 전체도 기독교의 배경에서 쓰여졌다. 

100년의 이민역사중에 수 많은 한민족의 후세들이 이곳에서 복음을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가는곳 마다 교회를 설립하고 선교사를 보내어서 주님의 사랑을 나타냈다. 저자는 이민사회와 교회의 이름있는 자들 이름없이 수고한 자들을 기억하면서 이글을 기록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선진들의 복음의 신앙이 우리들 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몇 백년후에 미국사의 이민교회역사를 쓸 때에는 인디안들과 다른 역사가 쓰여지기를 바란다. 

 Footnotes:
1.중앙교회 107년사 (1890-1997), (기독교대한감리회 중앙교회 기획위원회, 1998), p. 7.
2.고현교회 95년사 (1906-2001), (대한예수교장로회 고현교회 95년사 편찬위원회, 1996), p. 21.
3. 목포양동교회 100년사 (1897-1997). (목포양동교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1997), p. 21.
4. p. 21-22.
5. p. 46.
6. 고현교회 95년사 (1906-2001), p. 22.
7. 목포양동교회 100년사 (1897-1997), p. 46.
8. 고현교회 95년사 (1906-2001),  p.23.
9. p.24.
10. The Korean Community in America, New York: The Korean Association of New York, 1986, p. 12.
11. Kim Myoung Kym, Korean Centennial Pictorial Book of the North America: Rainbow Over the Pacific  (The Christian Herald U. S.A., 2006), p. 46, 
12. Thirty Five years of the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of Greater Washington 1951-1986, (와싱톤한인교회역사편찬위원회,1988), p. 22. 
13. 와싱톤한인교회역사편찬위원회, p.24.
14. 와싱톤한인교회역사편찬위원회,  p.24.
15.이광규, 재외동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p. 167. 
16. 이광규, p. 166.
17. 미주한인이민 100년사. (한미동포재단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남가주 기념사업회, 2002), p. 314.
18.미주한인이민100년사, p. 360.
19.미주한인이민100년사, p. 361.
20. 미주한인이민100년사, p.411.
21. 미주한인이민100년사, p. 411.
22.Alexander Pak, Dance of Free Slave, (Cerritos, CA: unpublished work, 1997), 239.
23. Pak, 240.
24. Pak, 241.
25. Pak, 109.2 Pak, 115.
26. 해외 한인 간호 50년사(50 Year History of overseas Korean Nurses), (해외 한인간호 50년사 편찬위원회, 2003), 34.
27. Pak, 122.
28. Mrs. Sherman여사는 남편 Dr. Harry Sherman과 함께 선교사로 한국에서 봉사하다가 돌아와서 그당시 나성으로 모여드는 한인들을 상대로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는 한국에서 알게된 신흥우를 초청하여 함께 Korea Mission을 시작했다.김신행, 새하늘과 새땅을 향하여: 연합감리교회의 100년 역사, (2004), 23.
29. 동양선교교회30년사, 65.
30. www.youngnak.com (교회연혁, 1973-1980`믿음의 초석’)
31. 김명순, 죽어서 더욱 살아계신 이 김계용목사 (삼성출판사, 1991), p. 5.
32. 김명순,  p. 140.
33.김명순, p. 6.
34.김명순, p. 100.
35. Mrs. Kim said in her Book, If I Perish, she had failed to die as a martyr, “I had resoved to die a martyr, but I had had failed. As I saw so many dearly beloved Christian leades perish under the cruel persecutions, how I wept and cried out to my God. ‘O Lord, this moment send Your heavenly cameras to take pictures of this cruelty. Hurry, Please.’” Esther Ahn Kim, If I Perish, (Chicago: Moody Press, 1977), p. 7.
36. www.lacpc.org: 1975년 9월에 민종식, 박의삼, 서인준, 서탄봉 가정이 모여 기도회를 갖음으로 시작되었으며 처음의 교회이름은 칼빈장로교회로 시작되었음. 1976년 3월7일에 교회이름을 나성한인교회를 바꾸고 난후 1976년 6월 6일에 김의환목사 담임목사취임예배를 드림으로 발전하였다. 
37. 동양선교교회30년사,  p. 75.
38. 동양선교교회30년사,  p. 76.
39. p. 82.
40. 성결교는 1901년(광무 5)2월에 미국의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소속 선교사인 C.E. 카운만과 E.A. 킬보른에 의해 세원진 개신교교단이다. 일본에 이미세워진 간다구에 동양선교회 전도관에서 한국인 유학생 김상준, 정빈등이  신학을 끝내고 귀국하고 1907년 염곡(현 무교동)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마련한것이 한국성결교회의 시작이다. 선교사들의 후원아래 아현동 고개위에 새로이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의 전신)을 열면서 본격적인 목회자 양성과 노방전도로 교단이 성장했다. 성결교회인물전 1집, (성결교회역사와 문학연구회, 1990), p. 17.
41. pp. 113-114.
42. 동양선교교회30년사, p. 114.
43. p.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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